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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노오력’을 인정한다

나는 왼손잡이’였다’. 유치원에 다닐 때는 내 기록에 ‘아이가 왼손잡이이니 오른손으로 쓰도록 지도하기 바랍니다’라는 말이 적혀 있었다. 그렇게 오른손으로 물건을 잡고, 오른손을 쓰는 법을 배웠다. 남들은 그냥 수저를 집어 밥을 먹을 때 나는 수저를 ‘제대로’ 집기 위해 1시간 동안 꾸중을 듣기도 했다.

 

당신에게는 너무나 쉬운 일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어려운 일들이 있다. 그 누군가는 남들보다 두 배 이상으로 노력하고 치열하게 살아간다. 누군가에게는 광고 카피처럼 ‘Just do It’하면 될 일을 하기 위해서.

 

공부 잘할 기회가 ‘잘려나간’ 이들에게 기회 주겠다는 고려대

 

고려대에서 성적장학금을 폐지하고 그 돈을 가정형편이 곤란한 이들에게 지급한다고 한다. 이를 두고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공부하는 애들은 뭐가 되냐’라거나 ‘이미 국가장학금으로 주고 있지 않으냐’라고 비판한다. 마치 ‘가난한 학생’이 ‘공부 잘하는 학생’의 무언가를 뺏어간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누군가는 공부를 잘할 기회가 있었고 누군가는 일단 살아남아야만 했다. 장학금을 성적 우수자가 아니라 가계 곤란자에게 준다는 것은 공부할 기회를 제대로 갖지 못한, 그래서 남들이 그냥 공부하면 될 때 그 공부를 하기 위해서 잠을 줄이고 몸을 굴려가며 돈을 벌고 있는 사람들이 그냥 공부할 수 있도록 만들겠다는 선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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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수준이 낮을수록 아르바이트 시간이 높다 ⓒ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수업이 끝난 저녁 6시. A는 집에 가서 복습을 할 때 B는 아르바이트 장소로 뛰어가서 6시간을 내리 일하고 밤 12시가 돼서야 2시간을 공부했다. A는 성적장학금을 받았고 B는 받지 못했다. ‘노력의 대가’라는 이름으로 우리 사회는 B의 노력을 무시해왔다.

 

고려대는 그 노력을 무시하지 않고, B가 A와 마찬가지로 공부에만 노력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그것이 ‘노력의 대가’를 무시하는 행위인가? 오히려 노력을 인정하고 격려하는 것이 아닌가?

 

고려대의 정책은 잘하는 사람에게 돈을 주겠다는 것이 아니라 잘할 수 있는 기회가 잘려나간 이들에게 기회를 주겠다는 뜻이다. 정말로 ‘노력에 대한 대가’를 이야기한다면 공부만 해도 됐었던 학생의 4.5점과 알바와 병행하는 학생의 3점을 두고 정말로 4.5점을 ‘더 노력했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가?

 

노력의 대가’란 말을 다시 생각하자

 

나는 당신들이 쉽게 내뱉는 ‘노력의 대가’라는 말이 무섭다. 노력의 가치를 비하하는 것이 아니다. 나도 노력이 인정받기를 바라고, 고학점을 받은 학생의 노력 역시 인정한다. 그러나 당신이 ‘그냥’ 하면 됐던 일을 하기 위해, 이 사회의 누군가는 ‘감각되지 않은 채’ 미친 듯이 노력해야 한다. 그 노력 역시 이해하라는 거다. 왜 누군가는 ‘남들과 비슷하거나 최소한의 환경’을 갖추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의 노력이 부정당해야 하는가.

 

나는 묻는다. 남들이 그냥 하는 것을 할 수 없어서 노력해야만 했던 사람’을 지원하는 것이 오히려 정당한 ‘노력에 대한 보상’ 이 아닌가? ‘학업을 장려’하는 돈은 학업을 잘하는 이에게 주어져야 하나 아니면 학업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사람에게 주어져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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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학 대부분은 성적장학금 대신 저소득층에게 등록금과 생활비, 교재비 등을 지원하는 ‘Need-Based Financial Aid’만 제공한다 ⓒ UNIGRANT

 

성적장학금을 폐지하는 고려대가 정말로 문제일까? 아니면 이미 경쟁의 트랙에 선점하고 있는 사람만 응원하고 트랙에 오르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을 무시한 우리 사회가 문제일까? 가계 사정으로 수능 공부를 제대로 못 하는 학생 대신 명문대에 들어가게 될 학생만을 지원하는 것과 그간의 성적우수장학금은 무엇이 얼마큼 다른가?

 

어느 노력을 인정할지에 대한 선택이자 사회에 던지는 질문이다

 

고려대는 노력을 무시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간 무시당했던 노력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다. 그 노력이 제자리에서 빛날 수 있도록,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해외 유수 대학들의 장학금 제도 역시 그러하며, 우리의 국가장학금은 여전히 ‘맘 놓고 공부에 집중할’ 환경을 만들어주지 못한다고 비판받고 있다.

 

고려대학교의 박경신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역시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나도 미국 대학의 100% 저소득층 지원 장학금 때문에 공부를 마칠 수 있었다. 경쟁으로 고려대에 온 학생들을 또 경쟁시켜야 속이 시원한가?’라고 물었다. 동시에 ‘뛰어난 사람들 챙겨주는 건 시장이 알아서 한다. “경쟁할 테니 살아남으면 돈 주세요”는 해답이 아니다’라고 적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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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소득층 장학금이 없었다면 자신도 학업을 마치지 못했을 거라는 박경신 교수 ⓒ 박경신 교수 페이스북 글 일부 캡처

 

고려대의 선택은 우리에게 ‘무엇이 옳은 사회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사회에서 인지되지 않았던 수많은 노력을 인정하고 격려하는 것이 옳은지, 아니면 다른 방식으로 보상을 받게 될 좋은 결과만을 인정하는 것이 옳은지 말이다.

 

대표이미지. ⓒ 넷플릭스, 후지TV ‘아틀리에’

글. 감언이설(gchhg2005@naver.com)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게재되었습니다.

감언이설
감언이설

순간의 감성을 세상에 남기려고 글을 씁니다.

2 Comments
  1. Avatar
    Mad Park

    2016년 2월 24일 10:04

    링크 타고 들어와 고함 글들을 쭉 읽어보고 있습니다. “장학금”이란 말은 학업을 장려한다는 뜻이지요. 고려대의 행보에 지지를 표합니다.

  2. Avatar
    고엽

    2016년 2월 25일 13:00

    그래서 고려대는 저소득층을 위한 장학금을 얼마나 늘린다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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