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룡충 극혐.”

 

국내 최대 E스포츠 리그인 롤챔스 코리아(아래 LCK)의 실시간 응원 페이지에 항상 등장하는 말이다. 경기 관람 중 고성으로 환호를 보내는 관객들(주로 여성 관객들)을 조롱하는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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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챔스 익룡’은 유명하다 ⓒ 디씨인사이드 

 

‘익룡’은 E스포츠가 만들어낸 신조어는 아니다. 고음역의 노래 ‘쉬즈곤(She’s gone)’의 유행으로 파생된 이 단어는 이미 오래전부터 콘서트나, 여러 공연 등에도 존재하던 표현이긴 하다. 다른 사람들이 거북할 정도로 함성이 지나치다는 ‘익룡 저격’ 후기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냥 웃고 넘어가기는 힘든 말이다. 게임 커뮤니티의 활동층이 주로 남성인 점, 또 익룡에 빗대어 표현하는 대상이 주로 여성관객이라는 점에서, ‘익룡 극혐’엔 여성 소비층에 대한 주류 남성들의 혐오가 엿보이기 때문이다.

 

직관에 고통받는 ‘집관’이라니

 

직접 경기장을 찾아가 비용을 지불하고 관람하는 것을 ‘직관’, 그렇지 않고 TV나 인터넷 방송을 통해 경기를 관람하는 것을 흔히 ‘집관’이라고 한다. 그리고 (E스포츠에서) ‘익룡’은 직관에서 높은 음역으로 소리치는 이들을 주로 ‘집관’인들이 조롱하는 말이다. 해서 언뜻 이는 일부 무례한 직관인들에 의해 집관인들이 피해받는 구도로 그려진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다. 어떤 성격의 공연이든 간에 돈으로 ‘구매’한 순간 소비자들은 현장을 ‘향유할 권리’를 지닌다. 옷을 벗어 던지거나 누군가에게 모욕을 내뱉는 등의 반사회적 행동이 아니라면, 혹은 주최 측이 규정해 놓은 규칙을 어기거나 현장의 일반적 분위기에 반하는 수준이 아니라면 향유는 소비자의 엄연한 권리다.

 

더군다나 순간순간의 명장면이나 선수에 대한 응원과 호응이 현장의 중요 요소인 스포츠 경기다. 그러니까 ‘익룡’ 소리라 조롱받는 높은 환호도 당연한, 아니 오히려 필요한 현장 요소라는 것이다. 애초에 즉각적으로 튀어나오는 함성의 높낮이를 조율하는 건 개인에게도 힘든 일이며, 스포츠 경기라는 상품의 성격상 ‘어느 정도까지 하라’며 규정될 리도 만무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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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 관객들의 함성을 익룡에 비유해 논란이된 OGN의 ‘위클리 롤챔스’  ⓒ 엑스포츠뉴스

 

물론 소리에 반응하는 정도는 각자가 다르고, 누군가는 그 소리가 정말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할지 모르겠다. 방법은 간단하다. LCK 본부 측에 정식으로 규제를 건의하고, 시장의 판단을 기다리면 된다.

 

물론 개인의 순간적인 감정과 신체적인 음역의 조합인 그 ‘익룡 소리’가 정말 규제할 만한 것인지, 또한 정말 보편적으로 ‘견딜 수 없는 것’일지, 혹은 경기라는 상품의 판매자 관점에서 그에 대한 규제가 합리적인 일일지는 확신할 수 없다.

 

그럼에도 정말로 ‘견디기 힘든 개인’이라면, 혐오하고 비난하기보다 설득을 통해 ‘에티켓’을 형성하는 것이 옳다. 개인적인 수준의 투덜거림을 넘어선 선동에 가까운 비난은 절대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익룡이 여성인 게 아니다. 여성이라 익룡이 된다.

 

‘익룡’이라는 비아냥이 더욱 문제가 되는 건 그것이 (주로) ‘남성‘들이 (주로) ‘여성 관객들’에게 쏟아내는 말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일부를 향한 비판이라 포장한다 해도 이는 자주 여성 관객 일반에 대한 남성 사회적 비난으로 이어지곤 한다.

 

어떤 방식으로 그렇게 되냐고? 애초 ‘여성적 특성’(목소리)이 ‘익룡혐오’의 원동력이다. 하여 익룡은 여성관객에 대한 검열의 기준이 된다. 익룡을 호명하는 순간 여성은 둘로 나뉘어 버린다. ‘일부’ 무개념 익룡과, 그렇지 않은 ‘일부’ 개념녀. 그러나 ‘익룡’은, 이미 말했듯 실재하는 폭력이라 볼 수조차 없다.

 

모양새가 참 익숙하기도 하다. 김치녀, 된장녀, 김여사 등등의 전형적인 여성혐오. 여성 소비층에 대한 ‘이름 붙이기’와 그에 대한 혐오의 문법은 의심의 여지없이 그것들과 맞닿아있다. 그러니까 ‘무개념 익룡’이 우연히 여성인 게 아니라는 거다. 오히려 대상이 여성이기 때문에 ‘익룡’이 만들어졌다는 거다.

 

문제는 또 있다. “익룡 극혐”은 여성 소비층의 특성을 재단하고 비난하는 혐오로 확장된다. 익룡은 종종 선수의 외모를 따라다니는 ‘얼빠’나 경기내용과 관계없이 특정 선수나 팬만을 추종하는 극성 팬 등으로 묘사된다.

 

‘매드라이프'(CJ엔투스)나 ‘페이커'(SKT T1) 등 슈퍼스타를 보유한 팀들, 혹은 ‘플레임'(롱주)이나 ‘피넛'(타이거즈) 등 외모가 빼어난 선수들에게 익룡들이 유독 따라붙는다는 편견이 재생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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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롤 미남’ 플레임 선수는 자주 ‘익룡’ 소리의 원인으로 지목받는다  ⓒ 엑스포츠뉴스

 

그러나 여성관객의 성향이 그러할 것이라는 생각 자체도 증명되지 않은 편견에 가까우며, 설령 그것이 사실이라 해도 비난할 근거는 되지 못한다. 자본주의 상품체제 하에서, 당연히 특정 스포츠도 상품이다. 그 상품에 접근하는 이유가 외모든 또 다른 무엇이든 그것을 비난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여성소비층에 대한 이 기막힌 섀도복싱은 최근 논란이 된 연극 ‘보도지침’의 제작자 인터뷰나, 인디그룹 쏜애플 멤버의 여성혐오 발언과 비슷해 보인다. 두 사건 모두 여성 생산/소비층을 ‘질 낮은’ 수준으로 곡해하고 비하했다는 혐의에 시달렸다. 해서 답도 같다. “(여성)소비자가 호구로 보이나?”

 

결국 익룡이라는 라밸링 자체도 옳지 않고, 그에 대한 오해도 옳지 않으며, 오해가 사실이어도 비난은 옳지 않다. 간단히 말해 익룡을 둘러싼 A to Z는 모두 옳지 않다.

 

소비되는 여성, 그러나 소비하면 안 되는 여성

 

떠오르는 의구심을 막기 힘들다. 주류는 이렇게 ‘여성의 소비’를 혐오하면서도, 정작 ‘여성’은 줄기차게 소비해왔기 때문이다. 여성 프로게이머 서지수도 활동 당시 ‘얼짱’으로서 소비되었고, 경기 방송 중 ‘예쁜’ 여성 관객이 클로즈업되면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기도 한다.

 

LCK의 여성 아나운서는 등장할 때마다 성희롱에 가까운 댓글들이 따라붙는다. (물론 ‘일부’ 남자들일 뿐이라 하겠지. 아니면 예쁘다는 칭찬이 뭐가 문제냐! 라든지.) 이렇게 E스포츠도 다양한 방식으로 여성을 소비해왔다. 다른 많은 영역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소비되는 여성, 그러나 소비하면 혐오 받는 여성. 이것은 사실 E스포츠 판을 넘어 한국 사회 전체의 모습이다. ‘익룡 극혐’이 내포한 위험성도 바로 이 지점이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게재되었습니다.

글. 인디피그(ghin2800@gmail.com)

편집. 오마이뉴스 박정훈 / 인디피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