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들이 있다. 결혼이 그렇다. 많은 사람들은 ‘당연히’ 결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비난과 조롱을 날린다. 하지만 결혼을 하는 이유가 다양하듯 비혼의 이유도 다양하다. 거기엔 세대의 문제도, 한때의 철없는 소리도 아닌 각자의 주관이 담겨 있다.

 

영화 ‘시간을 달리는 소녀’에는 스치듯이 등장하는 인물이 있다. 주인공인 마코토의 이모이다. 아주 사소한 이유로 타임리프를 했지만, 본인이 헛되이 돌린 시간 때문에 문제를 겪는 마코토에게, 이모는 “그런데 네가 이득 본 것만큼 손해 본 사람이 있지 않겠니?”라고 말한다. 소설의 원작은 1965년 출간됐다. 2006년 개봉한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감독은 이 원작의 주인공을 영화 속 주인공의 이모로 설정했다. 물론 작품 전면에 이모가 타임리프 경험이 있는 것으로 묘사되지는 않지만 묘하게 마코토와 같은 타임리프 경험을 해본 것처럼 말한다는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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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 분 ⓒ 시간을 달리는 소녀

 

과거이자 미래였던 사람. 어떠한 주제로 누군가와 똑 닮은 사람. 그런 점이, 오늘 만난 N 씨를 영화 속 이모의 모습과 겹쳐 보이게 했다. 세대 차이와 나이를 뛰어넘어 자유로운 삶을 영위하고 있는 모습은 20대 비혼주의자들이 꿈꾸는 미래였다. 한편으로 N 씨는 결혼한 가정에 대해 존중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들을 존중하되 본인이 비혼주의자이기에 얻은 것들을 사랑했다. 이러한 삶의 형식도 있다는 것을 담담하게 보여주고 자신의 삶에 대해 시종일관 유쾌하게 이야기했다. 비혼을 강요하거나 자조하는 모습은 없었다.

 

자기소개 부탁한다.

 

D 약품 회사에 다니고 있다. 15년 동안 일했고 나이는 마흔일곱이다. 결혼은 해본 적 없고 그냥 이렇게·…· 늙어가고 있다. (웃음) 혼자 산 지 20년이 됐고, 앞으로도 독신 생활을 하고 싶다.

 

비혼을 지향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사실 내 의지가 아니었다. 아주 어릴 때부터 독신주의를 원했던 건 아니지만 살다 보니 이런 생활이 나에게 맞는 것 같고 그래서 결혼을 원치 않게 됐다.

 

아주 어릴 때부터 형성된 생각이 아니라고 했는데 그럼 언제부터인가 결혼이 싫어진 것인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

 

결혼하고 싶은 남자가 없다. 나이를 먹을수록 사랑이라는 개념이 모호해진다. 이 정도 나이가 되면 흔히 사회적 잣대를 세우고 결혼 여부를 판단하는데 나 역시 스펙이 좋은 편은 아니기에 나 자신을 내보이기도 싫어진다. 그렇게 결혼이라는 제도와 점점 멀어졌다. 20대에 정말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났다면 결혼을 했을지도 모른다. 사랑에 눈이 먼다고 해야 하나? 하지만 그때 나는 결혼을 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퇴직을 앞두고 있었고, 돌봐야 할 동생도 있었다. 여유가 있는 상황이었다면, 그리고 지독하게 사랑에 빠졌더라면 덜컥 결혼을 해버렸을 수도 있다. 결혼에 대해 약간의 가능성을 열어 둔 20대에 기회가 없었기에, 어느 정도 삶의 방향이 확고해진 30대부터는 결혼할 마음이 생기지 않은 거다.

 

만약 20대에 결혼을 했다면 어땠을 것 같나?

 

실수라고 생각했을 거다. 그런데 30대가 되면 그런 실수를 할 일이 없어진다. 20대엔 그 감정을 사랑이라고 생각해서 결혼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감정이 인생을 걸 만한 마음은 아니었음을 깨닫는 게 되는 것 같다.

 

사랑에 대한 회의가 비혼을 지향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인가?

 

맞다. 20대엔 사랑만 있어도 될 것 같았는데 일반적인 사람들을 보면 30대에 사랑만으로 결혼하지는 않더라. 기본적으로 사랑이 있어야 결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30대 이후부터는 사랑 이외의 문제가 개입하니까 점점 결혼하기 싫어졌다.

 

결혼 적령기를 지난 지금, 느끼고 있는 사회적 시선이 있나?

 

지금까지 결혼을 안 했다고 하면 약 80% 정도는 이혼한 여자인 줄 안다. 결혼을 한 번도 안 한 것을 알면 “뭐가 문제가 있어서 결혼을 안 했지?” 라고 생각하는 게 느껴진다. “설마 결혼을 안 했겠어?” 하는 의심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내 첫인상은 마이너스에서 시작한다. 직접 말하지는 않지만, 뉘앙스는 이미 나를 ‘결혼에 한 번 실패한 여자’혹은 ‘거짓말하는 여자’로 몰아가는 거다.

 

그런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비혼을 지향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직업을 갖고 있고 돈을 번 게 제일 도움이 됐다고 생각한다. 돈을 벌면 취미 생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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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웨프뉴스

 

경제적 기반이 어느 정도 갖추어져 있다는 건데 그렇다면 주위의 간섭이나 걱정에서, 20대 때보다 훨씬 자유로워진 건가?

 

훨씬 이라는 말보다 ‘완전히’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내 생각대로 하니까 완전히 자유로워 진 거다. 이제 간섭하는 사람은 없다.

 

결혼하지 않으면 외로울 것이라는 말을 듣지 않나. 언젠가 혼자 남을 노년에 무엇을 하며 살고 싶나?

 

10년 전에도 지금처럼 살았지만 10년 뒤에도 이렇게 살 것 같다. 물론 외로움이 찾아오는 순간은 있을 거다. 그때 가서 더 즐거운 취미 생활을 찾으면 된다. 지금도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고 운동하면서 친해진 친구들도 있다. 친구 중에는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사람도 있고 적은 사람도 있다. 독신인 사람, 부부인 사람들까지 있는데 친구 관계를 잘 유지하고 있다. 매주 혹은 매월 정기적으로 만나서 운동하고 밥 먹고 휴가 때는 일정을 맞춰서 만난다. 이런 것이 외로움에 대한 대비책이라고 생각한다. 다양하게 사람을 만나고 또 오래 관계를 유지하는 것. 그게 좋다. 내가 지향하는 건 땅을 사서 친구들과 같은 마을에 살면서 밭도 일구는 것이다. 협동조합처럼. (웃음) 마음 맞는 친구들에게 몇 년 전부터 그 얘기를 해놨고 그 땅을 사러 알아보고 다니기도 한다.

 

인간관계를 노후에 대한 준비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나이를 먹을수록 새로운 인맥을 만들어 나가거나 친구들을 만나는 기회가 적어지진 않나?

 

예전에는 친구 관계가 유지가 안 됐다. 만나고 싸우고 절연하는 과정은 20대에 겪었고, 이제는 관계를 유지하는 법을 터득했다고 보면 된다. 인맥 형성도 20대 때보다 다양하게 하고 있다. 젊을 때는 본인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사람과 어울리기가 어렵다. 나이를 먹으면 10살이 어리건 적건 무의미해진다. 그래서 나이 차가 많이 나는 사람들과도 친구가 될 수 있다.

 

그래도 외로움을 느끼는 순간이 있지 않나?

 

이제는 외로움이 편안하다. 혼자 집에 있고 좀 외롭기도 해야 몸과 마음이 편하다. 아무도 없이 조용한 집에서 머릿속을 비우고 있는 시간이 좋다. 그런 시간을 가져야만 아까 말한 운동도 하고 친구들도 만날 수 있게 되는 거다. 혼자서 오랜 시간 살아 본 사람들은 공감하는 얘기라고 생각한다.

 

동년배의 친구들이 남편이나 자식을 위해 돈과 시간을 많이 쓸 텐데 그러한 비용과 시간을 본인은 어떻게 사용했는지 궁금하다.

 

자식이 없으니까 자식한테 드는 용돈, 학원비가 없을 것 아닌가. 그 돈을 내 취미생활을 위해 쓴다고 보면 된다. 일단 운동하는 데 많이 쓴다. 요즘은 골프를 하는데, 장비 구매와 배우는 데 드는 비용이 많다. 또 가구를 많이 산다. 얼마 전에도 이케아에서 조립형 책꽂이를 샀다. 그걸 조립해서 방 하나를 서재로 꾸미는 중이다. 계절마다 연휴마다 여행을 다니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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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혼 주의자 N 씨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기에 사람들과 이야깃거리가 많겠지만, 주변 친구들이 결혼하게 되면서 말이 안 통하거나 멀어지게 된 적은 없나?

 

사이가 틀어지지는 않았다. 결혼한 친구들을 안 만났을 뿐이다. 내가 일부러 안 만난 게 아니고 결혼을 하면 워낙 바빠지더라. 그래서 만나기가 어려워졌다. 그러다 여유가 생기면 나를 만나러 오는데, 예전이랑 관계는 똑같다. 같이 술을 마시고 놀다가 그 친구는 본인의 일상으로 돌아간다. 나는 항상 그 자리에 있는 거다. 결혼한 친구들과의 관계가 단절되는 게 아니라, 그들이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것뿐이다. 공통화제가 없어서 친구들을 일부러 멀리한 적은 없다. 물론 자랑을 하는 친구들은 있다. 흔히 남편 자랑을 하는데, 젊었을 때나 지금이나 부러워한 적이 없다. 우리 아버지가 굉장히 엄한 분이었는데 그래서인지 ‘남편’ 하면 큰소리치는 남자가 떠오른다. 결혼 생활에 대한 이상이 없으니 자랑을 해도 별 느낌이 없다.

 

얘기를 들어보면, 결혼 제도에 대해 쓸모없다고 여기기보다 일단 그들을 존중하는 게 느껴진다. 반대로 비혼주의는 존중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본인들의 결혼 생활이 행복하지 않았음에도 결혼을 강요하는 친구들이 있을 것 같다.

 

아는 언니가 있다. 어느 날 나한테 강아지를 한 마리 키워보라고 하더라. 강아지는 주인을 잘 따르고 심부름도 한다고 했다. 그래서 강아지를 키워보니 정말 좋더라. 그런데 그 언니가 시집을 가고 애를 낳더니 이제는 나더러 시집을 가서 아기를 낳으라고 하더라. 아기가 너무 예쁘고 조금 크니까 강아지가 심부름하는 것 이상으로 심부름을 잘한다고 하는 거다. (웃음) 그러더니 어느 날인가? 본인이 행복하지 않은 이야기를 들려주더라. 남편 얘기, 자식들이 속 썩이는 얘기들을 하는데 그런데도 결혼은 한 번 해보라고 말하더라. (웃음) 그게 뭐냐. 항상 행복해야 하는 거 아닌가.

 

본인이 불행한데 왜 한 번은 해봐야 한다고 설파하는 건가?

 

내 생각에 결혼은 아주 약간의 행복은 준다. 하지만 행복보다 타격이 큰 제도라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결혼 생활이 불행하기만 했다면, 사람들이 결혼을 권하지 않을 거다. 하지만 남편은 싫은데 아이가 좋고, 신혼 때는 너무 행복했고, 그런 경우가 많지 않나. 그 약간의 행복을 잊지 못해서 권하게 되는 거로 생각한다.

 

잘 들었다. 혹시 마지막으로 오지라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

 

너희나 잘살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나는 앞으로도 이렇게 살 생각이니까 각자의 인생을 존중했으면 한다.

 

기획. 샤미즈, 엑스, 진

글. 샤미즈(ndhhdm9019@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