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은 게임으로” “개그는 개그로” 그리고 “만화는 만화로” 보자고 한다. 그러나 문장 뒤에서 게임이 되고 개그가 되고 만화가 된 건 실재하는 폭력이었다. 그중에서도 여성혐오와 젠더폭력은 대표적이다. 그래서 젠더로 읽는다. 폭력을 폭력으로 보기 위해 더 이상 “만화를 만화로” 읽지 않겠다.

 

속죄캠프, 레진이 그려 놓은 범죄 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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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진 코믹스의 2월 신작 ‘속죄캠프’ ⓒ 람작

 

찢어진 스타킹, 뒤로 묶인 손, 위아래로 결박된 가슴. 레진 코믹스의 신작 ‘속죄캠프’가 그리는 ‘여성’이다. ‘남성’들은 그녀를 둘러싸고 서있다. 누군가의 손엔 벨트인지 뭔지 무슨 놈의 도구까지 들려있다. 단언이 어렵지 않다. 작품의 섬네일은 명확하게 ‘집단 성폭행’이라는 범죄 상황을 암시한다.

 

‘람작’ 작가의 ‘속죄캠프’는 성인 웹툰이다. 그게 전부라 할 순 없지만 엄연히 ‘포르노적 소비’를 염두에 둔 작품이다. 다시 말하면 성적 욕망의 맥락 속에서 여성은 자주 무저항의 상태에서, 비자발적 섹슈얼리티로 도배된 채, 사회적 범죄의 대상이 된다. 그게 여성에게 가해지는 ‘성적 대상화’의 일면이다.

 

중요한 문제다. 레이프 포르노가 오래전부터 있었다지만, 언제나 그렇듯 관습은 존재의 윤리적 근거가 될 수 없다. 더군다나 ‘속죄캠프’는 국내 메이저 웹툰 플랫폼에, 국내 작가가, 국내를 배경으로 그린 작품이다. 포르노를 둘러싼 거대 담론을 젖혀두더라도 논란이 될 수밖에 없다.

 

‘강간 암시 신’만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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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년을 향한 복수극”은 ‘남성향’이 됐다 ⓒ 레진 코믹스

 

짤막한 작품설명과 작품의 수상경력은 이 ‘범죄적 판타지’를 정당화하고 쉽게 만드는 남성중심사회의 비열한 방식을 여실히 보여준다. 작품이 “모두의 X년을 향한 사내들의 복수극”이며 “어른을 위한 BIG 4 만화 공모전 남성향 장르 우수상 수상작”이란다. 도대체 누가 ‘X년’이며, 무엇이 ‘남성향’이라는 건가.

 

섬네일과 작품 설명, 그리고 레진과 작가 람작이 이루는 이 ‘콜라보’엔 몇 가지 문제가 층층이 겹쳐 있다. ‘X년’이 상징하는 지긋지긋한 ‘김치녀 신화’가 첫 번째고, ‘X년’에게는 ‘복수’해야 한다는 현대판 함무라비 정신이 두 번째며, 그 두 가지가 어우러져 ‘성폭행’을 ‘복수’와 ‘회개’로 정당화시켜 남성 섹슈얼리티 일반에 범죄적 판타지를 뒤집어씌운다는 것이 세 번째다.

 

6화까지의 전개로 작품이 말하는 ‘속죄캠프’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은 물론 불가능하다. 그러나 작품을 팔기 위한 레진의 홍보 워딩은 설령 작품 내에서 집단 성폭행이 실제로 일어나지 않는다고 해도 충분히 문제적이다.

 

작품의 내용 면에서도, 여성은 남성 성욕에 의한 착취의 대상으로서 그려진다. 여성의 성은 각각의 남성 캐릭터에 의해 단순 섹스 파트너부터 성 노리개, 혹은 성적으로 자신에게 종속되어야 할 ‘순수한 여성’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소비된다. 자극적인 대사로 점철된 성관계신에선 여성은 쟁취와 소유의 대상이 되고, 굴종과 피학으로 남성을 만족시킬 것을 요구받는다.

 

동시에 섹슈얼리티 내의 여성 주체성은 끊임없이 공격받는다. 주인공의 성 편력은 프리섹스나 성 자유주의에 대한 논의가 아닌 “모두의 X년” 캐릭터 완성을 위해 전개되고, 그것은 결과적으로 범죄를 암시하는 섬네일에 대한 도덕적 근거를 마련하는 과정에 다름없다.

 

‘속죄캠프’가 그리는 문제들

 

하여 ‘속죄캠프’는 문제다. 그런데 단순히 하나의 문제가 아니다. ‘속죄캠프’가 그리는 여성에서 찾을 수 있는 건 수없이 겹쳐진 문제‘들’이다.

 

“걸레 같은 년”이라는 대사와 “순결 서약서”를 들이미는 남성 캐릭터는 실재하는 여성억압을 그대로 재현한다, 부당한 시선이다. (여성은) ‘나와 섹스해 줘야 한다’는 비틀린 욕망과 그러면서도 순결한 여성을 원하는 욕망 사이에 존재하는 남성적 이중 잣대가 전제된다. 더불어 여성에 대한 욕구의 종착지가 항상 섹스로 수렴되는 것 또한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섹슈얼리티다.

 

“모두의 X년”이라는 ‘투명 김치녀’를 상정하는 점도 충분히 문제적이다. 그것은 특수 개인(그것도 가상의)을 통해 여성 일반을 혐오하는 과정이다. 어떻게 그런 확장이 가능하냐고? 우리 사회에 통용되고 있는 여성혐오 발언들을 생각해 보자. 우리는 이미 그러고 있다.

 

거기다 그러한 캐릭터가 ‘악역’에 위치하는 것 자체가 여성에게 가해져 온 오랜 혐오의 결과물이다. 개인을 속이고 기만하는 캐릭터의 행위야 물론 잘못이겠지만, 그것이 여성의 ‘성적인 문란함’으로 뭉뚱그려지는 것은 오직 여성에게만 가해져 온 성적 억압을 반복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할 정도로 문제들이 많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게 뭔지는 말할 수 있다. 저 모든 문제들이 겹치고 겹쳐 내어놓는 레진 코믹스의 ‘범죄 판타지’가 가장 큰 문제다.

 

그딴 건 남성향이 아니라 그냥 범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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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한마디’ ⓒ 레진 코믹스

 

남성향 장르 우수상 수상작. 이 한 줄의 경력 사항으로 만화가 그리는 모든 문제들이 수렴된다. 즉, ‘범죄 재현을 통한 포르노’가 ‘남성향’으로 포장된다.

 

이는 포르노 영역 전체에 걸쳐 전 세계적으로 암묵적으로 용인되어온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하나의 포르노 장르인가, 윤리적 잣대인가를 떠나 메이저 웹툰 플랫폼에 이것이 ‘남성향’으로 당당히 소개되는 것은 지탄받을 일이다.

 

위에 거창하게도 나열해 놓은, 저 실재하는 폭력의 재현 사항들과 맞물릴 때 레진의 남성향은 ‘여성혐오’를 뒤집어쓴다. 성범죄와 남성향이라니, 그럼 ‘소라넷 초대남’도 뭇 남성들의 성적 판타지가 되는 걸까.

 

일반 여성을 향해 그 성적 판타지를 충족시키려 하면 ‘그것이 알고 싶다’에 나오니, 여기에 복수극이라는 정당화 기제를 추가한 것일까. 아니면 복수라는 형식 자체가 욕망을 더욱 자극하는 것일까. 어느 쪽이든, 용인하기 어려운 쾌락 충족에 도덕적 면책 사유를 부여한다는 점은 같다.

 

받아들이기 힘든 욕망은 물론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도 연쇄살인이나 고문, 학살과 같은 소재를 ‘사이코패스성향’이라는 욕구충족의 장르로 미화하지는 않는다. 이상하게도, 우리는 오직 성욕에 있어서만 비윤리에 너무 관대했다. 그리고 그 관대함의 주류는 부정할 수 없이 ‘남성 성욕’이었다.

 

레진 코믹스와 ‘속죄캠프’에 얽힌 ‘남성향’의 문제점은 바로 이 지점이다. 엄연한 범죄와 비윤리적 성욕이 ‘남성향’으로 포장되고 허용되는 이 문화의 남근 중심적 구조 자체가 역겨운 거다. 확실히 말할 수 있다. 그딴 건 남성향이 아니다. 그건 그냥 범죄다.

 

글. 인디피그(ghin2800@gmail.com)

편집. 오마이뉴스 박정훈 / 인디피그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에도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