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서울대학교 학생이 쓴 게 아닙니다.

 

“누군가 조국의 미래를 묻거든, 고개를 들어 관악을 보게 하라.” 공공연히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으로 꼽히는 서울대학교의 슬로건이다. 명실상부 ‘최고 대학’의 위상에 걸맞는 슬로건이다. 그러나 정작 서울대학교 학생들은 때때로 당당하게 ‘고개를 들지’ 못 한다. 

 

 

서울대, 너보다 잘난 대학 세상에 많거든?

 

지난 4일, 세계일보에 “서울대 의대가 놓친 SAT 만점 용인외고생, 하버드· 예일 등 美명문 11개 대 동시합격”(링크)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우리나라 고등학생이 미국 명문 11개 대학에 합격했다는 사실은 언론에 실어 축하할 만이다. 그러나 서울대학교 의대가 그 학생을 ‘놓친’ 것이 아니라 ‘탈락시킨’ 것이다. 두 대학은 전공과 모집과정 자체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서로 비교할 수 없다.

 

용인외고는 교과이수과정을 자연(이과), 인문(문과), 국제(해외 유학)로 두고 있다. 박 양은 국제 과정을 이수하며 해외 유학을 준비했으므로, 국내 대학인 서울대 의대가 원하는 인재상에 걸맞을 리가 없다. 또한, 박 양이 어느 전공 모집단위로 합격했는지는 보도되지 않았다. 미국 명문대에 붙은 학생이 정말 인재일 수 있다. 그러나 미국 명문대에 합격했다는 이유만으로 서울대 의대가 인재를 ‘놓쳤다’고는 할 수 없다.

 

서울대 학생이면서 이것도 못 해?

 

대중은 서울대보다 종합 평가 순위가 높은 해외 명문 대학을 치켜세우면서, 동시에 서울대학교 학생들을 모든 분야의 천재로 여긴다. 서울대 경제학과 조 군(22)은 1학년을 마치고 공군에 입대했다. 그가 실수할 때 마다 선임들에게 들었던 말, “서울대 다니면서 이것도 못해?” “넌 역시 공부만 잘했지, 으이구~.” 

 

서울대학교는 모든 영역을 슈퍼 히어로 급으로 가르치는 곳이 아니다. 서울대학교 경영학과 수석이라고 해도 테일러 전개를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 주변의 서울대생에게 핀잔을 주고 싶거든, “넌 이것도 몰라?”라고 하자. “넌 서울대생이면서 이것도 몰라?”가 아니라.

 

*테일러 전개는 이과라면 알 수도 있다.

 

서울대 갔으면 양보 좀 해라.

 

서울대학교는 작년 2월, 중앙도서관 뒤편에 관정 도서관을 새로이 준공했다. 중앙도서관은 국립대라는 성격상 일반인에게 그 공간을 공개하고 있지만, 학생들의 면학 공간 조성을 위해 설립한 관정 도서관까지 개방하라는 요구가 종종 들린다. 단지 국립대라는 이유로, 서울대니까 욕심부리지 말라는 식. 

 

서울대입구역은 진짜 서울대 입구로부터 1.7km 떨어져 있고, 높은 오르막길이라 통학 시에 셔틀버스를 타야 한다. 역 앞에서 셔틀 줄을 서기 시작해서 강의실에 도착하기까지 보통 20분이 걸린다. 줄이 길면 무려 40분이 걸리기도 한다.  2013년에 경전철을 서울대 캠퍼스 안까지 확장하는 계획이 추진되었으나 환경 파괴 및 서울시와의 사업비 분담 협상 실패로 무산되었다. 그러나 일각에서 ‘서울대까지 갔는데 뭘 더 바라냐, 이기적이다’라는 여론이 일었다. 명문 대학교에 다니면 학교를 불편하게 다녀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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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저멀리역. 지난 3월부터 신림선 연장 계획이 재추진되고 있다.

 

서울대, 대학 잘 갔다고 유세 떠냐?

 

얼마 전, 대학 이름이 박힌 과 잠바가 학벌주의를 조장한다는 말이 터져나왔다. 그냥 입을 옷이 없고 학년이 더 올라가기 전에 좀 더 입어야겠다는 생각에, 주섬주섬 아무렇게나 과잠을 걸쳐 입고 나온 서울대 학생은, ‘학벌주의 의식 쩌는 놈’이 되었다. 명문대가 아닌 대학의 과잠은 소속감과 연대감을 강화하고, 서울대학교 과잠은 사회에 위화감을 조성하는가? 그 서울대학생들도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학벌주의가 만연한 사회와 싸우며 입시를 치른 고등학생이었다.

 

서울대는 가십거리 노다지

 

서울대학교 대나무 숲을 구독하는 사람은 무려 8만 명이 넘는다. 서울대학교 대나무 숲에 읽기 좋은 글이 많이 제보되어서일지도 모르지만, 때로는 단지 서울대라는 이유만으로도 주목을 받는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서울대학교, 전국민에게 대신 전해드립니다’가 되고 있다. 

 

언론사는 서울대학교 대나무 숲의 글을 카드뉴스로 만들기도 하고, 진위 여부도 확인도 하지 않은 채 기사(링크)를 내버리곤 한다. 서울대학교 학생 커뮤니티인 스누라이프 또한 서울대학교 대나무숲과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많은 대학교에 ‘대신 전해드립니다’, ‘대나무 숲’ 페이스북 페이지가 있고 그들끼리 운영해나가고 있지만, 서울대 대숲은 단지 서울대라서 국민 대숲이 되어버렸다.

 

서울대 학생들은 택시 기사가 학교 어디 다니느냐고 물었을 때, ‘그냥 서울에 있는 학교요’ 라고 대답한다고도 한다. 서울대에 다닌다고 밝혔을 때 되돌아오는 대답들이 불편한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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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재학생들의 경험담을 바탕으로 구성된 자료입니다.

 

“서울대라고 대답하면, 한 번 만에 안 믿어요. 아니면 십중팔구는 좋은 대학에 다닌다는 이유로 비아냥거리죠.” 서울대학교 학생들은 ‘서울대 부담감’에 시달린다. 서울대 못 가도 뭐라 하고, 가도 뭐라 하고. 

 

서울대학생이 서울대라고 학력과 상관없는 일에 유세를 떤다면, 비난을 받을 만하다. (학력과 관계있는 일이라면 재수없을 수는 있다.) 하지만 앞뒤 없이 모든 일에 서울대생에게 서울대를 들먹이지 말자. 서울대학교 학생들도 대학생이다. 

 

글. 이설(yaliyalaj@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