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들이 있다. 결혼이 그렇다. 많은 사람들은 ‘당연히’ 결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비난과 조롱, 때로는 연민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결혼을 하는 이유가 다양하듯 비혼의 이유도 다양하다. 거기엔 ‘N포세대’의 문제도, 한때의 철없는 소리도 아닌 각자의 주관이 담겨 있었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해인: 저는 평범한 대학생이고, 페미니즘 관련 글을 쓰는 동아리에서 활동하고 있어요.

수민: 그럼 저는 평범한 직장인이라고 할게요. 결혼제도폐지운동본부(@anti_marriage) 트위터 계정을 관리하고 있어요.

윤진: 저를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네요. 사회를 향해 저를 표현하는 퍼포먼스, 작품 창작 등의 활동들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가람: 여성단체 민우회 활동가입니다.

 

본인이 비혼주의자라고 생각하나요?

 

해인: ‘결혼을 하고 싶지 않아’라고 생각하긴 하는데, ‘절대 결혼 안 해’라는 생각을 하는 건지는 고민이에요. 그런데 정말 안 할 것 같긴 해요.

수민: 저는 비혼주의자라기보다는 결혼제도가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윤진: 비혼주의자라는 언어로 저를 규정짓고 싶지 않아요. 비혼을 지향하는 것뿐이죠.

가람: 저는 지금의 한국사회가 원하는 방식의 결혼은 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다만 모든 사람이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비혼’이라는 단어는 결혼하지 못한 사람, 했지만 회의를 느끼는 사람, 그리고 결혼이라는 선택지조차 주어지지 않는 사람 등 다양한 처지인 사람들을 포괄하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49317-2

해인, “대학에서 페미니즘을 접하고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어요”

 

결혼하지 않기로 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해인: 대학에서 페미니즘을 접하고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어요. 여성에게 재생산노동을 전가하는 사회 속에서 제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다 보니 결혼은 제 자유를 제약할 수밖에 없다고 결론을 내렸어요. 그리고 저는 결혼보다 제 자유를 훨씬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기 때문에 결혼하지 않으면 더 행복하리라는 것을 알았고요. 혼자 돈 벌어 취미 생활하면서 자유롭게 살고 싶어요.

수민: 처음에는 애를 가지지 않을 거니까 결혼을 안 해도 되겠다는 수준이었는데 ‘꼭 결혼을 통해서만 애를 가져야 할까?’라는 의문이 들었어요. 지금은 아예 결혼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결혼과 같이 편의를 제공하는 다른 제도가 마련되고 사회인식이 바뀌면 사실혼 관계의 커플이나 여성 혼자 아이를 기르는 것이 충분히 가능할 거예요.

윤진: 예전부터 사람들이 나를 나라는 인간 그 자체로 보기 이전에 일등 신붓감, 아내, 며느리 등 여성의 기능으로 보는 시각에서 탈피하고 싶었어요. 어린 시절 아버지가 가사 노동을 하는 어머니를 계속 무시하며 폭언을 일삼는 모습을 보고 자라면서 결혼과 가족 이데올로기 속에 있는 폭력성을 목격하기도 했고요. 그 안에서 또 다른 가해자 혹은 피해자가 되기 싫었어요.

가람: 일단 저는 이성애자가 아닙니다. 그래서 결혼이라는 범주에 들어가지 못해요. 하지만 이성애자였어도 지금처럼 비혼 상태를 유지했을 거에요. 결혼은 내 자식을 낳아 가정을 꾸리려고 하는 것인데 기존의 혈연 중심 가족관에 대해 회의를 품고 있거든요.

 

결혼이라는 제도 자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해인: 부자연스러운 제도라고 생각해요. 결혼하면 보통 오랜 시간을 같이 살게 되고 그게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같이 지내다 보면 떨어지고 싶을 수도 있고 그게 자연스러운 건데 결혼 제도는 자유로운 선택을 어렵게 하죠.

수민: 지금의 결혼 제도에 의해서 한 남자와 한 여자 사이의 사랑을 제외한 다양한 형태의 사랑이 배제당하고 있어요. 또 한국에서 결혼은 여성에게 특히 더 많은 차별적 의무를 강요하는 제도로 작용하고 있고요.

윤진: 저는 결혼, 더 나아가 결혼을 통해 구성되는 핵가족 제도 속에 엄청난 폭력이 들어있다고 생각해요. 폭력적인 가정도 가정이라는 이름으로 유지되고, 폭력을 벗어나려는 이혼은 부정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져요.

가람: 실질적인 가족의 모습은 최근 1인 가구가 많이 생겨나는 것처럼 변화하고 있지만, 아직 전통적이고 가부장적인 특징이 결혼과 가족의 상에 머물러 있어요. 예전에는 여성이 가족 내의 가부장적 권력관계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통해 얻는 장점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여성이 일하기 힘들었고, 원 가족으로부터 독립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결혼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여성도 맞벌이하니까 더는 결혼을 선택할 이유가 없죠.

 

결혼이 여성에 대한 억압이라는 점을 언급하셨는데 페미니즘을 통해 이 점을 깨닫게 된 건가요?

 

해인: 저도 어렸을 때부터 행복하지 않은 부모님의 결혼 생활을 보면서 인생에서 결혼을 염두에 두지 않았어요. ‘결혼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은 쭉 가지고 있었는데 페미니즘을 공부하면서 생각이 명확해지고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하게 된 거에요. 페미니즘은 제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의 일부였다고 생각해요.

수민: 전 남자친구가 본인은 진보적이라고 하면서, 어느 날 조금 비싼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는 여자들을 보고 “군대도 안 갔다 온 년들이 비싼 밥은 잘만 처먹네.”라고 말하더라고요. 그때부터 여성으로서 겪는 부당한 일을 곱씹게 되었고 페미니즘에 관심을 두게 되었어요. 공부하다 보니 애초에 결혼은 남성중심사회의 필요 때문에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죠.

윤진: 페미니즘이라는 말을 알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았어요. 하지만 페미니즘을 통해서 제가 두루뭉술하게 느끼고 있던 억압들이 저만의 개인적인 문제가 아닌 사회적인 문제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어떤 점에서 결혼이 여성에 대한 억압인지 조금 더 자세한 설명을 듣고 싶어요.

 

해인: 저는 국가가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여성들을 이용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국가가 책임져야 할 육아, 부양 등을 전부 여성에게 떠넘기고 있잖아요. 여성을 국민의 일원이 아닌 국민을 재생산하기 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듯한 느낌도 들어요. 동아리에서 국가의 정책들을 공부하면서 더욱 그렇다는 확신이 생겼어요.

수민: 여성은 자신의 배에서 태어난 자식을 확실히 자기 핏줄이라고 알 수 있지만, 남성은 그렇지 못하니까 자신의 핏줄을 보장받기 위해서 여성을 결혼과 성적 억압을 통해 속박하기 시작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굳이 여성이 낳은 아이를 남성의 자식으로 등록시켜야 할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어요. 태어난 아이를 어머니 쪽에 등록하고 일명 ‘대를 잇도록’ 하면 여성에 대한 성적인 억압과 남성에의 소유라는 관념이 상당 부분 옅어질 수 있을 거예요.

윤진: 결혼은 좋은 일등 신붓감, 엄마, 아내, 며느리 등으로 여성을 기능화해 버려요. 남성들이 원하는 모습으로만 보는 것이죠. 여성들이 원하는 모습처럼 되지 않으면 ‘나쁜’,’불결한’ 등의 수식어로 낙인을 찍어 버리고요. 사회가 여성에게 남성들의 시선에 맞춰진 모습을 강요하는 것이고 결국 여성들은 도구화, 대상화된 삶을 살 수밖에 없어요.

가람: 기혼 여성이 여행을 떠나면 남편 허락은 받았냐는 질문을 엄청나게 받아요. 기혼 여성의 삶의 범위를 남편의 허락 안에만 두는 거죠. 기혼 남성이 여행을 간다고 해서 아내가 허락을 해줬냐고 물어보는 경우는 드물잖아요. 그러니까 남편은 결국 보호자가 되는 거에요. 아내는 보호자가 필요한 존재가 되고 보호자가 없으면 활동에 제약이 생기는 거죠.

 

49317-3

수민, “대를 잇는 것이나 가족 간의 결합보단, 개인 간의 결합이 주가 되어야 하죠” 

 

결혼 외에 어떤 관계의 제도 또는 방식이 바람직할 것으로 생각하나요?

 

수민: 중국의 소수민족 중에 여성이 축제에서 마음에 드는 남자를 골라 하룻밤을 지내고 임신을 하면 아버지 없이 아이를 낳아 여자들끼리 함께 도우며 기르는 민족이 있어요. 남성이 ‘저 아이가 자신의 아이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해도 ‘내 아이’라는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는다고 해요. 현대 사회에서도 유사한 형태가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대를 잇는 것이나 가족 간의 결합보단 개인 간의 결합이 주가 되어야 하죠.

윤진: 규정되는 관계는 싫어요. 서로 ‘너는 내 애인이다’를 규정하지 않고 같이 있는 사람에게 그때 좋으면 좋다고 표현하는 삶을 살면 된다고 생각해요. 어떤 사람들은 이런 것을 다자연애주의라고 이야기하기도 하는데, 그런 이름 붙이는 것 자체가 싫어요. 그냥 자연스럽게 삶을 살고 싶어요.

가람: 프랑스의 ‘팍스법’이라는 파트너등록제가 있어서 기존의 결혼관계 외에도 동성 커플을 포함한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인정하고 있어요. 다른 유럽 국가들에도 동반자의 의무나 권리는 지키지만, 정조의 의무는 지지 않는 제도가 있고요. 혹은 사랑하는 사이는 아니지만, 후견인 등의 관계로 가족이 된다든지 하는 경우가 있어요. 단순한 혈연관계를 넘어 가족이 되는 것이죠.

 

결혼하지 않는다면 가족의 모습도 많이 바뀌겠군요.

 

수민: 가족의 형태가 느슨해졌으면 좋겠어요. 혈연관계가 아니더라도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예를 들어 여성들끼리 애를 키우면서 오순도순 살겠다고 하면 가족으로 인정해줄 수 있어야 해요. 결혼과 마찬가지로 가족도 ‘정상 가족’의 모습이 정해져 있고 다른 형태의 공동체는 모두 배제당하고 있어요. 국가는 혈연공동체만 가족이라고 규정할 것이 아니라 자신을 가족으로 규정한 공동체의 계약을 보증해주는 역할을 맡아야 해요.

윤진: 저는 가족이기 때문에 얼굴을 봐야 하고, 화목해야만 하고, 명절에는 모여야 하고. 그런 식으로 가족의 도리를 정해놓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보고 싶으면 보고, 서로 마음이 맞으면 친하게 지내고 그러면 되는 것이죠.

가람: 결혼뿐만 아니라 혈연 중심의 가족관이 가지는 모순이 아주 커요. 가족법에 따르면 관계는 남이나 다름없더라도 부모나 자식이 있으면 그 소득에 따라 복지의 대상에서 제외돼버리고 복지제도는 4인 가족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현실에는 다양한 형태로 사는 사람이 더 많잖아요. 앞서 말한 것과 같이 혈연을 넘어서는 경우를 인정하고 가족에 대한 상 자체가 완전히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지금의 한국에서는 결혼과 혈연을 통해 맺어진 가족이 당연한 삶의 방식으로 여겨지고 있어요.

 

해인: 결혼을 당연히 언젠가는 하게 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친구들이 많아요. 아버지도 제가 이상하다고 말씀하시기는 해요. 그래도 저 같은 사람도 있는 거라고 뜻을 최대한 전달하면 받아들이는 분도 있어요.

수민: 우리 어머니도 걱정하곤 하세요. (혼인신고 등의) 법적 공인을 받지 않고 같이 사는 것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좋지 않고, 특히 여자들에게 미치는 타격이 더 크니까요. 애인도 처음에는 결혼할 만큼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받아들였지만 새로운 관계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설명을 계속하니까 이해해주는 것 같아요.

가람: 시간이 걸리겠지만, 혈연 중심의 가족 제도는 언젠가 깨어질 것으로 생각해요. 연대가 중요한 지점이 여기 있어요. 비혼 가정이 그 수가 많아지고 함께 목소리를 낸다면 정부에서 신경을 안 쓸 수가 없겠죠.

 

대부분의 사람이 결혼하는데 혼자만 하지 않는 것, 그러니까 일반적인 모습에서 벗어나는 것에 대해 부담감을 느끼지 않나요?

 

해인: 나이 많은 결혼 안 한 여자한테 어떤 시선이 가해지는지 아니까 나중에 그 시선을 버틸 수 있을까 두렵기도 해요. 그래도 내가 싫다는데 뭐. 나 같은 사람도 있는 거지.

수민: 제가 결혼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해서 비혼을 선택한 것이고 제가 잘못한 게 아니니까 걱정되지 않아요.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사람들을 설득할 일이지 제가 움츠러들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윤진: 사람들은 보통 결혼과 가족을 제도가 아니라 자연적인 본성으로서 바라봐요. 그래서 비혼에 대한 생각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고 가족으로부터 발생하는 폭력에 각성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결혼하지 않음으로써 가족에서 벗어나 저 스스로의 삶을 찾아갈 수 있다고 생각해서 좋아요.

가람: 저는 사회가 말하는 ‘정상 가족’에 속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소수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 삶이 일반적이지 않다고 느끼지 않아요. 사회가 말하는 ‘정상’과 ‘일반적인 삶’에서 벗어나는 걸 두려워하면 불안감만 더 커져요. 그러다가 도미노처럼 떠밀려 결혼을 하게 되고요.

 49317-4

윤진, “단어를 규정짓는 순간 내 삶의 주인은 내가 되지 못하는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수민: 전 정말이지 결혼이 폐지되었으면 좋겠어요. 제 트위터 대문에도 써놓았지만 “결혼이라는 제도는 인간(특히 여성) 억압적이며 비정상적인, 오로지 인간만의 인위적인 산물이다. 폐지하자!”라는 말을 하고 싶네요.

윤진: ‘사랑’과 같은 단어를 규정짓는 순간 내 삶의 주인은 내가 되지 못하는 것 같아요. 그냥 나대로 살아가고 싶고 누구의 무엇이기를 거부하며 나의 이름으로 존재하고 싶어요. 결혼도 저에게 씌워지는 수많은 껍데기 중의 하나이기 때문에 거부하는 것이고요.

가람: 대부분 기혼자는 저를 보면 결혼을 강요하거나 솔로를 예찬하거나 둘 중 하나에요. ‘너도 불행 해봐라’하는 식으로 권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자신이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았다는 증명을 받고 싶은 것으로 생각해요. 사람마다 삶의 형식이 다양하고 자신이 선택한 삶에 따라오는 행복과 불행의 모습 또한 다양해요. 그러니 상대방의 삶을 타자화하거나 이상화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 해인, 수민, 윤진, 가람는 모두 가명임을 밝힙니다.

*  네 분의 인터뷰를 간담회 형식으로 재구성하였습니다. 

기획. 진, 샤미즈, 엑스

글. 진(bibigcoma@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