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뭔가를 이루고 만드는 데는 익숙하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는 뭔가를 더 채워넣을 수 없을 만큼 꽉 찬 느낌이다. 그래서 내 한 몸 편하게 누일 공간조차 없다. 이제는 채우지 말고 없애자. 2016년에는 사라져야 할 것들.

 

 

2016년이다. 새해 목표를 짠다. 졸업예비자인 나는 취업을 새해 목표로 삼는다. 이미 취업한 나의 친구는 승진이 새해 목표다. 취업난이 매년 역대 최고를 경신하고, 20대도 명퇴하는 한국에서 너무 원대한 새해 목표인 것 같지만, 목표는 높게 잡는 게 좋다고 들었다. 나와 내 친구는 사정이 좀 낫다. 비장애인 이성애자 남성이기 때문이다. 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 새해 목표를 수정해야 하는, 여전한 2016년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2016년엔 사라져야 할 것, 간접차별

 

차별, 갑질 잘못하면 경을 치는 세상(정말 그런지 잘 모르겠지만, 몇몇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는 듯하다)에서 무슨 소리냐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차별인지 모르는 차별인 간접차별은 생각보다 가시화되지 못 했다. 가끔 ‘OECD 국가 중 한국의 유리천장 순위같은 기사에만 잠깐씩 언급될 뿐이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누군가를 차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glass2유리천장이 계속 좁혀들고 있어! ⓒ 덴마

 

간접차별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대략 무슨 차별이겠거니 예상할 수 있지만,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 알기 어렵다. 간접차별의 뜻은 직접차별과 비교하면 이해하기 쉽다.

 

[사례1] A 회사는 신입 공채에 남자만 뽑는다.

[사례2] B 회사는 신입 공채에서 남자, 여자, 장애인을 모두 뽑는다.

 

A 회사가 저지르고 있는 차별은 직접차별이다. 직접차별은 기회의 평등이다. B 회사처럼 남, 장애인비장애인이 공정한 기회를 부여받고 있다면 직접차별에 위배되지 않는다.

 

[사례3] C회사는 이직 가능성이 낮은 직원을 우선 승진시킨다.

[사례4] D회사는 단합대회로 종목을 축구로 정했다.

 

C 회사와 D 회사는 간접차별을 하고 있다. 얼핏 봐서는 뭐가 차별인지 모를 수 있다. 이직 가능성이 낮아야 회사 입장에서도 그 사람을 키울 수 있다. 축구는 이미 대중적인 스포츠고, 단합대회 종목으로 손색이 없다. 이렇게 중립적인 기준이 무슨 차별인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중립적으로 보이는 이 기준이 중립적이지 않다는 것이 간접차별의 문제의식이다.

 

아직 한국에서는 출산과 육아를 오롯이 여성이 부담해야 한다. 출산과 육아 기간에 여성은 직무로부터 이탈할 수밖에 없다. 돌아올 기약이 없는 경우도 있다.  ‘이직 가능성’이라는 기준은 여성을 간접적으로 배제한다. 단합대회 축구는 비장애인 남성이 주축이 되는 스포츠다. 만약 D회사가 여성, 장애인, 남성을 골고루 참가시킨다면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축구를 하는 데 익숙지 않은 대부분의 여성, 장애인은 선수가 아닌 응원 담당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htm_201503161631220102011차별과 친근함을 혼동하는 경우도 가끔 있지만, 흔한 경우는 아니다 ⓒ 중앙일보

 

사례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간접차별은 언뜻 합리적으로 보이는 기준이 특정 집단을 배제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때 배제는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편견과 차별 등에 의해 작동한다. 중립적이라 여겼던 기준이 편견과 차별로 인해 기울어진 운동장이 되는 것이다. 왜 출산과 육아는 여자의 몫인가여성과 장애인은 단합대회에서 축구를 하면 안 되나? 축구 외의 종목은 왜 고려되지 않나? 잘못된 편견으로 인해 나타난 불평등한 결과를 왜 피해자인 여성과 장애인이 감수해야 하나?

 

한국에도 간접차별이 사라져야 한다는 문제의식에 의한 간접차별 금지 법률(적극적 고용 개선조치)이 이미 있다. 간접차별은 사라지지 않은 채 단지 법만 존재할 뿐이다. 법치주의 국가에서 법이 있는데도 간접차별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두 가지 이유가 있을 것 같다. 간접차별 반대법이 제대로 작동할 수 없는 조건이거나, 우리나라가 법치주의가 아니거나.

 

법이 제대로 작동할 수 없는 조건들

 

결과의 평등을 추구하는 움직임은 역차별이라는 비난에 부딪힌다. 여성과 장애인은 자신이 여성과 장애인이기에 고용 및 승진에서 일정 비율을 보장받는다. 반면 비장애인 남성은 단지 비장애인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제도상 고용이나 승진을 보장받지 못 한다. 여성과 장애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피해를 보기 때문에 능력주의와 공정성에 어긋난다는 논리다. 이때, 소수자는 마치 자신이 잘못한 것처럼 위축된다.

 

능력주의에 어긋난다는 주장 밑에는 효율·합리화에 대한 맹목적인 신념이 깔렸다. 회사의 목표는 높은 효율을 달성하기 위한 합리적인 수단에 맞춰져 있다. 휴직 가능성이 큰 여성과 신체 중 일부가 불편한 장애인은 비장애인 남성보다 효율이 떨어진다고 여겨진다. 효율적이지 못한 수단은 단지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로 비난받는다.

 

하지만 기계조차도 100%의 효율을 달성할 수는 없다. 이루지 못할 욕망은 효율성에 대한 기준만 끝없이 높인다. 효율을 높이라는 요구의 끝에는 일하는 기계와 일하지 못하는 사람만 남게 된다. ‘같이 살자’는 오그라드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다. 효율을 측정하는 기준은 (지금 기준에서)일 잘하는 남성도 언젠가 ‘일못‘으로 만들 것이다. 효율성·합리성에 브레이크를 걸고,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 살 수 있는 환경을 상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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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사 입장에서는 경험 많고 임금피크제로 싸게 부려먹을 수 있는 중장년층이 효율적이었을 것이다(부도가 미래다) ⓒ 두산

 

공정성에 어긋난다는 주장도 문제가 있기는 마찬가지다. 간접차별은 잘못된 기준으로 남성과 소수자가 공정한 결과조차 내지 못하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고치고 쳐내야 하는 것은 기준(육아 부담, 스포츠, 비장애인 중심적 업무환경, 여성에 대한 편견)이지,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공정성에 어긋난 집단은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경쟁에 유리했던 남성 집단이다.

 

한국이 법치주의 국가가 아닌 경우

 

간접차별이 사라져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효율을 중시하는 분위기와 공정성을 가늠하는 기준이 간접차별이 사라지는 것을 어렵게 할 뿐이다. 그런데 한국이 법치주의 국가가 아닌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한국을 떠나거나, 한국을 바꾸거나. 나는 새해 목표를 짰으니 2016년까지는 일단, 열심히 살아보려고 한다.

 

글. 참새(gooook@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