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20·30이라고 해서 청년 정치인은 아니다. 새누리당 7번 비례대표 후보에 배치된 신보라 후보에 관한 이야기다. 사실상 당선권이다. 언론은 새누리당이 청년을 비례 7번에 배치한 사실을 부각한다. 하지만 신보라 후보가 비례 7번에 포함되었건 17번에 포함되었건, 혹은 (앞날은 모르니까) 탈락하건 간에 언론이 신보라 후보에게 붙인 ‘청년 대표’라는 수식어가 의아하게 느껴진다.

 

누가 청년 정치인인가?

 

청년 의제에 대해서 말하면 청년 정치인일까. 그렇다면 김무성도 어떤 지점에서는 청년 정치인이다. 하지만 김무성을 청년 정치인이라고 말하지 않는 이유는 그의 나이 때문이다. 청년 정치인은 청년 의제에 대해서 말함과 동시에 ‘청년 나이’인 정치인을 뜻한다.

 

정치에서 나이는 꽤 중요하게 여겨졌다. 정치적 수를 비롯해 인맥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가 나이였고 나이가 많을수록 발언권도 남다르다. 그런데 청년 정치인은 오히려 어릴수록 ‘청년 정치인’임을 인정받는다. 청년 정치인에게 중요한 덕목은 청년의 입장에서 말할 수 있는 ‘당사자성’이기 때문이다.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다. ‘여성 대표’, ‘이주민 대표’, ‘장애인 대표’ 등과 마찬가지로 소수자를 대표할 수 있는 건 소수자 내부에 있는 당사자뿐이라는 인식에서 비례대표 명단이 작성되곤 한다.

 

그렇다면 신보라 후보는 청년 정치인인가?

 

당사자성은 청년을 대표할 수 있는 조건이 되지만 역으로 청년을 온전히 대표할 수 없는 한계가 되기도 한다. 청년 집단은 사실상 ‘청년’이라는 한 단어로 묶을 수 없을 정도로 내부가 이질적이다. 1,400만 명이 넘는 청년‘들’은 나이 말고는 공통점을 찾기 힘들며 지역·성별·학력·학벌에 따라 수없이 나뉜다. 어떤 세대론을 꺼내도, 그런 청년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이들을 ‘청년’이라는 하나의 틀로 규정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때론 무의미하다. 

 

그렇다면 청년 당사자성을 내세우는 정치인은 수많은 청년의 특징, 수많은 당사자성을 모두 가지고 있는 ‘슈퍼 청년’일 수 있을까? 당연히 없다. 그래서 당사자성의 함정에 빠진 청년 정치인이 취할 수 있는 태도는 크게 3가지 정도로 압축된다.

 

1) 좌절한다.
2) 청년 집단 내 이질성을 무시하고 청년을 N포세대, 88만 원 세대로 후려친다.
3) 청년 집단 내 이질성을 인정하고 수많은 청년을 최대한 가시화하기 위해 노력한다.

 

49536-3

누가 청년일까? 난 청년인가? 청년이 뭘까? ⓒ 킹오브더힐

 

이중 신보라 후보가 선택한 방법은 2번이다. 신보라 후보는 노동 4법 및 임금피크제와 관련한 이슈에서 끊임없이 ‘기성세대’ 기득권 타파를 주장했다. 청년 세대와 기성세대의 대결구도를 설정해 청년 실업이 기성세대의 기득권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다.

 

신보라 후보 같은 문제의식은 ‘세대’가 동일한 속성을 가지고 있고 동일한 경험을 하고 있으며 다른 세대와 경쟁하고 있다는 세대론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하지만 실업 문제는 소수 대기업 중심의 경제 구조와 노동 유연성의 증가, 경제 침체 등이 원인이며 이는 세대를 막론하고 대다수 ‘사회구성원’이 처해 있는 문제다. 20~30대와 40~50대가 서로 대체 인력이 아니라는 점도 이미 여러 연구가 증명했다.

 

신보라 후보는 청년 당사자임을 내세우면서 청년(무려 1,400만 명이 넘는) 내부의 다양성을 무시하고 하나의 속성으로 ‘청년’을 상정했다. 그리고 이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기성’을 구성했다. 자연스럽게 청년과 기성은 한정된 자원을 두고 싸우는 대립하는 한 쌍이 되고, 이 프레임은 계급, 성별과 같은 실제 원인은 감추는 마취제가 된다. 신보라 후보는 청년을 내세우고 있지만 청년과 기성의 대립 구도에서 기성세대와 싸우는 ‘청년 행동 대장’ 지위를 얻기 위할 때만 청년을 내세운다. 세대 동질성을 강조하는 세대론을 전제하는 이상 신보라 후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청년 vs 기성’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렇다면 청년 정치인은 무엇을 말해야 하나

 

물론, 청년 집단 내부가 ‘나이’라는 공통점만 있을 뿐 하나로 엮을 수 있는 공통된 틀이 없으므로 청년을 대표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대표하기 어려움’이 청년을 N포세대로 후려치고 노력하지 않는 니트족으로 후려치는 것의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청년 정치인이 청년을 대표하기 위해 필요한 건 청년 집단 내부의 다양한 층을 더 세심하게 살피고 다양한 특징을 가진 청년을 대표할 수 있도록 문제의식을 갖는 것이다.

 

 

이 이상한 패러디에서도 N포 세대는 죽지 않고 반복된다 ⓒ 청년이 여는 미래(신보라 대표)

 

이처럼 청년 정치인이라고 하면 단지 나이가 청년인 사람을 의미하지 않는다. 청년 정치인은 청년 ‘밖’에 있는 사람이 인지하지 못하고 미쳐 지나친 것, 편견, 혹은 고정관념으로 해당 집단을 후려치는 것에 반대하고 ‘안’의 결을 섬세하게 살려 ‘밖’ 사람에게 공감을 얻기 위해 당사자성을 발휘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끝은 청년도 (그리고 청년뿐만 아니라 다른 세대도) 사실 동등한 사회구성원이라는 사실을 향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고 ‘밖’의 논리를 ‘안’으로 끌고 와 ‘안’에 있는 사람들을 마취시키거나 설득하는 것은 밖과 안이 서로 대등하지 못한 상황에선 소통의 탈을 쓴 권위주의일 뿐이다. 이 점에서 새누리당의 ‘기성세대 vs 청년 세대’ 프레임을 그대로 답습하고 청년에게 세대론을 강요하는 신보라 후보는 청년 대표로서 부적합하다. 청년에게는 신보라 후보 같은 ‘정치인’이 아니라 세대 프레임을 극복하고 청년을 사회구성원으로 구성하는 ‘청년 정치인’이 필요하다.

 

신보라는 청년 대표일 수 없다.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에 공동 게재되었습니다. 

글. 참새((gooook@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