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는 평범한 직장인. 밤에는 인기 BJ.’ ‘모미’라는 여성을 아주 간편하게 요약할 수 있는 말이다. 모미는 외모에 콤플렉스가 많지만, 몸매에 대해서는 자신감이 넘친다. 그래서 마스크를 쓰고 아프리카TV의 BJ로 활동한다. 매일 밤 컴퓨터 앞에서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춤을 추는 그녀에게 익명의 남성들은 찬사를 보낸다. 사무실 남자 직원들에게 ‘못난이’ 소리를 듣고 소개팅남에게 무시당하던 낮과는 다르다. 모미는 그 시간에 도취 됐다. 자신을 둘러싼 문제에 저항하는 게 아니라 유일한 자랑거리인 몸매를 내보이며 인정받으려 한다.

 

이러한 이유로 모미라는 캐릭터는 주체적이지 못한 여성이라고 비판받기도 했다. 하지만 모미가 주체적이지 못하다고 해서 마스크 걸이 여성 혐오적 콘텐츠가 되는 건 아니다. 주인공이 현실을 ‘극복’하는 인물이 아니어도 현실을 드러낼 수 있다. 모든 여성캐릭터가 ‘치즈인더트랩’의 홍설처럼 똑똑하고 현실의 부조리함을 보여줄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하는 건 아니다. 왜 결핍이 있는 여성캐릭터는 그걸 상쇄할 만한 장점이 꼭 있어야 하는 걸까. 콤플렉스를 가진 사람이 자기계발을 하고 아픔을 이겨내는 꿈 같은 상황만 강요하는 것 자체가 가혹한 것 아닌가. 

 

상순과 모미 ⓒ 마스크 걸

 

세상 모든 여성캐릭터가 캔디 같을 필요는 없다.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으며’ 인정받는 건 결국 그들을 괴롭히는 현실 세계에 적응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못생긴 주인공이 어느 날 환골탈태해서 평소 자기를 무시하던 잘생긴 아이들과 패거리로 몰려다니는 것만이 외모지상주의를 꼬집는 방식은 아니다.

 

모미는 예쁜 외모를 가진 직장 동료 아름을 질투하고 아름은 자신보다 못나 보이는 사람들을 은근히 무시한다. 모미와 아름의 대립이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을 그대로 보여주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캐릭터 설정은 작가가 의도한 큰 그림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이었다. 작가는 후기를 통해 모든 인물을 선과 악으로 구분하지 않으려 했다고 의도를 밝혔다. 만약 아름이 남을 무시하지 않고 모미에게도 친절했다면 외모에 따라 인물의 성격까지 정형화시킨다는, 또 다른 비판을 받지 않았을까? 

 

모미의 친구인 상순이라는 인물도 마초들이 말하는 ‘못난 여성’의 스테레오 타입이 아니냐는 지적을 받았다. 상순은 환경운동가, 페미니스트, 히피 등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상순의 외모와 오지랖 넓은 성격 등으로 인해 그녀가 가진 신념이 우습게 보이는 게 문제였다(페미니스트라고 하지만 커피 심부름을 시키는 상사보다 심부름하는 아름을 비난한다든가 성형 미인을 욕하는 모습). 환경운동가와 페미니스트 여성이 마초들의 공격 대상이라는 점도 한몫했다. 

 

하지만 상순에 대한 비판 역시 모미에 대한 것처럼 어딘가 뒤틀려 있다. 상순이 가진 모순된 모습은 어딘가 결점이 있는 인물들로 작품을 채우려는 작가의 의도였을지 모른다. 어떤 신념이 있다고 해서 신념을 다 지키고 사는 사람은 드물다. 아직 웹툰계에서는 결핍된 여성, 어떤 신념을 지진 여성을 그리는 방식이 정형화돼 있었다. 결핍을 극복하거나 우직하게 신념을 지키거나.

 

어차피 가상 현실인 웹툰에서조차 여성은 선인이 되어야만 했다. 그 틀에서 벗어나면 ‘이상한 여자’ 가 된다. 이는 남성캐릭터에 대한 시각과 확연히 다른 태도다. 사이코패스, 살인마 남성이 등장하는 웹툰들은 항상 그들이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독자들 역시 그 이유를 기다리고 그들의 성장배경이든 인간관계가 됐든 원인이 밝혀지면 안타까워했다. ‘마스크 걸’의 작가는 그 틀을 깨고 여성 역시 극적인 선택을 할 수 있는 존재로 그렸다. 어쩌면 그런 극적인 모습을 담담하게 그려내는 모습이 외모지상주의를 다루는 가장 솔직한 태도일지 모른다. 

 

우리는 모두 평등하게 ‘못났다’

 

본인이 외모지상주의의 피해자인 동시에 성적 대상화의 소모품(인터넷 방송 BJ)이 되면서도 남의 가슴 사이즈를 흉보고 성형미인을 욕하는 모미. 자신보다 사회적 지위가 낮아 보이는 사람은 무시하고 이용 가능한 사람 앞에서 가식을 떠는 아름. 인권과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다면서 주변 사람의 고통에는 관심도 없이 뒷얘기만 하는 상순. 이들의 모난 부분은 여직원의 옷차림을 지적하고 그들의 외모를 품평한 남자 직원들의 작품이다. 주오남이라는 인물의 ‘조용한 혐오’ 역시 모미를 미친 사람으로 만드는 데 한몫했다. 주오남은 자신 역시 성을 소비하면서 성적 매력을 어필하는 여성의 인생을 망치려고 들며 김치녀 낙인을 찍는다. 이러한 남성 캐릭터들이 어딘가에 존재하는 모미와 아름, 상순을 ‘이상한 사람’ 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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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직원을 비교하는 직장 상사 ⓒ 마스크걸

 

끝없이 비교당하는 객체들이 모두 편견과 차별을 뚫고 나올 수 있는 건 아니다. 편견에 맞서게 되면 그저 기 센 여자가 될 뿐이다. 그 외로움을 견딜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때문에 모미, 상순, 그리고 아름은 외로워지지 않기 위해 자신을 판매할  수밖에 없었다. 그게 굴곡진 몸매든 외모든 그럴듯한 신념이 됐든, 본질은 똑같다. 별것 아닌 일을 과장해서 자기소개서를 쓰고 아주 작은 장점이라도 동아줄 삼아 ‘나’를 자랑해야만 살아남는 사회가 됐다. 세 여성 캐릭터는 그런 점에서 우리와 닮았다. 우린 어딘가 못난 부분이 있는 사람들이다.

 

글. 샤미즈(ndhhdm9019@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