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서울대 합격자를 많이 배출한 상위 50위까지의 고등학교 중 상당수를 특목고·자사고가 차지하고 있고, 비평준화 지역이 아닌 곳의 일반고는 거의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관련 기사: 서울대 합격, 외대부고 76명 1위… 상산고는 정시 45명 최다)

 

물론 통계대로 국제중, 특목고를 거쳐 명문대에 진학하는 비중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내가 겪은 ‘명문대에 이르는 결과’는 단순히 어느 학교를 나왔느냐만이 좌우하는 건 아니었다.

 

나는 흔히 명문고라고 불리는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 고등학교는 특목고는 아니었지만, 나름 서울 내의 ‘괜찮다’고 꼽히는 구에 위치했고, 그 구에서 가장 명문고로 꼽히는 고등학교였다. 고등학교 바로 옆 아파트 단지는 낡았음에도 10억을 호가했는데 그 이유는 그 고등학교에 자식을 보내기 위해 다른 구에서도 학부모들이 이사를 오기 때문이었다.

 

그 구에 사는 사람들은 학교와 집 거리가 멀었지만 어떻게든 우리 고등학교를 보내기 위해 안달이었다. 입학식에서 교장은 우리 학교는 작년에 두 자릿수의 서울대 입학생을 배출했다는 점을 강조하며 끊임없이 ‘명문’이라는 단어를 반복했다.

 

“너희, 당연히 재수해야지?”

 

그러나 명문고라고 해도 일반고였고, 구에 있는 거의 모든 중학교에서 학생들이 왔기 때문에 잘 사는 학생도, 못 사는 학생도 있었다. 그만큼 공부를 전국권으로 잘하는 친구도, 전국권으로 못하는 친구도 있었다.

 

명절이 지나면 어느 친구는 이번 명절에 세뱃돈을 200만 원’밖에’ 못 받았음을 한탄했지만 누군가는 20만 원’이나’ 받았다며 기뻐했다. 물론 그 격차는 어느 학교에나 있을 테지만, 우리 학교는 그 정도가 심해서 선생님들은 으레 “우리 학교엔 중간층이 없다”고 이야기하곤 했다.

 

사람들이 예상하듯, 당연히 잘 사는 아파트 친구들이 학교의 상위권과 전국의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유는 당연했다. 시작점이 다르기 때문이었다. 나처럼 단지 학교의 주변 동네에 살아서 입학한 친구들은 고등학교 입학 전까지 학원을 거의 다녀본 일도 없었다.

 

하지만 상위권 친구들은 벌써 인생의 대부분을 학원에 바쳤고, 학원이 삶의 대부분 기억이자 학원 친구가 학교 친구보다 더 친했다. 그들에게는 사교육과 가정 내 전업주부의 집중적인 교육투자가 익숙했고, 나를 비롯한 친구들은 방과 후 학교 프로그램과 맞벌이가 익숙했다.

 

허나 그 불평등을 학교를 다니면서는 느끼지 못했다. 그들이 잘살건 못 살건 그들은 친구였으니까. 불평등을 느낀 건 오히려 고등학교를 졸업할 시즌인 1, 2월이 되어서였다. 수능 때 제 점수가 나오는 고3들이 없다지만, 나를 비롯한 수많은 친구들은 입시를 망쳤다.

 

그러나 난 재수를 할 수는 없었다. 개인적인 결정 여부를 떠나서 고3 내내 집에서 들었던 말은 “우리 집에 재수는 없다”였고, 나는 그 말의 전후 사정을 알고 있었다. 졸업식 날, 나와 마찬가지로 수능을 망친 상위권 친구들과 대화를 하고 있는데 담임선생님이 다가왔다.

 

“너희, 당연히 재수해야지?”

 

말문이 막혀 말을 하지 못하고 있는 나 대신 다른 친구들이 대답했다. 이미 재수학원에 등록까지 마쳤노라고 했다. 유명한 강남의 재수학원이거나 기숙형 학원이었다. 내 이름을 굳이 한 번 더 부르며 재차 묻는 선생님 앞에서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을 흐리고는 자리를 피했다.

 

재수할 용기도 없었지만, 사실 내게 재수는 선택의 문제는 아니었다. 내가 아무리 세상에다가 “입시를 너무나 망쳐버렸어요”라고 외친들, 나는 어쨌거나 지금 내가 가진 성적표로 대학을 가야 했다.

 

다른 한 친구도, 또 다른 내 친구도… 내 주변의 많은 친구들이 제 실력만큼 수능을 보지 못했다. 그리고 나처럼 묵묵히 그 성적표대로 대학을 쓰거나, 성적 장학금을 받고 입학하기 위해 그 성적보다 더 낮게 대학교를 쓰곤 했다.

 

한편 또 다른 내 친구들은 아무 고민 없이, ‘원래 내 성적을 되찾아야지’라는, 사실 우리 모두가 가진 그 마음을 이루기 위해 재수를 했다. 성적을 되찾고자 하는 열망은 누구에게나 있었지만 그건 누구나 실현할 수 있는 열망은 아니었다.

 

다시 수능 볼 기회를 얻지 못하고 체념하는 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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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1년 더하게 됬다는 게 기쁨은 아니지만… ⓒ 미국드라마 <글리> 캡처

 

내가 이전까지 살던 동네 친구들은 대부분이 재수를 하지 않았다. 다니던 고등학교와 그리 멀지 않은 동네였지만, 그 동네는 공부를 잘 못하는 동네였고 학교의 명문대 진학률 역시 높지 못했다.

 

개중에 재수를 택한 몇몇은 그 안에서 ‘잘 산다’고 평가받던 친구들이었다. 명문고에서 만난, 명문이라는 이름이 어울리는 친구들은 모두 재수를 했다. 삼수를 한 친구도 더러 있었다. 혹은 대학교를 등록하고 나서 다른 대학교로 옮기는 반수를 했다.

 

반면 돈이 없는데 ‘패자부활전’을 하고 싶다면 빙빙 돌아가야 했다. 한 친구 역시 수능을 망했고, 반수 준비를 위해 장학금을 받으며 전문대에 입학했다. 그곳에서 반수에 성공해 부산에 있는 4년제 학교에서 다시 신입생 생활을 시작했다. 그 친구는 연고도 없는 부산에서 홀로 자취를 하며 2년간 독하게 학교 공부와 편입 공부를 병행했고, 1년에 600개 이상의 라면을 먹어치웠다.

 

친구는 편입 시험에 합격한 학교들의 이름을 대며 어디를 갈지 고민했지만, 결국 사회에서 더 쳐주는 사립대학 대신 등록금이 저렴한 국립대를 택해야 했다. 돈 때문에 재수, 삼수 대신 훨씬 돌아가는 길을 가야 했고, 노력의 결과에서도 더 낮은 것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서울 내 26개 구의 서울대 입학 순위와 평균 아파트값 순위가 거의 일치한다는 통계가 있었다. (관련 기사: 집값 낮은 43곳, 서울대 입학 0, 신임 법관 배출 1~2위 강남·서초) 이제 우리에게 ‘시작의 불평등’은 흔한 이야기다. 돈이 많아서 더 일찍, 더 많은 공부를 해서 국제중에 간다. 그리고 특목고에 가고, 더 좋은 대학교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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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싼 아파트에 살면, 서울대를 잘 간다 ⓒ 오마이뉴스

 

하지만 내가 목격한 것은 ‘끝’의 이야기다. 시작이 어떠했건 누군가에게는 만회할 1년이나 2년이 주어졌고, 누군가는 떨어진 성적보다도 더 낮은 대학교를 택했다. 불평등은 시작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끝에서, 트랙의 결과에서 가장 잔인하게 그 모습을 드러낸다.

 

내 몇몇 친구들은 1년과 2년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을 더해서 자신이 가야 마땅하다고 여겼던 ‘제 자리’를 찾아갔다. 반면 나를 비롯한 몇몇 친구들은 ‘모의고사 성적표에 나타났던 자리는 꿈이고 이게 원래 내 자리구나’라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영화 <설국열차>에는 다음과 같은 대사가 나온다.

 

“애초에 자리는 정해져 있어. 나는 애초에 머리 칸! 당신들은 꼬리 칸! 당신들의 위치를 잘 알라고!”

 

고3의 끝에서 우리는, 그 대사처럼 우리의 위치를 알고 선택해야만 했다. 혹은 자신에게 남겨진 패를 받아들였다. 누군가는 재수를, 누군가는 대학 입학을. 이 이야기가 더 무서운 것은, ‘끝’에서 끝난 게 아니라 끝은 다시 시작점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원래 내 성적을, 내 자리를 되찾겠다’는 마음을 가졌으나 포기할 수밖에 없던 친구들에게 사회는 말하겠지.

 

“그러기에 공부 좀 열심히 하지 그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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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성이미지. ⓒ 연합뉴스

글. 감언이설(gchhg2005@naver.com)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동시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