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유감 시즌4] 그동안 고함20은 기성언론을 향한 비판의 날을 계속해서 세워왔다. 새 언론유감 연재를 통해 한 주간 언론에서 쏟아진, 왜곡된 정보와 편견 등을 담고 있는 기사를 파헤치고 지적하려 한다. ‘기레기’라는 조롱이 흔해진 지금, 중요한 것은 그런 비판을 자조로 끝내지 않는 일일 것이다. 제한 없이 어떤 기사든 비판의 대상으로 삼고자 한다.

 

[시사저널]  ‘내 탓이오!’ 정신이 필요한 때 (해당 기사)

“뉴스 보기가 두렵습니다. 좋은 뉴스도 있지만 나쁜 뉴스가 워낙 많다 보니 포털을 클릭하면 비관적인 이야기, 악당 이야기투성이입니다. 위기를 벗어날 뾰족한 수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해결책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내 탓이오!’ 기풍의 부활이 답입니다.” (기사 인용)

 

1월 28일 시사저널 오피니언 코너에 올라온 글이다. 이 글은 헬조선, 흙수저 등으로 표현되는 지금의 대한민국에서 개개인의 각성을 통해 이 불행한 상황을 이겨나가자는 메시지를 전한다. 이 글에서 말하는 개인적 각성은 ‘내 탓이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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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말년

 

글쓴이는 이 글에서 대한민국의 현황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 시작으로 살인적인 입시, 취업경쟁, 해고 등등 소위 ‘헬조선’이라고 불리는 요소에 대해 말한다. 그리고 이런 ‘나쁜 뉴스’를 벗어날 방법으로 ‘내 탓이오!’를 제시한다. 구조적 문제를 개인적 문제로 여기고 그 해결방법을 개인에서 찾는 이 방법은 얼핏 봐도 말이 되지 않는다.

 

“운용이 안 되는 것은 개인적·집단적 각성과 연관 있습니다. 개인이 모여서 집단이 되니 결국 개인의 문제로 귀결됩니다.” (기사 인용)

 

글쓴이는 제도적, 시스템적 분야가 잘 되어있는 부분이 있음에도 잘 운용되지 않는 이유로 개인의 문제를 말한다. 개인이 모여서 집단이 되니 결국 개인의 문제라고 한다. 하지만 집단의 문제와 개인의 문제는 엄연히 다른 부분이다. 구조적 문제는 개인의 영역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거시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문제다.

 

글쓴이 말대로 세계적인 수준의 중소기업 지원제도나 환경 규제가 있음에도 중소기업이 성장하지 않고 환경이 좋아지지 않는 것은 개인적 각성이 부족해서일까? 아니면 잘 성장하는 중소기업을 상대로 하는 대기업의 횡포나 중소기업을 생각하지 않는 정치가들의 이상하고도 참신한 규제 때문일까? 시장의 주도권을 대부분 대기업이 쥐고 있는 현 상황과, 그런 대기업에 대한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며 노동개혁과 원샷법을 통과시키려는 정치판을 보면 어느 정도 답이 나온다. 

 

글쓴이는 제도적, 시스템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도 중요하다고 한다. 하지만 글에서는 그 이전에 좋은 제도를 운용하지 못하는 개인을 탓하고 있다. 우리는 개인적 각성을 통해 이런 좋은 제도를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라도 해야 된다는 말처럼 들린다. 우리 사회의 여러 맥락을 볼 때 개인적 각성이 부족해서 좋은 제도가 운용되지 않는다는 말은 더는 와 닿지 않는다.

 

“냉정히 생각하면 그 정치인들을 누가 뽑았나요. 정치가 삼류면 그 정치인을 뽑은 기성세대 유권자들은 깊이 반성해야 합니다. 그러나 한국에 그런 유권자는 별로 없습니다.” (기사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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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투데이

 

글쓴이는 이런 제도적, 시스템적 문제를 이어서 정치 이야기를 펼친다. ‘정치인 이야기만 나오면 맨날 욕하기 바쁘다, 하지만 그 정치인들은 우리가 뽑지 않았느냐’고 말한다. 글쓴이는 이어서 5년짜리 대통령이 해봤자 얼마나 할 수 있느냐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자기 탓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 때문에 대통령이 성공하기 어렵기에 ‘내 탓이오!’ 정신이 절실하다고 한다.

 

글쓴이는 진정으로 ‘내 탓이오!’ 라고 말해야 할 대상을 잘못 짚었다. ‘내 탓이오!’를 외쳐야 할 사람은 국민 개인이 아니라 임기 4년의 국회의원과 임기 5년의 대통령이다. 그들에겐 우리와 같은 개인과 달리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만한 권한과 힘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구조적인 부분을 바꿀 수 있는 ‘정치인’ 개인에게 각성을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큰 틀을 바꾸기 어려운 ‘국민’ 개인에게 개인적 각성을 요구한다.

 

개인적인 각성이라면 이미 충분히 많이 이야기가 나왔다. 힐링이라던지 각종 멘토의 등장은 사회의 어려움을 개인적인 노력으로 이겨보려는 시도였다. 하지만 그런 시도로 개인들은 어려움을 이겨내지 못했다. 어려움의 원인이 개인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헬조선을 이야기하고 흙수저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사회가 이렇게 된 것을 누구를 콕 집어서 탓할 수는 없다. 글쓴이도 말했듯이 대통령도 해봐야 5년이다. 하지만 그 대통령이 지금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건 국민 개개인을 휩쓸고 있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다. 대통령뿐 아니라 국회의원도 마찬가지다. 정치인에겐 그럴만한 힘이 있다. 개인들은 이미 사회적 제도를 충분히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짓을 하는 건 정치인이고 그 피해를 받는 건 개인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런 정치인을 뽑은 내 탓이지’ 라고 생각하라는 ‘내 탓이오’ 정신은 문제의 본질을 흐릴 뿐이다.

 

 대표이미지. ⓒ Justin Bieber, Sorry 뮤직비디오 캡쳐

글. 사미음(blue9346@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