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선거구 획정이 끝났다. 이제 곧 각종 뽕짝 음악에 ‘기호 *번 김00’이란 가사를 삽입한 선거 캠페인 송을 비롯해 각종 선거 유세가 펼쳐질 것이다. 그중 빠질 수 없는 것이 후보자들의 연설이다. 연설을 준비 중인 국회의원 후보에게 고함20이 몇 가지 제안을 하려 한다. 자신의 발언이 ‘강철박제’되어 각종 SNS에서 조리돌림 당하고 싶지 않다면 이번 유세 기간 동안 밑에 네 발언만은 피하자.

 

1. 그거 하나도 안 웃기고 재치 있어 보이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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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동성애 법은 자연과 하나님의 섭리에 어긋나는 법”이며 “이런 법에 더불어민주당은 한기총의 모든 목사님과 뜻을 같이한다”고 발언한 박영선 ⓒ 오마이뉴스

 

안다. 우리나라가 ‘병신’이란 장애인 비하 비속어를 감탄사만큼 자주 사용하고,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따위의 여성 비하 속담을 쓸 만큼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이 만연하다는 것을. 장애인과 여성뿐인가. 여당 대표는 친근함을 위해 인종차별 발언을 하고 야당 비대위원은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당당히 외쳤다. 학생과 어린이들은 투명인간에 가깝다. 세금이 결부된 급식과 보육 논란 때 외에는 고려조차 되지 않으니.

 

이번 선거부터는, 적어도 연설 중에라도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적 발언을 자제하자. 아니 ‘자제’가 아니라 쓰지 말자. 한 나라에 국회의원이 되기로 마음먹었다면 세상의 가장 어둡고 찬 곳까지 눈 돌릴 줄 알아야 한다.

 

2. 노력충이 되지 말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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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도와준다

 

지난 2015년 12월,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 입법과정에 불만을 표하며 이런 말을 남겼다. ‘누에가 나비 되듯 노력하라.’ 일단 누에는 나방이 되지 나비가 되진 못한다. ‘벌꿀’과 ‘꿀벌’을 헷갈려하시는 그 분이니만큼 사실 관계에 대한 이야기는 잠시 미뤄두고 맥락과 의미만을 들여다보겠다.

 

우리 솔직해지자. ‘노력’만으로 누에가 나비가 될 수 있다면 새벽 6시에 출근해 저녁 8시에 퇴근하는 우리 아빠는 벌써 이재용 회장 정돈 되어야 한다(앗, 아직은 부회장인가?). 누구는 1을 노력해도 100을 얻고 누구는 100을 노력해도 1도 못 얻는 게 현실이다. 물론 이 불평등한 결과가 개인의 능력 탓일 수도 있지만, 개인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 구조와 개인을 둘러싼 환경적 요소는 무시할 수 없다.

 

특히 정치인은 개인이 아닌 사회 구조에 얽힌 문제를 직시해야 한다. 구조적 문제는 고려조차 하지 않고 개인의 노력만을 강조하는 국회의원은, 죄송하지만 함량 미달이다.

 

3. 혹시 경험론자 베이컨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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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etflix, 하우스 오브 카드

 

제발 그놈의 경험 좀 내세우지 말자. 물론 당신의 경험이 소중하고 존귀할 수 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귀납적 지식의 필요성을 인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세상은 우리가 인식하는 속도보다 더 빠른 속도로 변하기에 과거의 경험은 현실에선 때로 무용하다. 당신의 20세기 경험은 21세기인 지금 ‘참고사항’ 정도로 기능할 뿐 우리에게 강요할 수 있는 ‘정답’은 아니다.

 

“해봤어?”, “내가 해봐서 아는데” 등의 표현에 내재된 자신의 경험은 마음 깊숙한 곳에 추억으로 남겨둘 때 가장 아름답다. “내가 예전에 말야”란 말을 꺼내 든 순간, 청중은 당신이 아닌 핸드폰을 볼 것이다.

 

4. 위로하고 싶으면 차라리 돈으로 해라

48985-3이상한 위로할 거면 차라리 돈으로 부탁드립.. ⓒ David Letterman Show

 

“지금 청년 실업률은 10%를 넘어섰으며 미래가 불안한 우리 청년들이 연애도, 결혼도, 출산도 기피하는 현상을 빗대서 소위 3포 세대라는 신조어까지…” (박근혜 대통령 대국민 담화)

 

일단 표현부터 바로잡자. ‘포기’는 배추 셀 때 쓰는 단어가 아니라 ‘하려던 일’을 그만둘 때 쓰는 표현이다. 왜 청년이 하려던 일의 기본값은 연애·결혼·출산인가. 결혼과 출산에 대한 욕심이 없는 내게 “청년이여, 포기하지 말고 더 좋은 사람을 만나보게”란 표현은 불쾌함과 억울함만 남길 뿐이다.

 

청년에 대한 되지도 않는 위로와 N포 따위의 수식이 붙는 ‘세대론’은 연애·결혼·출산을 한 청년은 정상이고 그것들을 하지 않으면 비정상이라는 교묘한 배제의 논리가 반영되어 있다. 또한 ‘청년 세대’로 이름 붙은 추상적 집단은 청년이 아닌 정치인을 위한 정치적 수사로 남용될 때가 많다(자세한 이야기는 명문 “[마트료시카] 그러니까 3포가 아니라고오오”를 읽자. 나는 아침, 저녁으로 읽는다).

 

P.S

 

이 글을 쓰고보니 총선 국회의원 후보를 향한 글인지 내 주변에 널린 오지랖 넓은 사람들을 향한 글인지 불분명하다. 인권과 차별 문제에 민감한 사람보다 오지랖을 주체 못하는 사람이 국회의원 후보가 되는 비율이 높기 때문이라는 뇌피셜(a.k.a 뇌내망상)을 내려 본다. 우리 모두 그들의 오지랖으로부터 안전한 총선을 기원해보자.

 

글. 콘파냐(gomgman32@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