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진 상영 시간표가 없는 영화관이 있다. 이태원 우사단로의 ‘극장판’이다. “영화 소개 읽어보시고 세 작품 중에 보고 싶은 영화를 고르면 돼요.” 매표소 자리를 지키는 권다솜 대표는 영화 스틸컷이 띄워져 있는 아이패드 화면을 가리킨다. 다음에 상영할 영화를 내가 고를 수 있다니.  

 

상영관에는 혼자 오신 손님이 이미 영화를 관람 중이라고 한다. 로비는 한적하다. 대기 인원이 꽤 있었던 주말과 다른 풍경이다. 그러나 독립 잡지와 영화 서적이 있어 기다림이 지루하지 않다. 판매 중인 영화 일러스트 엽서도 눈길을 끈다. 작지만 규모 있게 갖추어놓은 공간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상영관에 입장한다. 길어야 30분 정도. 이렇게 정해진 시간표 없이 운영할 수 있는 건 상영작이 모두 30분 이하의 단편 영화이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극장판이 데이트 코스로 소개되면서 주말에 60~70명 정도로 관객이 늘었다. 손님이 몰리는 날이면 자연스레 몇 시간 뒤의 상영시간표까지 정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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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우사단로 극장판 가는 길

 

독립 단편 영화가 ‘판’에 오를 수 있기를 

 

단편 영화만을 상영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영화과였던 권다솜 대표는 단편 영화를 제작했지만 상영할 곳이 많이 않아 답답함을 느꼈다고 말한다. “대부분 단편영화는 영화제밖에 상영 기회가 없어요. 졸업 영화제가 있긴 하죠. 하지만 전혀 모르는 관객분들에게 보여 드리는 개념은 영화제밖에 없고, 단편영화가 선정되는 영화제는 극소수에요. 단편 영화를 만들어도 선보일 수 있는 자리가 얼마 없어요. 영화제에서 선정돼도 많아야 서너 번 정도 상영되고 끝이 나니까.”

 

‘단편 영화를 마음껏 상영할 공간이 하나쯤 있었으면’하는 생각과 인천 창업 지원 프로그램이 만나 생긴 것이 극장판이다. 2014년 인천에서 처음 개관을 했고 작년 1월, 이태원으로 옮겨 왔다. 

 

극장판은 자신을 내비칠 공간과 기회가 부족한 단편영화를 위한 상영관이다. 이곳의 최우선적인 목표는 독립 단편영화와 관객이 만나는 ‘판’을 만드는 일이다. 주로 3개월에 한 번씩 홈페이지를 통해 작품 공모를 받아 선정된 영화를 상영한다. 영화의 완성도가 부족할지라도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명확하면 상영작으로 고른다고 한다. 선정된 영화는 한 달 동안 극장판에 걸린다.

 

다른 사업들도 진행한다. 장편 영화를 보고 싶어 하는 손님도 있어 ‘그들 각자의 영화’ 모임을 평일 오후에 연다. 모임 구성원들이 고른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식이다. 매 월말에 홈페이지를 통해 다음 달 참가 신청을 받는다. 평일에는 손님이 원하는 장편 영화를 볼 수 있도록 대관 사업도 진행한다. 평일에만 제한적으로 대관하는 것은 단편영화를 보러 오는 손님에 방해되지 않기 위해서다. “단편영화 상영이 제일 우선인데 대관이 있어 단편 영화를 보러 온 분들이 돌아가시는 걸 보면 조금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영화 표를 사려고 보니, 기대보다 푯값이 싸다. 그래서 두세 편을 연달아 보는 손님도 많다. “돈이 되나요?”라는 장난기 어린 질문에 표를 건네던 권다솜 대표는 기다렸다는 듯 웃는다. “애초에 큰 수익을 바라거나 수익이 많이 날 거라는 기대 자체가 없이 시작했기 때문에 유지할 수 있는 비용만 나와도 감사한 상황이에요.”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공통된 바람이 있다. “몇몇 분들이 ‘안 없어졌으면 좋겠다’, ‘꼭 계속 있었으면 좋겠다’, ‘많은 사람이 알았으면 좋겠다’라고 말씀해주셨죠. 이렇게 피드백을 해 주시는 분들이 제일 기억에 남아요.” 극장판을 찾아온 손님들은 이 공간이 사라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인터넷 홍보를 자처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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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관 내부 ⓒ 극장판

 

마침 영화가 끝났는지 손님이 상영관 문을 열고 나온다. 홀로 영화를 보러 왔다던 손님이다. 인사를 하고 나가시는 듯하더니 발걸음을 돌린다. “달마다 이렇게 세 편씩 영화가 바뀌는 건가요?” 어쩐지 다음 달에 올 것을 염두에 둔 질문 같다. 나는 표를 사 두었던 영화 ‘교무실’을 보러 상영관에 들어간다. 다음 달에도, 그다음 달에도 1일부터 말일까지 상영되는 영화를 고를 수 있길 바라며.  

 

대표이미지. ⓒ 극장판

글. 가오나시(ay713@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