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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산원이라고 들어봤어?

아침 6시에 일어나서 9시까지 학교에 간다. 3시 반까지 학교 수업을 듣고 저녁부터 10시까지 학원에서 공부한다. 그 이후로도 자습이 이어진다. 집에 돌아오면 열두 시 반, 아니면 한시. 주말과 방학도 학원에서 시간을 쓴다. 나는 고3이 아니다. 재수생은 더더욱 아니다. 나는 전산원을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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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국대 전산원

 

키보드 두드리는 전산원 말고 또 뭐가 있는데?

 

누구나 그렇듯이 수능을 보기 전부터 재수나 편입을 생각하지 않았다. 수능을 보고 나서야 알게 된 전산원. 그 전에는 전산원이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고 뭔가 인터넷 관련 작업을 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정체를 모르던 전산원에 다니게 된 건 아무래도 수능을 망쳤기 때문이다. 대학교에 갈까 취직을 해야 할까 하는 갈림길 사이에서 아버지의 지인과 선생님이 전산원을 추천했다. 길게는 3년, 짧게는 1년 반 동안 대학교처럼 140학점을 따고 학사학위를 취득해서 편입 준비를 할 수 있는 곳이 전산원이라고 했다.

 

재수를 해서 1년을 되돌아가 남들보다 느린 1학년을 시작하는 것도 싫었고, 다시 수능을 봐도 잘할 수 있을 것이란 각오가 없었다. 결국 남들이 전산원이 뭐 하는 곳이냐고 물을 때 스스로 알아가겠다는 마음으로 전산원을 들어갔다. 대학교처럼 과가 나누어져 있어 전공 공부를 하면서 자격증을 따야 한다는 것도 낯설었지만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수험생이라는 마음으로 들어갔지만 전산원에는 OT도 있고 개강파티도 있다. 한 학기 삼백만 원. 대학교 등록금과 비슷한 돈을 내면서도 딴짓을 하거나 수업을 빠지고 술을 마시러 가는 사람도 있다. 고등학교와 달리 그렇게 해도 간섭하는 사람은 없지만 사실 시험의 압박이 크다. 전산원은 학사를 따기 위한 학점인 140학점을 보통 1년 반 동안 채워야 한다. 그 3학기 동안 60학점 정도를 수업으로 채우고 나머지를 국가에서 인정하는 자격증과 교양 자격증을 따야만 학사편입 시험을 볼 수 있다.

 

자격증 시험이 쉬운 것도 아니다. 신청 기간, 난이도, 공부법 등은 교수님이 알려줘도 고등학생 졸업 후 갑자기 맞이해야 하는 독립적 공부 방식에 헤매게 된다. 선배가 알려주면 다행이지만 전산원은 겨우 3학기 하고 나가는 사람이 많아 선후배 관계가 특별하지 않다. 그렇게 자격증에 대한 불안감이 코앞에 닥친다. 여유나 휴식을 찾고 있을 때 자꾸만 눈에 밟히는 것이 시험과 학점이다. 이 불안감을 못 이기는 사람들은 저마다의 사정을 안고 전산원을 그만둔다. 6반까지 있던 경영학과가 일 년이 지난 지금은 2반뿐이다.

 

전산원은 학기별로 등록하기 때문에 학기 중이 아니면 A대 학생식당도 도서관도 이용하지 못한다. 전산원은 좁고 낡아 공부할 환경이 열악하다. 그나마 양질의 수업으로 위안 삼는다. A대 학생들은 학기 초에 동아리에 들어오라고 우리를 붙잡다가 전산원 학생이라고 말하면 “우리 학교에 전산원이 있어요?” 혹은 “전산원이 뭐예요?” 하고 묻는다.

 

내가 졸업을 할 때면 졸업장에 ‘A대’ 전산원이라 쓰여있겠지만 교수님들은 “너희는 A대 학생이 아니다. 재수생 신분, 수험생 신분으로 살아야 한다”라고 말한다. 모두가 알고 있다. 전산원 학생도 학점을 받는 대로, 점수는 주는 대로, 시간이 흐르는 대로 4학년까지 다녀도 된다. 하지만 아무도 그러고 싶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A대 학생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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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돼도 재미 하나도 없다 ⓒ 폭스

기껏 대학생 돼도 놀지 못해

 

사회복지과 같은 경우에는 전산원 졸업 후 사회복지사로 일하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이 대학 편입을 목표로 전산원을 들어왔다. 지금은 나도 전산원 경영학과지만 대학교 편입 시험을 보고 나서는 다른 전공을 선택할 수 있다. 전산원 3학기가 끝나면 편입 영어에만 매달린다. 재수학원으로 유명한 게 D 학원이라면 편입은 W 학원이 유명하다. W 학원에서는 ‘도당’, ‘편재하는’, ‘불가지론’ 같은 한국어로도 아리송한 단어를 외운다. 영어는 기본에, 이과는 수학까지 포함하여 12월 말부터 시작하는 편입시험에 응시한다. 교수들은 편입지망생 대부분이 편입이 가능하다고 말하지만 다들 기 쓰고 애써서 원하는 학교에 가려고 한다. 하지만 현실에 순응해야 하는 것도 수험생의 몫이다.

 

대학교에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 재수가 아닌 편입을 준비했지만, 그 대가로 꿈꾸던 대학 생활을 포기해야 했다. 전산원에서 졸업 후 뿔뿔이 흩어지면 3학년으로 편입해 남들 다 노는 1, 2학년 시절이 사라진다. 곧장 취업으로 바쁜 3학년, 4학년이 되고, 군대를 다녀온 남학생은 수험생에서 취준생으로 변하는 흐름에서 숨 돌릴 틈도 없다. 또 선배들이 말하길 편입생은 기존 학생들 틈에 들어가기도 쉽지 않다고 했다.

 

가본 사람이 없는 길은 아무도 가려고 하지 않는다. 2년 동안 준비하는 학사취득과 편입준비도 녹록지 않을 것이다. 고등학교 후배 부모님이 입시 철이 끝나면 전화를 걸어온다. 우리 아이를 전산원에 보내려고 하는데 어떻냐고… 걱정에 쌓인 그분께 할 말은 이것뿐이다. 전산원을 다니는 사람은 그저 수험생일 뿐이라고. 똑같이 외롭고 여전히 부담스럽고 계속해서 불안하다고.

 

* 2명의 인터뷰를 각색해서 쓴 기사입니다

글. 타라 (kim_ny13@naver.com)

타라
타라

에바에 타라

1 Comment
  1. Avatar
    지선호

    2019년 3월 12일 15:45

    저도 동국대 전산원 나와서 지금 숭실대 It융합전공으로 편입했어요. 많이 공감되는 글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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