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잠해지는 듯했던 제주 4·3사건을 둘러싼 정치적 논란이 다시 일고 있다. 보수 단체들의 줄기찬 요구에 따라, 2015년 12월 23일 행정자치부에서 제주 4·3사건의 희생자 53명에 대한 실태조사를 제주도에 요청한 것이다. 이는 제주 4·3사건의 희생자 재심사를 위한 사전조사에 해당하는 것으로, 좌익 활동에 가담한 것으로 밝혀지면 그 사람은 희생자로 인정받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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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월 21일 보수단체의 4·3 희생자 재심사 요구 기자회견 ⓒ 국제뉴스
 
 
희생자와 폭도 사이에서 고통받는 사람들
 
 
제주 4·3사건의 희생자들은 지금과 같은 ‘희생자’의 모습으로 인정받기까지 지난한 과정을 거쳐 왔다. 독재정부의 반공 논리에 아래에선 ‘폭동’으로, 민주화 추세 속에선 ‘항쟁’으로. 90년대 이후엔, 이데올로기에 묻혀있던 일반 제주도민들의 무고한 희생이 ‘인권’의 차원에서 주목받았다. 이에 따라 1993년 제주도의회에 ‘4·3 특별위원회’가 설치되었고, 2000년 1월 여야의원 공동 발의로 ‘제주 4·3사건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됐다. 특별법에 따라 구성된 조사위원회의 의견에 따라 노무현 대통령이 대한민국을 대표하여 ‘국가권력에 의해 대규모 희생’이 이뤄졌음을 인정하고 제주도민에게 공식 사과했다.
 
 
하지만 행정자치부의 제주 4·3사건 희생자 실태조사는 제주 4·3사건에 폭동의 혐의를 씌움으로써 인식의 변화를 거꾸로 돌리려는 의도로 보인다. 끈질긴 노력 끝에 제주 4·3은 국가폭력에 의한 사건으로 기억되는 듯했으나 기억의 투쟁은 여전히 계속되는 것이다. 일단 제주도는 2016년 1월 6일 관련 실무위원회를 열어 요청을 심의 보류하기로 결정했으나, 제주 4·3 희생자 유족들과 시민단체들은 제주 4·3사건에 대한 박근혜 정부의 인식이 드러난 조치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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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예비후보 시절 4·3 평화공원을 찾아 분향했던 박근혜 대통령 ⓒ 제이누리
 
 
아픔의 해소 아닌 아픔에 대한 무감각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제주도민의 아픔을 모두 해소”하기 위해 4월 3일을 국가추념일로 지정한다는 공약을 발표했고, 2014년 3월 ‘4·3 희생자 추념일’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하는 대통령령 개정안을 의결했다. 하지만 4·3 추념식이 국가행사로 치러진 첫해와 작년에 박근혜 대통령은 추념식에 참석하지 않았고, 올해도 참석하지 않을 예정이다. 한편, 2014년 4월 3일 정부를 대표하여 추념식에 참석했던 정홍원 당시 국무총리는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제주도 4·3사건의 희생자 관련 문제 제기에 대해 “검증을 거치도록 하겠다.”고 발언하여 논란이 일기도 했다. 국가기념일 지정은 선거용 공약이었을 뿐 사실 박근혜 정부의 4·3 사건에 대한 인식은 보수단체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이다.
 
 
추념식에서 불리는 합창곡을 둘러싼 소음도 끊이지 않는다. 2014년에는 국가폭력에 의해 희생당한 분들을 추모하기 위한 행사에서 “참 아름다운 많은 꿈이 있는 이 땅에 태어나서 행복한 내가 아니냐”는 가사의 ‘아름다운 나라’를 합창곡으로 선정한 게 부적절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2015년 추념식에서도 제주 4·3 추모현장에서 널리 불려왔던 ‘잠들지 않는 남도’와 ‘애기 동백꽃의 노래’가 합창곡에서 갑자기 제외되고 한국전쟁의 전사자를 기리는 ‘비목’으로 바뀌어 불리면서 정부가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심을 불러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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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패봉안소에서 기도하는 제주 4·3 희생자의 유족 ⓒ 뉴시스

 

 
규정당한 희생과 허락받은 추모
 
 
올해 제주도가 행정자치부에 제출한 추념식 기본계획에는 추모 노래가 포함되어 있었으나 행정자치부가 승인한 기본계획에는 빠져버렸다. 결국, 제주도는 본 행사에서는 노래를 부르지 않고, 식전행사로 순서를 옮기기로 했다. 매년 논란이 불거지다 보니 희생자를 기리려는 것이 아니라 추모곡 하나하나까지 정부가 간섭하기 위해 국가추념일로 지정한 것이냐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국가권력에 의한 대규모 희생’으로서 제주 4·3사건의 기억이 국가에 의해 도전받는 상황에서 그 희생을 추모하기 위한 방식마저 국가가 통제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제주 4·3사건은 그 자체로 국가폭력이 초래한 비극적인 사건이었을 뿐만 아니라 비극의 기억조차 오랜 기간 국가에 의해 억압당해온 역사가 있다. 유족과 시민단체가 끊임없이 요구한 후에야 국가는 가해자로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고, 희생자는 피해자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바로 그 가해자가 국가폭력과 대규모 희생의 원인이 되었던 권력을 이용하여 피해자의 자격을 다시 심사하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검증과 허락의 절차 속에서 피해자의 고통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사진. ⓒ 홍성담
글. 진(bibigcoma@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