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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연구소] ‘D.P 개의 날’은 만화가 아니다

 ‘청년’과 ’20대’에 대한 인상비평이 여기저기에서 쏟아지고 있습니다. 이에 청년이슈팀의 [청년연구소]는 청년과 20대를 주제로 한 다양한 분야의 학술 텍스트를 소개하려합니다. 공부합시다!

 

훈련소로 동생을 바래다주는 차 안에서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모르겠는 아버지의 30년 전 군 생활 무용담은 끝날 줄 몰랐다. “요즘은 다 선진병영이야. 두들겨 맞고 이런 건 옛날이야기라고. 사회에서 적응 못하는 멍청한 놈들이나 탈영하고 관심병사 같은 거 되는 거야. 너는 잘할 수 있어.”

 

‘아버지, 그렇지 않아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었지만 동생의 표정을 보고서는 입을 닫아버렸다. 나는 늘 군대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훈련소에서 덩치 큰 간부가 애국가를 크게 부르지 않으면 얼차려를 주겠다고 겁을 잔뜩 주었을 그때도, 잠을 자고 싶어 화장실 변기 칸에 쪼그려 앉아 몰래 쪽잠을 자던 그때도, 허락 없이 책을 읽는다고 끌려가 고참에게 발로 걷어차였던 그때도, 자신의 더러운 농담에 웃어주지 않았다고 화를 내는 선임의 얼굴을 쳐다보던 그때도 나는 늘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운이 좋게도 나는 견뎌냈다. 그건 내가 특별히 강해서도, 똑똑해서도 아니다. 다만 도망쳐야만 했던 결정적인 순간이 오지 않았을 뿐이다. 김보통의 웹툰 ‘D.P 개의 날’에 적혀있는 기록처럼, 오늘도 누군가는 잠들지 못할 테고, 일부는 도망치고 싶다고 생각할 것이고, 그중 일부는 탈영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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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준호 상병 ⓒ 김보통, ‘D.P 개의 날’, 레진코믹스

 

보이지 않았던 사람들의 이야기

 

‘D.P 개의 날’의 주인공 안준호 상병은 탈영병을 쫓는 헌병인 군무이탈체포전담조(D.P)다. 한국군의 하루 평균 탈영병 수는 1.6명, 오늘도 누군가는 그곳에서 도망쳐 나와 어딘가를 배회하고 있을 것이다. 작가는 탈영병을 비난하거나 탓하지 않는다. 묵묵히 그들의 이야기를 지켜볼 뿐이다. 안준호가 특별히 선해서 탈영병을 쫓는 것이 아닌 것처럼, 탈영병도 특별히 악해서 탈영한 것은 아니다.

 

작가는 우리에게 묻는다. 과연 탈영이 요즘 젊은이들이 나약하기 때문인 걸까? 탈영을 한 그들은 정말 부적응자일까? 사실 그건 그 사람이 무능력해서도, 멍청해서도,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서도 아니다. 그가 탈영을 결심하게 된 그 상황이, 그 결정적 사건이 나에게는 ‘찾아오지 않았을 뿐’이다.

 

모든 사람이 주어진 시련을 극복하고 버텨낼 수 없다는 것을, 여전히 조직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이 존재함을, 그걸 방치하고 방관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알면서도 애써 진실을 피하고, 도망친 자들을 무능력하고 비겁한 자로 모는 건 버젓이 벌어지는 폭력과 억압을 정당화하기 위함일지도 모른다.

 

나는 ‘운 좋게도’, ‘D.P 개의 날’처럼 코를 곤다고 방독면을 쓴 채 자다 두들겨 맞는 ‘최창식’이 아니었고, 여자랑 하루 더 있고 싶어진 ‘김진성’이 아니었으며, ‘이범용’처럼 장교의 가혹행위를 당하지 않았고, ‘박희성’처럼 자지를 만지는 선임이 없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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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보통, ‘D.P 개의 날’, 레진코믹스

 

“맞을 짓거리를 하는 애들한테도 문제가 있지”라는 사람에게 주인공 안준호는 묵묵하게 답한다.

 

“(군대 폭력이) 보이지 않으니깐 없다고 생각하는 거지. 자신과 자신 주변의 고통이 아니고, 나약한 개인의 탓으로 돌리면 마음이 편하니깐 ”

 

군대가 책임지고 변한다고?

 

작가 스스로가 밝혔듯 이건 누군가의 아들을, 형제를, 연인을 찾아가는 자전적 이야기다. 만화가 비현실적이고 불쾌하다는 지적에 대해 작가는 피하지 않고 당당히 말한다.

 

“아마도 이 만화를 보신 절대다수의 분들은 만화에 등장하는 것과 같은 가혹행위를 당한 적도, 가한 적도 없으실 겁니다. 실제로 이런 일이 지금도 아직도 벌어지고 있으리라고 생각하시는 분 역시 적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현실’을 직시할 수 있도록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렇다. 요즘 그런 군대가 어디 있느냐는 아버지의 말과 달리, ‘현실’에서는 전 군에서 연평균 70여 명의 군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수치상 0.1%의 사람들이 아닌, ’70건’ 각각의 죽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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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보통, ‘D.P 개의 날’, 레진코믹스

 

개인적으로 웹툰의 백미는 바로 탈영병 오정환과 안준호가 대치하는 상황이다. 고통받을 때는 보이지도 않던 사람들이, 벗어나려 할 때 서야 나타난다. 애당초 어떤 이유로 고통스러웠는지보다 도망쳤다는 사실만 문제가 될 뿐이다. 개인의 ‘동의 없이 가둬진 곳에서 스스로의 의지로 벗어나는 것조차 용납할 수 없는 것이냐’고 오정환은 묻는다.

  

탈영병을 보는 민간인의 시선에 탈영병의 고통은 보이지 않는다. 탈영은 그들이 나약해서, 정신력이 부족해서, 애국심이 없어서, 단체생활에 적응하지 못해서 발생할 뿐이다. 사고가 발생하면 군과 언론은 ‘나약한 개인’을 만드는 데 집중한다. 가해자에게도 같은 절차가 진행된다. 가해자는 어느새 ‘사악한 개인’이 돼 있다. 군에서 발생한 범행은 ‘제정신이 아닌’, ‘어려서부터 가정환경이 좋지 않은’ 개인이 저지른 것이다. 피해자와 가해자, 두 개인만 존재할 뿐 군대와 사회 구조의 책임은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그 책임감 회피의 과정과 결과는 ‘D.P 개의 날’에 의해 적나라하게 까발려졌다. 피해자는 죽거나 탈영할 수밖에 없었고, 가해자도 한때는 피해자였으며, 그 연속된 피해의 과정 속에서 군대는 침묵했다. 그래서 ‘D.P 개의 날’은 그냥 만화가 아니다. 지극한 현실이자, 현실 속 우리의 민낯이다. 

 

이것으로 안준호와 나의 이야기는 끝이 났다. 아니, 끝이 난 것처럼 보인다. 더 이상 내가 겪을 고통이 아니기에 우리는 외면한다. ‘진짜 사나이’를 보며 웃고, 술자리 군대 무용담은 멈출 줄 모른다. 가끔 나오는 군부대 사고 소식엔 이상한 놈과 나약한 놈, 불쌍한 놈만 있을 뿐이다. 동생의 입대 날, 입소식을 보며 웃는 아버지의 얼굴이 왠지 모르게 씁쓸했다. 

 

대표이미지. 김보통, ‘D.P 개의 날’, 레진코믹스

글. 이주형 (manghak@naver.com)

이주형

내일을 상상합니다

1 Comment
  1. 건빵

    2016년 2월 10일 19:46

    http://www.lezhin.com/comic/dp/p1

    김보통 작가님 팬으로서 너무 반가운 글이네요.
    글 안에 작품 직링크도 있었으면 더 좋았을것 같습니다.
    작품 링크 넣어 두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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