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표는 있지만, 마침표는 없다

 

2주기가 다가온다. 그 앞에 ‘어느새’를 붙여보았다가, ‘이제’로 바꿨고, ‘다시’라고 써보았다. 결국, 모두 지웠다. ‘어느새’라는 말은 사건 당시와 오늘 사이에 빈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 같아서, ‘다시’는 다시 그 빈 공간을 확인하는 것 같아서 쉽사리 쓸 수 없었다. 이 참사 앞에 어떤 수사를 붙인다는 것은 2년이 지난 오늘에서 더욱 어려운 일이다. 지난 2년간 포개져 왔던 수많은 이야기, ‘이제 그만해라’, ‘다시, 또 세월호냐’는 말들을 경유 해야 함 때문이리라.

  

중첩된 이야기들과 집적된 2년의 세월이 문제를 과거에 박제시키려 하지만, 그때의 참사에서 이제의 국가폭력이 된 ‘세월호’가 그저 ‘자연스레 잊히는 중’이라고 고함20은 믿지 않는다. 그래서 고함20은 무언가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 덧씌워진 이야기들, 그 곡해와 호도의 반대편 목소리를 말이다. 고함20은 뭍 위에 남겨진 자로, 다시 ‘뭍 위에서’ 세월호를 말할 것이다.

 

슬픔은 그저 ‘소비’된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고함은 목소리 낼 것이다. ‘타인의 고통’은 이따금 ‘나의 안전’을 확인해 주기도 한다. 허나, 우리는 그 ‘타인의 고통’에 대한 ‘나의 안전’에 부끄러워하며 여전히 슬퍼하는 중이다. 내 ‘안전’과 ‘면피’를 위한 타자화의 산물이라는 말에 반기를 든다. 무엇도 휘발되지 않을 것이다. 슬픔은 그저 ‘슬픔’이기에 무용하다는, 피해자는 피해자다워야 한다는, 국가의 일은 정부만이 해결한다는 그릇된 근본주의 반대편에서 목소리 내고자 한다.

 

세월호 이후의 고함20 기자들의 이야기를 전할 것이다. 뭍 위에서 세월호를 말하고 활동하는 이들의 삶을 듣고 전하는 것도 역시 귀 기울일 것이다. 또 다른 국가 폭력의 대상들과 세월호를 엮어내는 작업도 놓치지 않겠다. ‘세월호’라는 일련의 사태가 만들어낸 새로운 공간적 의미에 대한 것 역시 지금 마주하고 풀어내야 하리라. 2주기를 맞은 이 사태는 시간의 흐름 속에 참사에서 국가 폭력으로 변하였다는 이야기 또한 참으로 중요하다.

 

계속되는 생애와 지나온 기억이 두려워 우리는 시간을 하루, 이틀, 한 주와 한 해로 분절시켜 놓지만, 분절된 지점들을 이어놓을 때 그 결과물은 다시 삶이라는 직선임을 우린 알고 있다. 고함20의 기획은 그 지점들을 잇는 작업이 되기를 원한다. 여전히 계속되는 우리 삶에서 세월호의 무엇이 과거가 되었으며, 무엇이 해결되었고, 무엇이 참사를 국가 폭력으로 만들었는가. 고함20이 묻고 싶은 것은 그런 것이고, 말하게 될 것 역시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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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압생트(9fifty@naver.com)

기획. 가오나시, 김연희, 샤미즈, 상습범, 압생트, 엑스, 이주형, 인디피그, 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