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표는 있지만, 마침표는 없다

 

고3 자습시간. 주변의 친구들이 갑작스럽게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이내 모두 책을 내려놓고 스마트폰 화면만을 응시했다. 수학여행을 가던 배가 침몰했다고 했다. 처음에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어른들이 알아서 모두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들려오는 소식들은 끔찍했다. 대부분의 사람이 빠져나오지 못했다. 입시에 매진해야 할 때였지만 더 이상 펜을 손에 쥘 수가 없었다. 나는 실시간으로 나오는 화면을 응시한 채 울음을 터뜨렸고 그게 ‘세월호’가 나에게 남긴 첫 번째 인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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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

 

며칠간 계속되는 구조 작업과 안타까운 결과들 속에서 충격은 커져갔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배를 타고 중국으로 수학여행을 가던 과거의 내가 떠올랐다. 세월호같이 크고 낡은 배였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항해 길에 배가 무척이나 흔들렸다. 배의 창밖으로는 어두컴컴한 하늘과, 까만 바다가 보였다. 친구들은 뱃멀미에 토를 하기도 하고, 울먹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는 마치 내가 세월호에 타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너무나도 무서웠다. 그들은 특정한 누군가가 아니라 나였을 수도 있다.

 

얼마 뒤, 학원을 가지 않고 시청 근처 세월호 희생자 합동 분향소에 갔다. 줄을 서 있는 내내 눈물을 참았다. 세월호의 선장과 승무원들, 해경들 그리고 배를 제대로 점검하지 않았던 어른들에게 분노했고 계속해서 내 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허무했다. 긴 줄에 서 있던 많은 사람 ‘모두’가 슬퍼했다. ‘잊지 말자’는 말을 가슴에 담아 두고 있는 듯했다. 슬퍼하고 있는 것이 당연해 보였다. 또한, 아무것도 해결된 것이 없었기에, 앞으로도 당연히 모두가 슬퍼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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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리본이 달린 가방

 

그리고 스무 살이 되었다. 여전히 바뀐 것은 없었다. 나는 노란 리본을 가방에 달고 다녔다. 사회의 부조리함으로 인해 일어난 이 일을 잊고 싶지 않았고, 부조리함을 만들고 용인하는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길거리에 보이던 많은 노란색의 것들은 더 이상 찾기가 힘들었다. 세월호 1주기가 돌아왔고 추모제가 열렸지만 많은 사람이 냉담하게 바라보았다. 친구들에게도 세월호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하지만 친구들은 ‘아직도’ 세월호 얘기를 꺼내는 것이 ‘조금은’ 지겹다고 이야기했다. 사람들은 세월호의 기억을 잊어버린 걸까? 앞으로도 당연히 모두가 슬퍼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내 예상은 빗나갔다.

 

어쩌면 사람들은 세월호를 자연스럽게 잊은 것이 아닌 ‘잊으려고’한 것 같다. 사회의 부조리함과 개인 스스로 ‘어쩔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들에 체념한 것 같다. 생중계되는 방송을 통해 같이 슬픔을 느꼈으면서도, 허둥지둥 하다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구조작업들과 연이어 밝혀지는 문제들에 실망하고 외면한 것 같다.

 

입시 지옥을 벗어나 대학생이 되면 더 정의로운 세상이 반기고 있을 것이라고 착각하던 나처럼 사람들도 실망한 것 같다. 대자보를 붙이고 피켓을 들고 목소리를 높여도 변하지 않던 대학의 문제들을, 그들은 이미 겪었던 것은 아닐까? 나는 고작 대학 생활 1년간 받은 ‘기대에 의한 상처’들을 이미 오랫동안 받아 왔던 것은 아닐까? 변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에 더 상처받고 싶지 않아서 잊으려고 한 것은 아닐까?

 

결국 사람들에게 세월호는 슬픔과 분노의 기억을 넘어 사람에 대한 불신과 회피의 기억이 됐다. 이는 치유될 수 없는 아픔이 됐지만, 사람들은 그 상처를 못 본 척하려고 하고 있다.

 

그렇게 벌써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벌써’라고 표현하기에는 아직 많은 일이 해결되지 않고 있고 많은 상처가 남아 있다. 세월호 참사는 현재의 상처이다. 나는 여전히 세월호 참사에 대해 슬퍼하고 분노하며 먼 미래에도 부조리함을 용인하는 어른이 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기억하려고 노력한다. ‘잊지 않는다‘는 말 이상으로 더 좋은 말을 찾을 수가 없는 것 같다. 잊지 않고 싶고, 잊지 않을 것이다.

 

글. 엑스(kkingkkanga@gmail.com)

기획. 가오나시, 김연희, 샤미즈, 상습범, 압생트, 엑스, 이주형, 인디피그, 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