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비 예비후보의 전략은 엉터리다. 청년과 여성이라는 두 타이틀이 대중을 자극하기엔 충분했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오히려 그는 어려서, 또 ‘여성’이라서 비참한 모양새로 소비 당할 뿐, 설득력 있는 캐릭터를 만들어 내진 못 했다. 역설적이게도, 스스로 그 자신에 대한 혐오적 소비에 동조한 꼴이라 할 수도 있겠다.

 

‘조은비 소비’에 있어서 언론의 역할은 특히나 컸다. 언론은 ‘여성 후보’로서 여성문제에 대한 접근성을 평가(기대 혹은 우려)하거나 청년 문제에 대한 후보의 행보를 비판하기보다 ‘예쁜 얼굴’로 대중을 자극하기 바빴다. 여성이 공적 무대에 섰을 때 사회가 보여주는 질 낮은 관심이 적나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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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짱’이 조은비를 대변했다

 

그렇게 언론과 대중이 합심하여 만들어낸 조은비 예비후보의 캐릭터는 그저 ‘젊고 예쁜 여성 후보’다. 그 캐릭터가 만들어질 동안 그는 ‘눈요깃거리’ ‘그러나 골빈 년’ ‘예쁘면 뭐하나’ 등의 공격에 시달렸다. “얼짱 후보 실제로 봤더니.. 경악!” 정도의 정말이지 경악스런 호도 이후엔 (주로 진보 진영 내에서) ‘어리고 생각 없고 예쁘지도 않은 파렴치한 새누리당’이 그의 꼬리표가 됐다.

 

아주 자연스럽게, ‘조은비 비판’은 성적 조롱이나 외모비평을 자연스럽게 끌어안는다. 정치적으로 비판받을 지점이 존재한다는 점은 좋은 핑계다. 사실 두 영역은 완전히 다른 것임에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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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이러지 좀 말자 ⓒ 헤럴드경제

 

그건 그냥 혐오다

 

아마도 새누리당 조은비 예비 후보에 대한 정치적 비판은 타당하다. 그 자신의 불성실이나 무능 때문이든 홍보실 차원의 전략적 실패든 간에 그는 비판의 여지를 충분히 보여줬다. 정치적 영역에서 그가 보여준 것은 아직 거의 전무에 가깝고 인터뷰에선 오히려 미덥지 못한 모습을 노출하기도 했다. 노동법에 대한 생각을 말하지 못한 해당 인터뷰 영상은 두고두고 놀림거리가 됐다.

 

공인에 대한 비판이 인터넷상에서 격한 비난으로 변모되는 건 사실 흔히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새누리당 후보이자 ‘청년’이고 ‘여성’인 조은비가 비난받지 말아야 할 이유가 있다. 어쩌면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했을지 모를 비판이나 비난 속에도, ‘가벼운 인터넷 문화니까!’ 정도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짙은 혐오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약자 층위에 대한 구조적 혐오 말이다.

 

이 말은 결코 조 후보를 지지한다는 것도 옹호하겠다는 것도 아니다. 그를 지지하지 말아야 할 이유, 그가 비판받아야 할 이유를 나열하는 건 오히려 쉬운 일이다. 단지 후보를 둘러싼 혐오적 발언들을 목격했을 때 분노의 방점은 ‘적절치 못한 후보’ 조은비가 아닌 그를 둘러싼 ‘여성혐오’에 찍힐 수밖에 없다.

 

만약 당신이 조은비 후보에 대한 비판의 여지를 다분히 성적이고 혐오적인 기술로밖에 말할 수 없다면, 정치적 비판을 그저 ‘여성이기에’ 받게 되는 치욕스런 문장으로 끌고 올 수밖에 없다면, 당신의 언어적 역량이 그 정도로 천박하고 나약하다면, 명심하자. 그건 그냥 혐오다.

 

그가 새누리당인 것도, 당신이 새누리당을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증오하는 것도, 그걸 떠나서 그에게 후보의 자질 자체가 모자라 보인다 해도 그것들은 혐오에 대한 참작의 여지가 될 수 없다. 물론 당신은 정의와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투철한 진보 인사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혐오를 정당화하진 않는다.

 

그에게 ‘얼굴만 반반한’, ‘사진도 조작하는’, ‘셀카 질이나 할’ ‘걸레 같은’ 등의 성 혐오적 공격을 쏟아부으면서도, 한 명의 여성을 그런 방식으로 소비하는 사회구조(우리 자신까지 포함한)가 아닌 여성 ‘조은비’에게만 분노해 그를 “쌍년”으로 매도한다면 당신은 (당신 자신이 무슨 대단한 신념을 지녔든) 그냥 반민주적 인사로 전락한다. 당신이 바라마지 않을 정의와 민주주의하에서 당연히 보장돼야 할 누군가의 권리와 인격을 스스로 짓밟았기 때문이다.

 

“넌 그냥 다리만 벌려”

 

18일 게시된 ‘아이엠피터’의 기사 ‘새누리당 조은비 청년 후보가 비판받아야 할 이유’에 따라붙은 이 저질의 댓글이 대한민국 진보의 현실을 대변한다. 여전히 우리가 바라는 여성은 ‘얼굴도 예쁘고 마음도 고운’ 누군가일 뿐이다. 그렇지 않은 반역도는 ‘그냥 다리만 벌려’야 할 성적 착취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그리고 홍승희가 그랬고 조은비가 그러고 있듯, 전후 모두가 폭력이다.

 

이 혐오의 굴레가 끊이지 않는 한 조은비 예비후보를 둘러싼 ‘정치’는 어떤 의미도 가지지 못한다. 그것이 비판받아야 할 것이든 아니든 간에 말이다. 여성 조은비를 혐오해야 응집되고 승리할 수 있는 진보라면 그건 이미 진보가 아니다. 우리가 없애려 그렇게 노력하던 기형의 욕망일 뿐이다.

 

도저히 고치지 못하겠다면 그냥, 그만두자. 구조적 폭력에 기대야 생존할 수밖에 없는, 그 정도로 나약한 정의라면 그것을 추구하지 않는 게 맞다.

 

글. 인디피그(ghin2800@gmail.com)

메인이미지. 중앙선거관리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