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고졸’인 사람들과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고졸’의 시점에서 쓰인 기사입니다. 

 

나는 고졸이다. 나도 내가 고졸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지만. 졸업하고 벌써 몇 년이 지났다. 20살이 된 나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졸업식은 나에게 마냥 즐거웠다.

 

그날은 눈이 왔다. 졸업식 노래는 윤종신의 ‘교복을 벗고’로 시작하는 슬픈 노래였다. 제목이 뭐였더라…… 생각해보면 졸업식이랑 연관 있는 가사는 고작 ‘교복을 벗고’ 부분뿐인데도 졸업식 노래로 선택됐다.

 

노래 부르기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웃던 친구들이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별로 졸업이라는 것에 큰 의미를 담지 않아서인지, 졸업이라는 사실에 오열하고 있는 녀석들이 신기했다. 물론 누구한텐 졸업이 슬프고 아쉬울 수도 있겠지만, 그게 뭐 대단한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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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 졸업! 꺄오!

 

내게 졸업식은 꽤 환상적인 의미로 다가왔다. 해야 할 것은 없었다. 하고 싶은 것만 남은 삶의 시작점이라고 생각했다. 대학에 가지 않는 대신, 항상 꿈꾸던 미술을 하기로 했다. 돌이켜보면, 그림을 그리는 것만큼 행복한 것도 없었다.

 

“에~ 여러분은 이제 완전한 자유를 얻은 자유인입니다!” 학교생활 내내 들었던 교장 선생님의 말 중 가장 마음에 들었다. 내가 가진 자유와 대학 가는 친구들이 가진 자유는 비교할 바가 못 된다고 생각했다.

 

생각보다 자유로운 사람이 되지 못했다.

 

완벽한 자유를 얻었지만, 그것이 온전히 내 시간은 아니었다. 미술을 공부하고 있었지만,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한 부모님에게도,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 형에게도, 그리고 주변의 많은 사람에게도 나는 나태한 사람이었다. 방에 틀어박혀 수많은 미술책과 그림 속에 파묻혀 살았지만 나는 나태한 사람이었다. 첫 학기부터 학사경고를 받은 사촌에게도 비슷한 얘기를 들었다. 나태함의 척도는 학사경고가 아닌 ‘대학’이란 학력의 유무였다.

 

고등학교 친구들과 무언가를 함께한다는 ‘동지애’는 졸업식 날이 마지막이었다. 술자리에서 만난 친구들은 온통 선배, 교수, 학교를 침 튀기며 욕하기에 바빴다. 참 다양한 나쁜 사람들이 있었다. 억지로 술 먹으라고 강권하는 선배는 기본이다. 여자 후배 성추행하는 선배, 교수는 어느 대학이나 있는 것 같다. 친구들은 자기 현실에 존재하는 그들을 향해 ‘맞아, 그런 새끼들 X 잘라 버려야 해’라며 공감했다. 그사이에 나는 뭘 했냐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내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선배’와 ‘교수’ 그리고 ‘대학’을 상상하는 것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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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겠다 ⓒ 주노

 

모두가 대학에서의 고민을 얘기할 때, 내 고민과 이야기는 낄 자리가 없었다. 아무래도 대학생의 고민과 고졸의 고민은 그 경중부터가 다르다고 여겼을지도 모른다. 언제나 친구들을 만날 때, 나의 역할은 ‘듣는 사람’이었다. 물론 재미는 있었다. 남자친구가 군대에 가서 너무 고민이라는 친구부터, 취업 걱정, 정치 걱정까지. 그 와중에 대학에서 일베에 빠진 친구를 갱생 시기키 위해 노력하는 친구들의 모습이 흥미로웠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런 모임에 가지 않았다. 나에게 무엇을 하고 지내냐고 물어보는 친구에게 공부한다고 하면, 언제나 돌아오는 대답은 ‘일은 안 하니?’란 질문이었다. 그 질문이 너무 싫었다. 아무리 불편하고 힘들어도 나의 공부가 무엇인지, 나의 미래 비전은 무엇인지 일일이 설명해야 했다. 그런 설명을 하지 않으면 된다고? 그 순간 나는 미래 생각도 안 하는 한심하고 나태한 사람이 되어 버렸다.

 

괜찮을 줄 알았지만, 어느새 ‘대학’이라는 것이 주는 편안함을 갈망했다. 대학생이 아니라는 것은 피로하고 이상한 설명을 많이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어느새 대학을 가지 않은 이유를 이해시키기 위해 변명 같은 설명을 열심히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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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그랬는지는 여기 다 써놨으니까 알아서 읽어 (X발) ⓒ 스폰지밥

 

미용실에 갔다. 또다시 미용사는 나의 학력을 물어본다. 얼굴에 물이 튀지 않기 위해 올려놓은 수건의 무게가 달라진다. 대학을 다니지 않는다고 했을 때 돌아올 반응이 얼추 예상된다. “아… 그렇구나…”하고 이어지는 동정 섞인 침묵. “왜 안 갔어요?” 라며 또다시 이해와 설명을 요구하는 말. 대학을 다니지 않는다는 말이 줄 피로감에 대충 적당한 대학의 이름을 외쳐버린다. “A대 다닙니다.” 대학을 다니는 것 자체가 이미 너무 당연하기에, 추가적인 설명은 필요하지 않다.

 

명문대 교수, 미국 대학에 다니는 학생이 TV에 나와 힐링을 얘기하고 학력이 중요하지 않다고 얘기한다. 고졸로 사는 것이 대학 가는 것보다 더 좋을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한다. 경험해보지 못한 삶에 대하여 돈 받고 쉽게 얘기하는 것을 보니, 대학이라는 것이 가진 위세는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거대한 것 같다.

 

그래서 졸업은 나에게

 

졸업 이후 매 순간 불안하다. 패기 없는 겁쟁이라고 해도 상관없다. 그렇다고 불안한 것이 변하지는 않으니까. 2년 만에 수능 문제집을 폈다. 2년의 불안과 피로, 소외 끝에 이제는 새로운 입학을 기다린다. 고졸을 대학생과 같은 20대 청춘이라고 할 수 있을까? 대학생인 것과 그렇지 않은 자의 간극은, 어떻게 해도 좁힐 수 없었다. 나름의 공부, 그리고 내 그림들은 결국 돌고 돌아 올해 미대 입시 시험을 위한 포석이 됐다.

 

입시미술을 하고 있다 ⓒ 인천일보

 

주변에선 입학이 오히려 나를 더 힘들게 할 것이라 얘기한다. 하지만 과제, 강의, 선후배 관계라는 이름의 피로와 ‘고졸’이라는 이름으로 느끼는 수많은 피로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일말의 고민도 없이 전자를 택하겠다. 대학생이 아닐 때 받는 피로는 대학생인 그들이 절대 경험할 수 없다.

 

나는 고졸이다. 나도 내가 이런 모습일 줄은 몰랐지만 22살이 된 지금의 나를 본다. 졸업식은 ‘졸’로 줄어 내 꼬리표가 됐다. 이제는 졸업식보다 입학식을 마냥 기다린다.

 

글. 통감자(200ysk@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