1월 5일 국회의원회관 제2 소회의실에서는 ‘1228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한일 간의 협상에 대한 긴급 토론회’가 열렸다. 피해 당사자들로 구성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 및 3개 단체의 주최로 이루어졌으며, ‘위안부’ 문제에 관한 활동가와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이 긴급 토론회에서 내온 내용과 약 2주일간 있었던 다양한 의견을 통하여 이번 협의에서 비교적 비 가시화되는, 하지만 중요한 몇 가지를 쟁점화해보려 한다. 더 많은 내용은 정대협 홈페이지에 있는 자료집을 통해 볼 수 있다. 

 

1. 피해 당사자이며 25년 동안의 운동 주체가 ‘협상’의 객체로

 

위안부’ 운동은 당사자의 피해 사실 고백으로부터 시작했다. 지난 1991년, 고 김학순 씨의 피해 사실 고백으로부터 출발한 ‘위안부’ 운동은 기실 피해 당사자가 주체적으로 문제를 점화시키고 운동을 끌고 온 경우로 볼 수 있다. 중앙대학교 이나영 교수는 “김학순 씨의 최초 증언으로 촉발된 피해자들의 연이은 커밍아웃은 (피해 당사자들이) 피해자이자 생존자 동지라는 사회적 형체를 입게 된 감격스럽고 역사적인 사건이었다”라고 운동의 시작을 밝혔다. 지난 25년은 “피해자가 당사자와 활동가로 거듭난 시간”이었다

 

이런 관점에서 지난 12.28의 협정은 당사자와의 일면 접촉 없이 진행되어, 운동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항상 주체로 존재했던 피해 당사자들을 다시 객체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서울대학교 법학과 양현아 교수는 이번 양국 간의 합의문 중 ‘명예와 존엄 및 마음의 상처’라는 표현을 지적했다. 법적인 피해나 손해의 개념이 아닌 ‘상처’라는 표현으로 “피해자들을 다시 한 번 한국 여성들을 한 많은 피해자로 표상”한다는 것이다. 양 교수는 문제 해결이 피해 당사자가 단순 피해자가 아닌 “역사인식을 새로이 끌어낸 주체로서 자리매김하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2. 지난 1995년의 ‘국민 기금’, 총리대신의 편지와 무엇이 다른가

 

협상 과정에서 ‘당사자 참여’가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그 결과 또한 피해 당사자의 요구가 존재치 않는다. 지난 1995년 일본 정부는 민간과 함께 ‘국민기금’ 모금을 통하여 피해자에 대한 위로 사업을 실시했지만, 법적 책임에 대한 명기가 없어 많은 피해자가 수령을 거부했다. 경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의 김창록 교수는 이번 합의가, 1995년 국민기금 및 당시 일본 내각총리대신 편지와 다를 바 없는 ‘복제’라고 말했다. 두 문서를 비교한 아래 표를 보면 새로운 것인 듯 보도되었던 ‘책임 통감’이나 ‘내각총리대신으로서’라는 내용은 이미 20년 전의 총리대신의 서안에서도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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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공개서한에서 존재했던 ‘도의적’이 사라진 것을 제하면, 두 문서는 거의 같은 내용 구조를 지닌다. 언뜻 보면 1995년 ‘도의적 책임’이라 명기하여 법적 책임을 회피했던 일본이 ‘도의적’이라는 단어를 지움으로 인해 완벽한 책임을 인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김 교수는 합의 직후 이뤄진 한일 정상 간의 전화회담에서 ‘위안부 문제를 포함하여 한일 간의 재산 청구권 문제는 1965년의 한일 청구권 문제는 1965년의 한일 청구권 경제협정으로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해결되었다는 우리나라의 입장에 변함이 없다’는 아베 신조의 말을 지적한다.

   

지난 1965년 협정으로 청구권이 소멸했다는 태도는 ‘도의적’이라는 단어가 사라졌을 뿐, 일본 정부에 책임이란 여전히 법적이 아닌 도의적 책임을 의미함을 보여준다. ‘복제’ 수준의 합의문은 협상문의 차원에서도 문제지만, 운동의 주체였던 피해 당사자들의 25년이라는 운동 기간을 “전면부정하는 지점에서 역시 문제”라고 김 교수는 지적했다.

 

3. ‘법적 책임’ 없는 합의문에 한국 정부는 “과도한 보증”

 

법적 책임이 없는 이 합의안에서 일본 정부가 독자적, 적극적으로 취해야 할 조치는 10억엔 출연뿐이라고 김창록 교수는 말한다. “한일 양국 정부가 협력하여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의 회복 및 마음의 상처 치유를 위한 사업을 하는” 것도 조치에 포함되지만, 이 사업은 한국 정부가 설립하는 재단을 통해서 이뤄지고, 그 부담도 한국 정부가 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합의문은 지난 1995년과 비교해 ‘복제’ 수준이지만 한국 정부가 새로이 보증한 것은 너무 많다. 이 빈약한 조치를 착실히 함을 전제로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을 확인해 주었고, 국제사회에 ‘위안부’ 문제에 대한 비판의 자제를 약속했다. ‘위안부 소녀상’에 대한 일본 정부의 우려를 인지하고 관련 단체와 협의를 통해 적절히 해결을 노력하겠다는 것 또한 빼놓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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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한국 정부의 태도를 확인, 그리고

 

한국 정부가 보여준 이번 태도에는 김성우 청와대 홍보수석의 발표에서 보이듯 “실제로 그동안 민간 차원의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위안부’ 문제는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는 식의 ‘위안부’ 운동에 대한 평가 절하가 존재한다. 이를 통해 피해 당사자들은 피해자로서, 그리고 수동적인 모습으로서 그려진다. 국가는 ‘위안부’ 운동의 주체를 소시민과 피해자로 다시 호명하려 하는 것이다.

 

당일 토론회의 사회를 맡은 장완익 변호사는 “유례없이 많은 언론과 참석자들이 자리했다”고 말했다. 좌석이 꽉 차 간이의자를 들고 복도에 앉아야 하는 이들이 존재했고, 주최 측이 준비한 자료집 150부는 시작 전에 동났다. 많은 이들이 협의안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동조하는 이 시점에 하나 더 고민해야 할 지점이 있다. 마치 국가가 그랬듯, ‘위안부’ 운동의 주체를 그저 피해자로 보고 있지 않은지. 동조하는 이들의 따듯한 의도는 의심치 않지만, ‘효녀’나 ‘효자’의 운동이 ‘할머니’를 대신해 문제 제기하며 피해 당사자를 그저 수동적으로 그리는 것은 아닌지 경계해야 한다. ‘대신’이라는 말에 내포된 한계를 우린 이번 합의를 통해 봤다. ‘위안부’ 운동은 그 시작부터 피해 당사자의 고백과 이들의 운동 주체화를 바탕으로 진행되었다.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서발턴이 말해야 한다’로 답해야 할 때다.

 

글. 압생트(9fifty@naver.com)

기획. 이설(yaliyalaj@gmail.com). 달래(sunmin5320@naver.com). 압생트(9fift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