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금요일(5일) KBS2에서 ‘고퀄남 강제소환 관찰쇼 – 가싶남’ 첫 화가 방영되었다. ‘가싶남’은 ‘가지고 싶은 남자’의 줄임말이다. 공식 프로그램은 이렇게 소개한다. “이 시대 최고의 가지고 싶은 男子를 찾는다! 여자들이 원하고 남자들은 동경하는 그런 남자를 찾는 고퀄남 강제소환 관찰 쇼 가싶남! 최고의 남자들이 펼치는 서바이벌 쇼.”

 

허경환, 에릭남, 헨리, 장위안 등 총 9명의 남성이 ‘가싶남’으로 출연한다. 이들을 평가하는 건 10명의 여성 패널들과 100명의 여성 판정단이다.

 

또 다른 ‘가싶남’, 가지고 싶지 않은 남자

가싶남들은 개그, 가수, 운동, 모델, 법조계, 요리, 사업가 등 다양한 직업 분야를 대표하는 남성들이었다. 남자들의 ‘퀄리티’를 결정하는 요소는 자산, 수입, 직업, 학력이었다. 남성을 평가하는 조건을 노골적으로 추천한 셈이다.

 

특히 대부분의 가싶남이 ‘해외’와 관련 있었다. 한일 사법고시 합격자, 해외 명문 대학 출신, 외국 국적… 부모의 재력이나 가정환경 때문에 해외에 다녀오지 못한 많은 한국 남성들은 가만히 앉아서 의문의 1패(?)를 당했다. ‘고퀄’ 남성에 대한 기준은 곧 ‘저퀄’ 남성에 대한 기준을 만들고, ‘가지고 싶은 남자’는 동시에 ‘가지고 싶지 않은 남자’를 만들어 냈다. 

 

어차피 가싶남은 에릭남

 

국영방송 KBS가 제시하는 ‘이상적 남성상’은 무엇일까? 사실상 1화의 주인공은 누가 봐도 에릭남이었다. 사전호감도에서 1위를 차지한 에릭남의 이름 앞에는 “명불허전”이라는 단어가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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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남을 ‘가싶남’으로 선정한다면 에릭남의 매력을 최고의 매력으로 꼽는 것이다. 순위를 매길 수 없는 다양한 매력을 줄 세우는 것이 의미 있는 일인지 모르겠다. ‘나는 나름대로 내 분야에서 1위하고 있는데 내가 왜 여기서 사전호감도로 9위 해야 하지?’ 익스트림 스포츠 선수 방청석은 순위 경쟁에 회의감을 드러냈다. ‘가싶남’에서 출연 남성들의 존재 이유는 오로지 여성의 인기를 얻는 것으로 규정된다. 남성은 ‘여성이 갖고 싶은 남자’가 될 필요가 없음에도, 방송은 왜 남성들이 여성에게 갖고 싶은 남자가 돼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할 겨를도 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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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을 평가하는 여성

 

‘가싶남’들은 ‘압박의 방’에서 여자 방송인 10명이 있는 방 한가운데에서 압박 면접을 받았다. 웃으면서 들어와도 여자들은 인사도 받아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싸늘한 표정을 유지했다. 심지어 눈치를 보며 의자에 앉자, “왜 (앉으라고) 말도 안 했는데 먼저 앉느냐”고 말했다. 압박면접이라는 컨셉이 어색하게 느껴질 만큼 지나친 압박이었다.

 

남자들은 질문 하나에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질문 폭격을 맞았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면접관이 된 패널들은 사적인 질문과 요청을 서슴지 않았다. 연애관과 형제 관계를 묻는 것부터 시작해서 마지막 키스가 언제인지도 물었다. 복근을 보여달라고 신체 노출을 요구하고, 마지막 1분을 줄 테니 노래나 춤으로 매력을 어필하라고 시켰다.

 

여자들은 당황하는 남성 출연자들을 귀여워하며 그들이 여자들 앞이라 긴장한 것이라고 말했다. 단언컨대 남자 10명이 둘러싸고 똑같이 질문을 퍼부었어도 당연히 당황했을 것이다. 아나운서 정지원은 질문 공세에 좀처럼 당하지 않는 남성 출연자를 가리켜 “주눅 들지 않으면 매력 없다”고 말했다. 남자가 주눅이 들어야 매력이 있다면 여자가 좀 멍청해야 한다는 말도 성립하게 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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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은 가싶남들을 평가하는 말을 당사자 앞에서 숨기지 않았다. ‘매력을 겨루기 위해’ 게임을 하는 남자들 사이를 오가며 남자들의 행동을 평가했다. 제작진 또한 ‘심쿵 포인트’라는 자막을 넣어 평가에 동참했다.

 

만약 방송이 ‘가싶녀’라는 이름으로 똑같이 진행되었다면 큰 파문을 불러왔을 것이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남성을 값 매길 수 있는 자리에 설 수 없는데 그들이 보여준 모습은 시청자를 불편하게 만든다.  

 

‘가싶남’은 여성을 상품화하지 말자고 했더니 남성을 성 상품화했다. 남녀 공평하게 인권 퇴행 사회로 가자는 걸까? ‘가싶남’은 ‘가싶녀’와 같은 여성상품화 프로그램의 등장에 핑계를 제공하게 될지도 모른다. ‘가싶남’의 평가단이 여성이었으니 여자들은 공공연하게 남자들에게 평가당할 구실을 마련하게 된 셈이다. 

 

‘가싶남’을 통해 남자는 평가당하고 평가되지 못한 남자들은 ‘루저’가 된다. ‘여자들이 가지고 싶은 남자’가 되기 위해 ‘서바이벌’까지 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일까? ‘가싶남’은 정말 가지고 싶지 않은 발상이다.

  

글. 이설(yaliyalaj@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