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표는 있지만, 마침표는 없다

 

“그래서 너는 무슨 진실이 알고 싶다는 거냐?”

 

내 노트북에 붙인 세월호 스티커와 가방에 달린 노란 리본을 보며 친구는 물었다. ‘이성적’인 눈빛으로 친구는 나에게 합리적으로 설명해보라고 요구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냥 웃어넘기고 말았다. 아직도 이 사회에서 노란 리본 하나 달고 다니는 것도 버거운 일 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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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일보

 

내가 세월호를 기억하는 방식

 

2014년 4월 16일, 군대 생활관에서 나오는 속보를 보고 있었다. ‘안산에 연고가 있는 병사는 행정실로 오라’는 전체 방송이 흘러나왔고, 그날 밤 몇 명은 짐을 싸 집으로 내려갔다. 배가 기울어지고 구명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하나둘씩 빠져나오는 영상을 보며 그래도 모든 사람을 구조할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을 했다. 아무리 그래도 사람이 가라앉고 있는 걸 전 국민이 눈 뜨고 보고 있는데 정부에서 그거 하나 못 구하겠냐고. 그리고 그게 엄청난 착각이었다는 걸 깨닫는 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부모들 목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그때 진도 체육관에 대통령이 ‘짜-안’하고 나타났다. 여러분 저를 믿고 따라주십시오. 안타깝고 참담하겠지만, 구조소식을 기다려주십시오. 철저한 조사와 원인 규명으로 책임질 사람은 엄벌토록 하겠습니다. 사람들은 소리를 지르고 욕을 하고, 박수를 쳤다. 휴가를 나와 집에 갔을 때 아버지는 세월호 뉴스를 보며 아이들이 너무 불쌍하다고 눈물을 흘렸다. 반드시 진상 조사를 해서 책임질 사람을 찾아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며칠 뒤 대통령도 눈물을 흘리며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그리고 참사 규명을 위한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가 시작되려고 했다. ‘성역 없는’ 진상규명을 위해서는 수사권과 기소권 모두를 특조위에 부여하는 것이 필요했다. 그때부터 ‘이성적’인 사람들의 손가락질이 시작되었다. 슬프지만 ‘이성’을 되찾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모두 감정적으로 이 문제를 대하고 있지만, 자신들만이 현실적으로 냉철하게 문제를 보고 있다는 듯이 말을 뱉어댔다. 또 다른 일부의 사람들은 세월호 특별법을 제정하라며 단식을 하는 유가족 앞에서는 ‘폭식’으로 조롱했다. 한 국회의원은 유가족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소리쳤고, 자식 팔아서 장사한다고 세월호 귀족들이라고 비난했다. 장관급 인사인 특조위원장이 제발 일을 하게 해달라고 길거리에 나와 읍소하는 일도 벌어졌다. 눈물을 흘리던 아버지도 세월호 가족들이 자식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며 혀를 찼다. 슬픔이 피해자를 향한 분노와 조롱이 되는 건 순식간이었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말해야 하나

 

그렇게 2년이 지났다. 650만 명이 세월호 특별법을 위한 서명을 해도 진상규명을 위한 세월호 청문회는 국회에서 열리지 못했고, 여당 대표는 세월호 특조위를 세금도둑으로 몰아세웠다. 세월호 유가족의 진상조사 요구를 ‘시체장사’로 비유한 사람은 여당의 비례 대표 당선권 번호를 부여받았다. 2번, 3번 야당들은 선거를 앞두고 세월호가 부담스러운지 누구도 입을 열지 않는다. ‘선동’당하지 않은 ‘이성’과 ‘합리’로 무장한 사람들은 계속 “그래서 무엇을 알고 싶은 거냐”고 묻는다.

 

“죽은 애들이 불쌍하긴 하지만 운동권 애들이 가족들 옆구리 찔러서 정치적 문제화 시키는 거잖아. 사람들 나와서 데모하고 하는 거 보면 웃겨. 다 선동당하는 거야.”

 

친구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는 나에게 자신감에 찬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숨겨진 진실을 나에게 알려주겠다는 의지에 가득 찬 목소리로 ‘매일 죽는 교통사고 사망자들 위한 특별법을 만들자 소리는 왜 안 하느냐’고 열을 냈다. 그래서 그때도 바보같이 그냥 웃었다.

 

2년이 흐르는 동안 많은 소리를 내었다. 세월호 참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주장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세월호는 ‘정치’의 문제다. 선거철에 투표하고, 국회에 앉아서 의사봉 몇 번 두드리는 것이 정치의 전부가 아니다. 다시는 세월호 같은 비극이 없도록 구조적 병폐를 막아내고 사회의 신뢰를 다시 처음부터 쌓아가는 일이 정치가 해야 할 일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 ‘정치’인가? 그냥 ‘우는 소리’가 듣기 싫거나 이 일을 조용히 덮고 지나가길 바라서 외면하는 것일 뿐이겠지.

 

그래서 나는 더욱더 내 슬픔과 분노가 ‘정치적’으로 이용당하길 바란다. 세월호를 기억하는 많은 사람이 나를 더 ‘선동’해 주길 바란다. 세월호 비극에 공감하는 친구들이 ‘이성적’으로 사람들과 대화하고, ‘감정적’으로 국가에 분노하길 바란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겠냐’는 말은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모든 슬픔을 덮고 살자는 것이 아니다. 남은 사람들이 견뎌내야 할 모욕과 비웃음에 대한 정당화도 될 수 없다. 산 사람은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 한다. “세월호? 그거 아직도 하는 거야? 끝난 거 아니야?” 화장실에 다녀오던 다른 친구 하나가 우리의 대화를 듣더니 놀랍다는 듯이 말했다. 그 얘기를 듣자 다시 번뜩했다.

 

‘그래 누군가는 계속 보여줘야지. 아직 살아남은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이 더 남았다고.’

 

글. 이주형(manghak@naver.com)

기획. 가오나시, 김연희, 샤미즈, 상습범, 압생트, 엑스, 이주형, 인디피그, 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