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과 ’20대’에 대한 인상비평이 여기저기에서 쏟아지고 있습니다. 이에 청년이슈팀의 [청년연구소]는 청년과 20대를 주제로 한 다양한 분야의 학술 텍스트를 소개하려합니다. 공부합시다!

 

“렛 미 인트로듀스 마이셀프!”

초등학생 때 다닌 영어학원에선 첫 시간에 늘 자기소개를 시켰다. 홀로 자리에서 일어나 모두의 시선을 받는 찰나의 순간. 나는 어색하게 이름과 취미, 좋아하는 음식이나 색깔 같은 것을 말했다.

 

남들에게 나를 소개한다는 건 쉽지 않다. 우리의 삶은 한 단어로 규정할 수 없는 다양한 모습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기소개를 할 때, 나는 나를 규정해야 한다. 취업의 문턱에서 내가 마주한 ‘자기소개서’는 그 옛날 ‘렛 미 인트로듀스’보다 훨씬 당혹스럽다. 정해진 분량과 주제에서 나의 어떤 면을 보여주어야 하는지, 고민 끝에 한 자 한 자 작성하지만 만족스럽지 않다. 여기 써진 게 정말 나일까란 물음이 생긴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자소서 속 나는 기업이 원하는 사람일까?”라는 물음이.

 

이번 [청년연구소]는 이기형·송동욱·구승우·정준·김지수·이단비·박주화의 논문 <청년주체들의 ‘자기소개서’ 작성을 중심으로 한 구직 경험의 문화적인 분석>을 다룬다. 청년들의 자기기술과 세밀한 인터뷰를 토대로 작성된 논문은, 자소서 작성 경험을 중심으로 심각한 취업난에 시달리는 20대의 인식을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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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경제

 

취업을 위한 핵심도구로 부상한 자기소개서

 

현재의 ‘취준’은 계속해서 부담이 가중되는 구조다. 구직자들의 스펙이 점점 상향 평준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저 끝에 최종 합격이 있고, 그 앞에 놓인 수많은 바늘구멍을 뚫어야 한다. 청년들이 마주한 첫 바늘구멍은 자기소개서다. 과거와 달리 자소서는 취업을 위한 핵심적인 도구이자 매뉴얼화된 과업으로 인식되고 있다. 기업은 나란 인간이 얼마나 ‘기업에 맞는’ 훌륭한 인재인지 증명하는 스토리를 원한다. 자소서 속 경험의 질과, 차별성을 드러내는 성취에 주목하는 것이다.

 

자기소개서는 지원자의 가치관이나 장단점, 성장 과정, 핵심 역량 등을 상세하게 요구한다. ‘XX기업이 지원자를 뽑아야 하는 이유’를 대놓고 묻는 곳도 있다. 이러한 항목화는 구직자가 기업의 인재상에 맞게 자신의 경험을 재구성하도록 유도한다. XX기업에 자소서를 쓰기 전에 먼저 XX기업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기업의 역사와 비전을 살피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됐다. 서류전형에서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스스로 기업이 원하는 사항들을 분석하게 되고, 합격 자소서나 자소서 컨설팅을 토대로 자소서를 ‘양식화’한다. 기업의 비전과 직무에 맞는 장점을 어필하거나, 담당 업무와 최대한 관련 없는 단점을 서술하는 식이다.

 

자소서가 자소설이 되는 과정

 

우리는 기업의 인사 담당자들이 내 자소서를 검토하는 시간이 아주 짧다는 걸 알고 있다. 잠깐 스쳐 지나갈 내 자소서를 눈에 띄게 만들어야 한다. 취업 커뮤니티에는 기업이 좋아하는 에피소드, 자소서에 절대 쓰지 말아야 할 내용 등이 팁으로 올라오고, ‘두괄식 문장으로 가독성 있게 써라’는 식의 조언도 등장한다. 이렇게 자기소개서는 정형화생산물이 되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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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본인의 이야기를 쓰면 붙여주나요? ⓒ CJ ‘링크’

 

교수님은 학생들에게 ‘원데이 슈팅’을 요구하셨고 나는 한 시간 동안 학교 주변에서 헤매다 결국 ‘폐지 줍는 할머니’를 마주쳤다. 그 당시에는 “오늘 안에 뭔가를 해 가야 한다”는 생각에 다시 한 시간가량 할머니를 졸졸 따라다니며 촬영 허가를 받았다. 당시에는 할머니의 모습을 그저 찍는 것에 불과했지만 [훗날] 자기소개서 안에서 ‘그날에 있었던 일련의 행위’들은 내가 본디 가지고 있던 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담은 것으로 ‘포장’되었다. 달리 말하면 이전 시점에 그다지 큰 의미를 갖지 못했던 사건들이 자기소개서 안에서는 상당한 의미를 가진 사건으로 탈바꿈했다는 것이다. 며칠 전 한 언론사의 취업설명회에 다녀왔다. 2013년에 입사한 한 기자가 말했다. ‘저도 자기소개서 글감이 부족해서 걱정이었어요. 작은 것도 새롭게 잘 포장해야 해요’라고… (응답자 M)

 

자소서가 ‘양식화’된다는 것은 청년들의 경험들이 ‘스펙화’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린 시절부터 대학 생활, 그리고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나를 책상에 펼쳐두고, 이 중 어떤 놈이 인사담당자의 입맛에 맞을지 고민한다. 적절한 놈을 발견하지 못하면, 지금까지 뭐 하고 살았나 자책한다. 2n년 간의 삶을 팔리기 좋게 녹여내야 하는 상황에서, 삶은 객체로 전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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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스N

 

고민을 거듭해 자소서를 써갈수록, 청년들은 자기분열에 빠진다. 자기소개서 속 나는 도구적인 선택과 재구성을 거쳐 완성된다. 새빨간 거짓말까진 아니지만, 적당한 거짓과 포장이 섞여 있다. ‘자소서의 나’를 바라보는 ‘자소서 밖’의 나는 괴리를 느낀다. 그렇게 자소서는 자소설이 된다.   

 

자소설를 대하는 청년 세대의 자세

 

자기소개서를 쓰는 건 나지만, 자기소개서에 의해 내가 소외되는 모순. 이를 대하는 청년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난다.

 

# 그래서 어쩌라고?
자기소개서와 실제 모습의 괴리를 인식하고 있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받아들인다. 자소서에 과장되거나 거짓을 섞은 내용을 적으며, 청년들은 우선적으로 죄책감이나 자괴감을 느낀다. 그러나 반복되는 구직 경험 속에서 취업 경쟁에 살아남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냉소하게 된다. 팔리기 위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이는 나아가 (취업하기 위해) 자소설 작성을 ‘당연히’ 해야 하는 것으로 인식하는 자기 합리화로 이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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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경제

 

# 나는 문제 없는데?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이 자신의 가치관에 딱 들어맞는다고 여기거나, 지원하는 직종에 자신이 가진 경험이 적합하다고 스스로를 설득한다. 본인조차 눈치채지 못하게 황급히 자기 분열을 봉합해버리는 것이다. ‘직무능력이 곧 나’라는 전제에 동화되며(그래서 인생=직무 능력을 기르고 써먹는 과정), 내가 스펙을 쌓는 것은 기업의 요구에 의해서가 아닌 내가 원하는 능력을 갖추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생존수단으로서 기업의 요구를 체화하는 것이다.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며 청년세대가 경험하는 자기 분열, 그리고 이에 대한 반응은 결국 살아남기 위한 과정이다. 어쨌든 취업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강자의 논리를 수용할 수밖에 없다. 저항의 결과는 뻔하다. 자소설은 생존을 위해 합리적인 주체로서 행동한 결과이지만, 결국 모두가 힘들어지는 모순을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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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N 드라마 <미생>

 

계절이 바뀌면 나도 취업 경쟁에 뛰어들 것이다. 자소서도 수없이 쓰게 될 것이다. 썼다 떨어지고 썼다 떨어지고, 몇 번 겪으며 내 자소서도 자소설이 될 테다.

 

취업을 위한 자소서는 치밀하게 내 경험과 생각을 재구성하게 만들 것이다. 팔리기 위한 거짓말이 늘어나면, 자소서 속의 나는 희미해질지 모른다. 하지만 어쩌겠나, 일단은 팔리고 봐야 한다. 내가 사라지는 것보다 도태되는 게 더 무섭다. 끝이 보이지 않는 바늘구멍 세상에서, 분열도 극복도 개인의 몫일 뿐이다.

 

 

글. 달래.(sunmin532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