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표는 있지만, 마침표는 없다

 

2014년의 4월은 ‘잔인한 4월’이라는 말에 슬플 정도로 딱 들어맞는 시기였다. 그 잔인함은 세월호 참사 자체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유가족에 대한 여론이 변하면서 잔인함은 무게를 더 키워갔다. 일베의 폭식 투쟁과 특별법 반대 집회는 유가족에 대한 왜곡된 시선의 대표적인 예가 되었다. 하지만 잔인함은 유가족만을 향하지 않았다. 유가족을 지지하고 도왔다 해도 일베와 비슷한 나잇대의, 비슷한 처지의 청년이라는 이유로 어떤 사람들은 원인 모를 죄책감을 짊어져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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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베의 폭식투쟁 ⓒ 오마이뉴스

 

일베 외의 청년들이 있었다.

 

그 무렵 미디어 속 청년들은 폭식, 조롱이라는 키워드로 비쳤다. “한 사회의 미래라는 청년들이 왜 이렇게 극단적으로 행동하는 것일까?”“보수와 진보, 여당과 야당, 기성세대와 청년세대 간의 갈등”.

 

일베라고 명시를 했는지 안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청년들의 긍정적인 운동은 자극적인 뉴스에 가려졌고 어느새 폭식 투쟁은 ‘요즘 것들’의 기이한 행동 패턴 쯤으로 치부됐다. 스스로 결백함을 주장하지 않으면 나 역시 곧 일베와 똑같은 ‘요즘 것들’ 이 될 것만 같았다.

 

폭식 투쟁 참여자들의 사진 속 모습은 대부분 내 또래였다. 세월호 특별법 반대 서명을 한 이들은 우습게도 ‘자유 대학생 연합’이라는 이름으로 활개를 쳤다. 우리는 어느새 같은 범주로 묶여 죄의식을 공유해야만 했다. 특례입학, 보상금 등 특별대우나 무임승차에 예민한 세대. 그 예민함의 원인은 언제나 그렇듯 취직과 결혼에 대한 절망감 때문이라고 했다. 취직과 결혼에 대한 절망감이 있는, 거기에 학벌까지 좋지 못한 20대들은 스스로가 연일 TV에 나오는 일베로 보이지는 않을까 걱정했다. 이상한 패배주의가 그 봄 내내 지속됐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날 하루, 아니 몇 시간 음식을 먹고 흩어진 일베 회원들에 대해서는 그렇게 오래도록 얘기하면서, 거기에 일반 청년들의 걱정까지 갖다 붙여가며 ‘거리로 나온 극우세력’이라는 경고까지 했으면서 세월호 유가족을 위해 운동을 한 청년들 얘기는 점점 그 수가 줄고 있었다. 세월호 침몰 딱 한 달 후 2030 청년 집회가 열렸다. “한 달 후 루마니아로 떠납니다. 이대로 떠나 내 꿈을 이루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주최자 중 한 명의 소개 글이었다. ‘가만히 있으라’ 라고 쓰인 종이를 들고 말없이 행진을 하는 청년들도 있었다. 그들은 경찰서로 연행되고 언젠가 불이익이 될 기록이 남을지도 모르는데 두 차례나 침묵 행진을 이어갔다. 단식릴레이 운동도 있었다. 단기간 단식을 하고 생수병에 포스트잇을 붙여 SNS에 올리는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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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월호 집회 ⓒ 세계일보

 

폭식 투쟁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만, 청년들의 긍정적인 행동을 기억하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그때 당시 일베의 이미지는 지금과 별다를 것 없이 지저분했지만, 제대로 된 원인 분석은 없이 “젊은 애들이 왜 이래?”라는 뉘앙스의 보도가 많았다. 그건 일베를 젊은이들의 길티플레저 정도로 소비하는 모양새였다.

 

그래서 어떤 변화가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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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준비위원회 ⓒ 뉴스1

 

지금도 세월호를 기억하고 있는 청년이 많다. 4일 오후 광화문 광장에 모인 대학생들이 “기억과 약속 대학생 선언”이라는 주제로 기자회견을 한 것처럼 기억하려는 행동은 현재에도 유효하다. 한 편으로는 불신이 더욱 공고해졌다. “세월호 생존자는 국가가 구조한 게 아니라 스스로 탈출을 한 것뿐이다”라는 말은 당시 마르고 닳도록 들었던 지적 중 하나였다. 정부와 언론을 신뢰할 수 없고 우리 사회 전반의 안전문제에 대해 불안감을 느낀 것이다. 2014년도에는 이것을 “집단 우울증”이라고 명명했다. 하지만 어떤 약을 먹고 어떤 심리치료를 받는다 해도 세월호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는 마음에 대해 우울증이라고 말해도 되는 걸까? 우울해 하는 게 아니라 조롱하고 통쾌해 하는 일베마저도 집단으로 넣어버릴 수 있는 걸까?

  

겪지 않았으면 좋을 성장통

 

흔히들 이렇게 말했다. 10대는 희생자들과 비슷한 또래이기 때문에 많이 힘들 것이고 기성세대들은 그들 부모 나이이기에 걱정이 많을 것이라고. 20, 30대 청년들에 대해서는 일본의 극우 단체인 재특회를 들먹였다. 손가락은 일베를 향해 있었지만 “거리로 나온 극우세력”, “사토리세대”라는 말은 묘하게 공격대상을 청년 일반으로 확대하고 있었다.

 

어떤 운동을 하고 위로를 해도 일베의 자극적인 퍼포먼스가 앞에 있었다. 그들에게 피자를 돌린 사람이 50대 남성이고 세월호 청문회를 규탄한 주체가 고엽제 전우회라는 사실은 그리 중요치 않았다. 일련의 과정에서 청년들은 소외되는 와중에도 묵묵히 기억하는 법, 무능하고 폭력적인 부모로부터 도망치는 법(불신)을 생각해냈다. 겪지 않아도 될 성장통이었다.

 

대표이미지. ⓒ 연합뉴스

글. 샤미즈(ndhhdm9019@naver.com)

기획. 가오나시, 김연희, 샤미즈, 상습범, 압생트, 엑스, 이주형, 인디피그, 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