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BT(엘지비티) 인권의식으로 정치인을 검증하게 될 날이 올까? 청문회에서 “총리 후보자는 00년 0월 0일 지인들과의 사석에서 호모포비아적 발언을 한 사실이 있습니까?”라든지 설날에 가족끼리 앉은 자리에서 “000는 인권감수성이 떨어져서 안돼”와 같은 말이 오가는 상황 말이다. 지금의 현실과 비교해보면 판타지다.

 

유독 정치권에서는 엘지비티 인권의식을 가진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퀴어 퍼레이드가 매해 급속도로 커지고 있는 반면, 정치권에서는 필리버스터 정국 속에서도 차별금지법을 반대하기 위해 여야의 의원이 손을 잡는다. 정치권에서 퇴행과 퇴행을 거듭하는 사이, 새로운 단체가 하나 결성되었다. 성소수자 당사자들과 지지자들의 유권자 모임 ‘레인보우보트(Rainbow Vote)’이다. 레인보우보트의 제안자 정욜 활동가를 만나 보았다.

 

소개 부탁드려요. 

저는 정욜이구요. 저는 지금은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에서 어려움을 겪는 청소년을 상담하고 지원하는 기관의 대표를 맡고 있고요. 인권재단 사람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레인보우보트’ 제안자이기도 합니다. 20대 총선 때 성소수자 의제가 특히 이슈화되면서 예전과 다른 선거운동을 뭘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이번에 레인보우보트 제안자가 되었어요. 짧게 하자면 인권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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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마치고 포즈를 취하고 있는 정욜 활동가

 

레인보우보트는 어떻게 결성되게 되었나요? 

2월초에 처음 제안했고 공개적으로 활동한 것은 3월 8일부터니까 2주? 3주 정도 된 것 같아요. 18, 19대 총선을 거치면서 색다른 선거대응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이전엔 국회의원 후보에게 질의서를 보내고, 답변 받고 했었는데 조금 우리(활동가) 중심이란 느낌이 있었거든요.

 

그러던 와중에 결정적으로는 박영선 의원 발언이 있었죠. 2월 29일 박영선의원의 발언이 공분을 사지 않았습니까?(관련 기사: 성소수자 혐오와 더불어민주당?) 그때 당시 필리버스터가 한창이라 국회에선 민주주의, 헌법 가치, 기본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죠. 그런데 다른 곳에선 박영선 의원은 “차별금지법, 동성혼, 관련된 법 추진하지 않을 거다”라고 했죠. ‘이런 거 누가 만드냐’고 말하면서요.

 

이게 성소수자들이 놓여 있는 정치적 환경을 여실히 보여줬단 생각을 해요. 필리버스터를 하면서 인권, 권리, 민주주의 등 정의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반면에 다른 한쪽에서는 성소수자에게 테러를 가하는 방식이 정치 안에서 함께 보여지고 있었단 거죠.

 

평상시 성소수자에 대한 관점이 어떻든지 간에 표로 움직이는 국회의원들에게 있어 성소수자는 한 표를 행사하는 사람이 아니었다고 생각해요. 색다른 선거 대응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도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는 사람들인데 그동안에 굉장히 비가시화되어 있었죠. 그렇기 때문에 정치권 안에서 소위 그런 ‘막말’을 해도 대꾸하지 않는 사람들로 보고 있는 것으로 아닌가 했습니다. 조금 더 우리를 가시화하는 쪽으로 선거 대응을 해보고자 했던 거죠.

 

사실 18, 19대 총선 때도 선거 대응은 해왔어요. 19대 국회 때 국회에 갈 일도 많았고요. 그런데 19대 국회 때 생긴 특징이 동성애 혐오 방조예요. 탈동성애와 관련된, 동성혼 결사저지 행사가 국회에서 버젓이 열렸어요. 이게 18대에는 그다지 보이지 않았던 기조거든요. 인권침해적인 행사들이 국회 안에서 버젓이 열리고 엘지비티 인권을 침해하는 단체에게 공간대관을 해주는 게 9번이나 있었죠. 이런 걸 바꿔보고자 하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인권운동을 하면서 느낀 게, 법이 세상의 모든 것을 바꾸진 않지만 좋은 법이 만들어져야 차별에 있어서도 예방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의식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해요.

 

레인보우보트는 20대 총선에 맞춰 성소수자 인권을 위한 유권자 운동을 한다. 성소수자 인권운동 역사에선 최초다.

유권자 운동: 시민 선거운동의 한 형태. 공식적인 선거 운동이 특정 후보에게 투표하라는 당선 운동을 기반으로 한다면 많은 유권자 운동 단체들은 낙천, 낙선 운동을 내건다. 이외에도 투표참여 독려, 사전투표제 홍보, 후보자들에 대한 정보 공유 캠페인을 한다.

 

사회적으로 봤을 때 퀴어문화축제도 매년 커지고 있고, 엘지비티에 대한 인권의식도 달라져 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왜 유독 18대 국회보다 19대 국회 때 동성애 혐오가 더 심해졌다고 생각하시나요?

작년 퀴어문화축제도 3만 명이 넘었고, 당사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함께 어울리는 공간의 축제로서도 비중이 커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특히 세대적으로 젊은 층 안에서 동성애 인권 수용도가 나아지고 있다는 것이 통계적으로 나오고 있어요. 굳이 숫자를 가져오지 않더라도 예전보다 확연히 나아지고 있다고 느낍니다.

 

축제가 커져감과 동시에 축제 주변에서 방해하는 사람들과 혐오를 표현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는 게 문제예요. 차별방지법 이야기할 때 굉장히 반대가 심했어요. 서울시인권헌장 이야기할 때도, 성북구에서 서울시 주민참여예산사업으로 선정된 청소년 성소수자 관련 사업이 시행되려 할 때에도(결국 무산되게 되었지만) 굉장히 반대가 심했고. 서울시에서 학생인권조례가 만들어질 때 굉장히 반대가 심했고.

 

성소수자들의 존재가 가시화되고 집단적으로 힘을 발휘하는 공간인 문화행사 자리와, 제도 내에서 차별방지법은 차이가 있어 보입니다. 저변은 넓어지고 있고 여러 영역에서 나아지고 있지만 그와 반대로 그걸 더디게 만들거나 망쳐놓기 위한 노력도 커져가고 있다는 게 질문에 대한 생각이에요. 동성애 반대쪽에서도 국회는 입법기관이기 때문에 여기서는 밀릴 수가 없다고 생각하는 거죠. 우리도 마찬가지로 우리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정치인 한명이 굉장히 중요한 것이고요.

 

기업에서는 엘지비티 프렌들리가 각광을 받기도 하잖아요? 나이키, 아디다스라든지 러쉬나 아메리칸어패럴 같은 곳이요. 정치권에서는 이런 게 잘 보이지 않아요. 이 차이가 어디서 온다고 생각하시나요? 

한국기업이 아니잖아요(웃음). 이런 기업들은 굉장히 소비중심적이고 이익이 되는 소비자를 중심으로 마케팅하는 거죠. 근데 우리 사회는 후져가지고 그런 흐름을 잘 모르는 것 같애(웃음). 해외에선 동성결혼이 사회에 좋은 영향을 미치고 기업들도 이윤을 위해서 동성결혼을 밀고 있는데도 국내는 많이 다른 것 같아요. 엘지비티는 굉장히 집단적으로 움직이려는 흐름이 있고요. 충성도가 엄청 높아요. 그런 걸 우리나라 기업이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정치권은 파이가 작아서 그런 것 같기도 해요. 본격적인 이야기로 들어가서, 레인보우보트는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요?

일단, 레인보우보트는 성소수자 유권자 운동이 아니에요. 레인보우 유권자 운동입니다. 성소수자 당사자뿐만이 아니라 지지자도 힘을 보여줄 수 있다, 혐오하는 사람들에게 투표하지 않겠다라는 서로의 약속을 확인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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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보우보트는 공식 사이트에서 성소수자 지지 유권자 선언을 받고 있다. 유권자 선언을 하려면 자신의 동네를 기입하게 되어있어, 통계로 어느 동네에 몇 명의 성소수자 지지자가 사는지 알 수 있다. 현재 4천 3백명을 넘긴 상태고 만명을 목표로 하고 있다. 사진은 레인보우보트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유권자선언 현황 ⓒ RainbowVote

 

활동을 하면서 어떤 어려움이 있나요? 

사실 많은 반대를 받았어요. 지금 우리가 유권자 지지 선언 만명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설사 만명이 모인다고 하더라도 정치판에서 얼마나 영향을 받을만한 숫자냐는 게 중요해요. 정말 만명이 모여도 우리끼리의 잔치라 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이제 우리는 시작하는 거니까요. 어떤 정치인이 무슨 혐오 발언을 했고, 얼마나 반 성소수자 인권적인 행동을 했는지 잘 정리해서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그 피드백을 받는 걸 지금이라도 시작한 게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오늘 우리는 유권자선언 4천명을 넘겼습니다(3월 30일 20시 기준 4423명을 넘겼다). 전체에서 차지하는 건 0.01%가 될까요? 이 숫자보다 중요한 건 이 유권자 선언으로 주변에서 성소수자가 가시화될 수 있다는 거예요. 우리는 살면서 지역 안에서 엘지비티가 어느 정도 사는지 모릅니다. 어쩌면 운동하다가, 지하철에서 기다리다가 만났을 수도 있는 우리 동네 누군가가 유권자 선언을 했구나하며 재미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미국 2012년 갤럽조사에서 3.4%가 성소수자라고 설문조사에서 나왔어요. 3.4%면 우리나라 인구수로 쳤을 때 170만이에요. 이게 미국에서 그냥 나온 숫자는 아닐 거예요. 정말 오랜 시간동안 선거활동을 하고 대응을 하고 정치세력화를 준비하고 돈을 모으고. 그래서 성소수자인권이 발전해나가고 있고 그 목소리가 정치권 내에서 상식이 된 거겠죠. 미국에서 성소수자 인권은 진보, 보수를 가르는 이슈가 아니에요. 그곳에서 인권은 상식과 비상식의 이슈입니다.

 

만명이 유권자 선언을 하더라도 누군가는 비웃지 않을까요? 우리는 시작의 위치에 있고 선거를 어떻게 바라보고 선거는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배우고 깨달아가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4천명이 만명이 됐든 출발한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마포에서 보트피플과 같은 성소수자 유권자 운동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어요. 레인보우보트에서 하는 유권자 현황표를 봐도 마포가 가장 높아요. 마포에 아무래도 엘지비티 관련한 단체들도 많아서 그럴 것 같단 생각이 듭니다. 이번 총선에는 마포 쪽이든 다른 지역구에서든 운동을 하지 않고 전국적으로 진행하는 이유가 있나요?

보트피플은 비혼여성, 일인가구, 성소수자들이 마포구를 기반으로 해서 일시적인 프로젝트로 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어요. 파티도 하고 성소수자 뿐만 아니라 지역의 소외를 이야기하는 활동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 활동의 경험 덕에 레인보우보트가 만들어질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말씀하신대로 지금 레인보우보트는 실질적으로 주민들이 앞장서서 하는 유권자 운동은 아니죠. 유권자를 보여주는 선언의 캠페인이니까요. 지역 유권자들이 전체로 모여 있지만 지역 각각으로도 결집할 수 있고, 그 경험이 피드백 되어서 쌓이고 다른 지역에 도움을 주는 형태를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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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보우보트 홈페이지에서는 지역별로 유권자선언을 한 인원을 보여주고 있다. 마포구는 현재 243명 레인보우 유권자선언을 한 상태다.

ⓒRainbow Vote

 

지역기반 운동의 힘이 있어서 마포구가 지지자가 많이 나오고 있는 듯해요. 근데 다른 지역에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지역에서 엘지비티, 엘지비티 지지자라는 걸 드러내기 쉽지 않으니까요. 그래도 이번 기회에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을 시도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지금 하고 있는 유권자 선언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 생각하거든요. 저는 강서구에 사는데 강서구에 사는 성소수자를 몰라요. 근데 유권자 선언 해놓은 걸 보니 칠십몇명이 나왔어요. 제 주변 어딘가에는 이들이 있을 거 아녜요? 다른 동네도 아니고 ‘우리 동네’에서 차별금지법 같은 것을 요구할 수 있단 거고요. 전국에서 성소수자 10명이 나서서 질의를 보내는 것보다 지역에서 두세명이 지역 후보자에게 보내는 것이 훨씬 강하고, 그게 앞으로 나아가야 할 지점이라고 생각해요.

 

지역구에서 75%를 뽑는 현재 국회의원 선출방식에서는 제도적으로 성소수자 이슈가 이슈화되기 어려워 보여요. 삼척에는 원전이슈, 이주노동자가 많은 지역에는 이주노동자 인권문제, 이런 식이 가능한데 성소수자 이슈는 가시화된 지역이 없어서 더 어렵지 않나요?

맞아요. 지역과 성소수자가 만날 수 있는 인권이슈가 뭐가 있을까에 대해 고민해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참 부족함을 느껴요. 그리고 이번 유권자운동이 그런 부족함을 느낄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내고 있지 않나 합니다. (삼척 탈핵 이슈와 같이) 지역과 너무나 유기적으로 엮인 이슈들이 있는데, 우리는 거주 외에는 큰 이슈가 없거든요. 하지만 분명히 있을 거고 지역 안에서 평등하고 동등하게 살아가는 방식이 있을 거예요. 지금까지 문제제기가 없어서 상상을 못했던 건가, 이런 생각도 해봐요. 지역과 엘지비티가 만나는 인권 의제가 무엇일지 고민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사람들 평가나 주변 사람들 반응은 어떤가요?

평가라기보단 저에게 숙제가 하나 던져졌어요. 엊그제에는 성소수자 많이 모이는 바(bar) 주변에 캠페인을 나갔어요. 상담하고 레인보우 유권자선언을 할 수 있도록이요. 그런데 지지하는 정당에 ‘없다’라고 표하는 사람이 정말 많더라고요. 차별방지법이라던가 트렌스젠더 성별정정과 관련된 문제들은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하는데도, 선거는 굉장히 관심이 없어요. 그 괴리가 상당히 컸어요. 그래서 많이 놀랐습니다.

 

이게 저에게 던져진 질문이에요. 여전히 바뀌어야 한다는 욕구는 사람들에게 있는데,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고 생각해요. 단기적 선거프로젝트가 아니라 레인보우보트가 지속가능한 단체로 만들고 싶어요. 지속적인 데이터베이스를 쌓아서 문제제기하고, 입법적인 활동들이 국회 안에서 이루어질 수 있도록이요. 단기간에 끝내려는 것이 아닙니다. 이번 총선이 끝나고도 꾸준하게 지지자들과 유권자들 만나고 싶어요. 우리나라, 선거 많잖아요? 선거가 시작되면 ‘레인보우보트 활동 시작하나?’ 이렇게 사람들이 생각해주는 걸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려고 노력해야겠죠.

 

성소수자와 관련 정치권 이슈를 최대한 잘 전달하는 것, 자신들의 한 표가 허투루 쓰이는 게 아니라 혐오에는 절대 투표하지 않겠다고 지지자들과 함께 약속하는 것, 그리고 정말 나쁜 정치인 지역구에 가서 뭐라도 설치고 다니는 것.

 

레인보우보트가 하고 있는 활동들이다. 바라는 것이 있냐는 물음에 정욜 활동가는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마음이 있다면, 이제는 마음 속으로 지지만이 아니라 작은 거라도 표현했으면 좋겠다”며 “이제는 마음만으론 안된다”고 웃으며 말했다. 정말 이제는 마음만으로 안될 것이다.

 

성소수자 차별이 난무하는 정치권을 향해 레인보우보트는 이제 막 유권자 운동을 시작한다. 아직은 소박해보이지만 21대 총선엔, 22대 총선엔 더 많은 이들이 함께할 것이라 확신한다. 그렇다면 언젠간 이렇게 질문할 날이 오지 않을까? “총리 후보자는 00년 0월 0일, 지인들과의 사석에서 호모포비아적 발언을 한 사실이 있습니까?” 그때는 이 질문의 무게가 지금과는 다를 것이다.

 

글. 농구선수(lovedarktem@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