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유감 시즌4] 그동안 고함20은 기성언론을 향한 비판의 날을 계속해서 세워왔다. 새 언론유감 연재를 통해 한 주간 언론에서 쏟아진, 왜곡된 정보와 편견 등을 담고 있는 기사를 파헤치고 지적하려 한다. ‘기레기’라는 조롱이 흔해진 지금, 중요한 것은 그런 비판을 자조로 끝내지 않는 일일 것이다. 제한 없이 어떤 기사든 비판의 대상으로 삼고자 한다.

 

겸손하면 좋다. 겸손은 두말할 필요 없이 좋은 태도이고 가치다. 하지만 우리는 겸손이라는 단어가 가진 뉘앙스 때문에 ‘겸손’에 전제된 권력관계를 놓칠 때가 있다. ‘누가’ ‘누구에게’ 겸손해야 하는가? ‘얼마나’ 겸손해야 하는가? 겸손한 건가 겸손 ‘해야만’ 하는 건가?

 

조선일보는 김을동 의원의 발언을 다룬 오피니언 ‘똑똑한 여자‘ 를 발행했다. 꼰대 아저씨들이나 담배 피우며 수군댈 말을 했다며 김을동 의원을 비판한다. 그런데, 결론이 조금 이상하다.

 

이상한 점1.

 

“실제로 리더십 전문가들은 충고한다. 강한 여자를 두려워하고 멀리하는 한국 사회에선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그 첫째가 따뜻함으로 무장하는 것이다. (중략) 따지고 보면 이 전략은 여성에게만 해당하는 것도 아니다. 저 잘난 맛에 사는 남자도 밉상이긴 마찬가지 아닌가. 김 의원의 잘못은 ‘여자가…’라는 단서를 앞에 붙인 것이다.” (기사 인용)

 

수군덕 거리는 게 잘못됐다고 말했던 김윤덕 조선일보 차장(이하 직함 생략)은 갑자기 ‘그러니까 수군덕댈 일 없게 네가 알아서 조심해’라고 충고한다. 심지어 알아서 조심하는 게 남녀 모두에게 해당하는 ‘겸손’의 가치라고 말한다. 김을동 의원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말이다. 자신의 옳음을 증명하고 싶었는지 김윤덕은 독일의 총리 메르켈의 촌스러운 외모까지 예로 든다.

 

“그런 점에서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똑똑한’ 여자다. 촌스러운 외모, 말하기보단 주로 듣기, 속내 드러내지 않기, 남편 저녁상을 위해 장보기까지 대중에게 사랑받는 방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여자다.” (기사 인용)

 

그런데 궁금한 점이 있다. 메르켈의 외모를 언급한 그는 남성 대통령인 오바마의 외모가 어떤지도 신경 쓰고 있을까. 겸손을 이유로 오바마의 외모가 화제가 된 적은 없다. 오바마는 겸손하기 위해 촌스럽게 외모를 가꿀 필요가 없지만, 메르켈은 겸손하기 위해 촌스러운 외모를 겸비해야 한다. 김윤덕은 남녀가 모두 겸손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남성인 오바마의 겸손과 여성인 메르켈의 겸손은 같은 겸손이 아니다. 또한 겸손을 위해 여자의 외모가 촌스러워야 할 필요성에 대한 근거는 어물쩍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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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촌스러운 외모’뿐만이 아니라 ‘말하기보단 주로 듣기’, ‘속내 드러내지 않기’, ‘남편 저녁상을 위해 장보기’ 등도 다 이상하다 ⓒ MBC

 

이상한 점2.

 

“어느 결혼 정보 업체가 혼기 찬 남성들에게 ‘가장 꺼리는 신붓감’이 누구냐 물었다. 유학 다녀온 여자, 자취하는 여자, 무전여행 해본 여자, 여대(女大) 나온 여자 순이었다.” (기사 인용)

“이런 ‘아픔’ 있는 여성들에게 새누리당 김을동 의원의 말은 듣기 거북했을 것이다.” (기사 인용)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또 있다. 남성은 저 잘난 맛에 살아야 밉상이 되지만, 여성은 ‘네, 네’ 하지 않으면 밉상이다. 같은 밉상이라 말하기엔 겸손의 기준이 너무 기울어 있다. 게다가 기울어져 있는 겸손의 기준은 ‘이런’ 여성 혹은 ‘저런’ 여성에게만 적용되지 않는다. 김윤덕은 “‘이런 아픔’이 있는 여성들에게” 김을동 의원의 말이 듣기 거북했을 거라 말하지만, 실상 기울어져 있는 겸손의 기준은 모든 여성이 겪고 있는 문제다.

 

결국 여성은 남성을 포용할 수 있는 여성이 되지 못하면 ‘김치녀’가 되기에 십상이다. 개념녀와 김치녀 사이에 양자택일을 강요당하는 상황에서 겸손하라는 것은 ‘개념녀’가 되라는 말과 다름없다. 겸손해야 한다는 말속에는 ‘여성이 남성에게, 남성이 바라는 방식으로, 남성보다는 뛰어나지 않게 겸손해야 한다’는 말이 감춰져 있다.

 

오피니언은 현실적인 조언을 한 건데 왜 이렇게 죽자고 달려드는지 의아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현재가 괴로운 사람에게 그 현실에 가만히 있으라고 말하는 건 적절한 조언이 아니다. 그럴 바에는 충고하지 말고 겸손히 가만히 있으면 좋겠다. 잘난 척한다는 말은 이 오피니언처럼 조언이랍시고 하나마나 한 말을 할 때 쓰는 거다. 겸손이 필요한 사람은 여성이 아니라 바로 당신이다.

 

대표이미지. 헤럴드경제 

글. 참새(gooook@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