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유감 시즌4] 그동안 고함20은 기성언론을 향한 비판의 날을 계속해서 세워왔다. 새 언론유감 연재를 통해 한 주간 언론에서 쏟아진, 왜곡된 정보와 편견 등을 담고 있는 기사를 파헤치고 지적하려 한다. ‘기레기라는 조롱이 흔해진 지금, 중요한 것은 그런 비판을 자조로 끝내지 않는 일일 것이다. 제한 없이 어떤 기사든 비판의 대상으로 삼고자 한다.

 

[헤럴드경제] 스펙성형시대 “C+A대학 계절학기는 학점세탁소(링크)

“방학에 실시되는 대학교 계절학기가 취준생의 2대 필수 스펙 중 하나인 학점을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활용되고 있다. 기존 학점을 성형하는 셈이다.” (기사 인용)

 

18일 헤럴드 경제는 성형’, ‘세탁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계절 학기를 이용해 학점을 올리는 취준생들에 대한 기사를 보도했다. 학점 경쟁 때문에 고생할 교수들을 걱정하며 마무리된 따뜻한 기사에는 정작 취준생이 스펙을 성형하고 학점을 세탁하는 이유에 대한 고민은 없었다.

 

취준생이 학점을 성형하고 세탁하는 이유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지난 2015년도 하반기 공채 지원 후 취준생 51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10명 중 7명은 기업의 무스펙 서류전형 강화 정책을 전혀 체감하지 못 한다고 밝혔다. 특히 학점을 기입하지 않아도 된다는 서류전형에 지원했던 취준생은 4%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나 학점은 여전히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기사 인용)

 

취준생이 학점세탁을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취업에서 학점이 중요한 기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점이 여전히 중요한 이유를 단지 스펙 초월 채용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서라고 생각하는 것은 유감이다. 스펙 초월 채용이 제대로 작동한다고 해도 취준생은 스펙 초월 채용이 요구하는 새로운 종류의 스펙을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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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 안에 자신을 드러내라는 신종 면접 오디션들 ⓒ SBS

 

스펙 초월 채용이 허울뿐인 게 문제가 아니다. 한국의 취업 환경은 모든 것이 비대칭적이다. 구직자와 구인자 간의 비대칭,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의 비대칭, 정부와 기업 간의 비대칭이 취준생이 학점에 목매고 교수가 방학에도 쉬지 못하는 문제의 원인이다.

 

구직자와 구인자 사이에는 정보의 비대칭이 있다. 취준생은 회사가 어떤 종류의 스펙을 얼마나 선호하는지 그 기준을 알기 어렵다. 일단 할 수 있는 것을 모두 준비하는 수밖에 없다. 심지어 취준생은 자신이 채용에서 떨어진 이유조차도 알지 못한다. 스펙 초월 채용이 자리 잡는다고 할지라도 취준생이 회사가 무엇을 요구하는지 알 수 없다면, 취준생이 학점을 비롯한 스펙들을 관리하는 현상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취준생이 대기업을 선호할 수밖에 없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비대칭도 문제다. 중소기업을 살려 대한민국의 기초 체력을 튼튼하게 만들겠다는 경제민주화는 이제 언급조차 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한FTA 발효를 기점으로 중·소기업이 중국의 가격 경쟁에 밀려 쓰러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취준생은 점점 더 일자리가 한정된 대기업에만 몰리고 대기업은 지원자를 가려내기 위해 채용의 기준을 더욱 세분화할 수밖에 없다.

 

“한 대기업의 인사담당자는 학점을 안 본다고 이야기하지만, 학점과 같은 정량적 수치는 뒤탈이 없는 가장 유효한 기준이라며 최종 선택을 할 때, 스펙이나 업무 수행능력, 면접 점수가 비슷하다면 학점이 조금이라도 높은 지원자에게 눈길이 가게 된다고 말했다.” (기사 인용)

 

20158월 기준 비정규직 근로자가 6271,000명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음에도 기업의 요구를 수용해 노동 5법을 통과시키려는 정부의 자발적 복종도 문제다. 취준생의 요구를 들어준 적이 없는 정부 정책에 기대는 것보다 학점에 매달리는 게 그나마 취업 확률이 높아 보인다. 스펙 말고는 길이 보이지 않는다는 건 이런 뜻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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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탓하지 말고 열심히 공부나 하라고? 나도 대통령 열심히 일하라고 꼰대질하는 거야 ⓒ SBS

 

이와 같은 맥락에 대한 이해 없이 학생들한테 괴롭힘당할 교수나 걱정하는 기사가 유감이다. 사람들이 성형하는 이유는 사회에서 요구하는 미의 기준이 지나치게 높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세탁하는 것은 외부에서 묻힌 때를 지우기 위함이다. 미적 기준의 타당함, 혹은 때가 어디서 왜 묻었는지에 대한 성찰 없이 학점을 성형하고 세탁하는 학생을 비판하는 것은 부당하다.

 

글. 참새(gooook@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