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LLJOY. 흥을 깨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여성혐오와 반성평등적 컨텐츠는 세상에 널리고 널렸다. 그 흥을 깨지 않으면 계속해서 번식할 것이다. 페미니즘은 KILLJOY여야 한다. 우리 모두가 단 한 번도 성평등한 세상을 살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아이템은 무궁무진하다. 앞으로 [킬-조이] 연재를 통해 마음껏 고함20이 느낀 불편함을 말하고 설치며 흥을 깰 예정이다.

 

‘설탕수저’ 물고 나온 20-30대는 “태생적인 단맛 중독자” (해당 기사 링크)

 

한국인의 단맛 중독이 심각해졌다! 다음 중 잘못한 존재는?

1. 의학전문기자
2. 젖병
3. 맛 칼럼니스트
4. 집에서 자고 있던 페미니스트
5. 분유 (공병)

 

‘모유 맛이 가물가물하다’는 표현이 지나칠 정도로 그 맛에 대한 잔상은 남아있지 않다. 그럼 분유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 엄마가 몇 숟가락 줘서 먹은 기억이 있다. 원래 용법처럼 희석해 먹는 방법은 아니지만, 기사에서 저격하는 최초의 ‘단맛 선봉식품’답게 고소하고 달짝지근하고, 무엇보다 맛있었다. 설탕 맛은 어떨까? 나는 17세 전까지 탄산음료를 먹지 않았다. 차라리 보리차나 주스, 그도 아니면 흰 우유를 먹었다. 확실한 것은 모유를 먹은 내가 현재 단맛 추종자라는 사실이다. 탄산, 케이크, 과자, 음식에 들어가는 설탕까지, 단맛이 그냥 좋다. 그렇지만 단맛에 대한 기억 어디에도 (희석한) 분유 혹은 모유는 없다.

 

일단, 왜 모든 여성이 모유 수유를 해야 하는지 묻고 싶다. 이 기사를 보면 모든 아기에게 모유 수유가 가능할 것 같다. 이러한 전제는 자녀가 있는 여성들의 ‘노오력’이 지극하면 못할 것이 없다는 사회의 압박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분유를 거부하는 아기도 있고 모유를 먹지 못하는 아기들도 있다. 제각각이다. 수유 자세 등 방법에 따른 문제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영아를 ‘케어한다’라는, 돌발상황 예측이 소용없는 상황에서 수유가 불가능할 수 있다는 것은 누구나 예상 가능한 일이다.

 

여성의 몸이 모유 수유가 어려운 경우, ‘엄마 프레임’의 압박이 더욱 심해진다. 단순히 젖이 돌지 않는 상태부터, 가슴의 경직이 오거나 영양 상태 및 신체조건이 따라주지 않는 경우에도 모유 수유는 힘들다. 각고의 정성으로 간신히 모유를 먹일 수 있을지 몰라도, 그만큼 여성의 몸은 회복 불가능 상태로 전진하게 된다. 임신만으로도 몸은 그 이전 상태로 완전히 돌아갈 수 없는데, 사회는 여성에게 질 좋은 모유를 책임지고 생산하기를 요구한다. 뼈가 삭고 몸이 변형되는 고통보다 ‘단맛중독 풍조’ 가 더 위험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인가? 과연 그런 추측은 정당한가?

 

설탕이 싫다고 왜 말을 못해?

 

강건한 ‘모유 신화’가 한국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한때 모유 수유의 감소는 전 세계적 현상이었고, 국제보건기구와 유니세프는 1980년대부터 캠페인을 벌이면서 관련된 지침을 마련했다. 미국에서는 분유 회사의 광고가 여성들의 모유 수유를 저지하지 않도록 마케팅을 규제하고 있다. 다만 어떤 사회에서는 이것이 여성들이 끝끝내 지켜야만 하는 절대적 원칙으로 받아들여진다. 여성을 위한 수유실이나 직장 내 수유 타임, 육아휴직 등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상태에서 말이다.

‘분유를 먹이고 싶어서’라는 단서는 부자연스럽기에 통용되지 않는다. 분유는 모유보다 훨씬 떨어지는 영양체계라는 편견과 엄마라면 모유를 포기해선 안 된다는 금기가 있다. 그 편견과 금기는 오랜 세월 여성들이 받은 사회적 압박이 쌓인 결과일 것이다. 분유가 없던 시절에도, 젖이 돌지 않아 괴로워하고 젖몸살에 힘들어하는 여성들이 있었을 테고, 일과 육아를 동시에 해내야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을 것이다. 분유도 나름대로 인정받은 영양학자들이 만든 제품일 텐데, 어쩐지 이것은 ‘선택지’로서가 아니라 차선책, 이도 저도 안 될 때 시도해야 하는 그것으로 취급받는다. 과거 ‘부유층 분유’의 설탕 함량 파동 역시 ‘그러게 왜 설탕 든 분유를 먹여서’라고 비난할 것이 아니라, 분유 회사의 소비자 방침을 따질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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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이 싫으면 빼고 먹으면 될 일이다. ⓒ imbc 마이 리틀 텔레비젼

 

모유가 성인병 등 평생건강을 좌우하고, 면역력을 높여주는 등 매우 유익한 성분을 담고 있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증명된 지 오래다. 모유에서 이유식으로, 천천히 음식섭취의 범주를 늘려가는 과정에서의 분유 활용을 빼고는, 영아기 아이를 키우는 여성들은 모두 아이에게 더 좋은 것(분유 대신 모유)을 먹여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여성이 모유수유를 선택할 수 있는 환경, 그것이 자연스럽게 여겨지는 사회다. 이 과정을 ‘페미니즘의 확산’으로 명명하고 단맛을 해친 원인으로 확정할 수 있을까? 또한, 페미니즘이 퍼져 여성들이 일과 육아의 균형을 맞추려 애쓰는 현상은, 단지 사람들이 단맛을 좋아하게 되었으므로 바람직하지 않은 일일까?

 

“하긴 그가 방송에서 소개한 식재료들은 이튿날 동네 마트에서 동이 난다 하니 그의 영향력의 정도를 가늠할 수 있다. 요즘 젊은 엄마들은 ‘슈가보이’ 백씨의 말대로 주저 없이 된장찌개에도 설탕을 넣는다 한다. “

 

여성들의 사회진출과 페미니즘의 확산이 단맛중독 풍조를 이끌었음을 증명하기 위해, 기사는 반쪽짜리 통계를 제시했다. ‘2010년 한국인의 당 섭취량‘ 에서 중장년층의 당 섭취비율이 가장 높게 나타났음에도 인용하지 않았다. 세계 최고수준의 스웨덴 모유 수유율은 여성과 아기를 위한 정책이 탄탄했기에 가능했다. 개인의 노력만으로 모유 수유율이 증가할 수 없다는 증거다. 엄마들이 음식에 설탕을 때려 붓는다고 못마땅해 하는 무책임한 이들은 ‘설탕 중독’ 풍조를 비판한다는 명분으로  여성을 억압한다는 혐의를 아주 자연스럽게 피해가고 있다.

 

참고/
[국내외 모유수유 추이와 모유수유 증진을 위한 정책방향]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김혜련, 2011

글/ 블루프린트 (41halftim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