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논란이 있었다. 남자아이돌그룹 세븐틴이 출연한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마지막화에서, 제작진은 멤버들로 하여금 가상의 인물인 ‘순댓국을 좋아하는 영희’와 ‘스파게티를 좋아하는 영희’ 가운데 한 명을 선택하게 했다. 멤버의 대다수는 ‘순댓국을 좋아하는 영희’를 택했다. 그중 한 명은 “순댓국을 좋아하는 사람이랑은 스파게티를 먹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스파게티를 좋아하는 사람이랑은 순댓국을 못 먹을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선택의 이유를 부연했다.

 

논란이 시작되었다. 순댓국과 스파게티로 대표되는, 여성을 향한 어떤 스테레오타입을 던져주고 선택을 강요한 제작진 덕분에 트위터에선 설전이 벌어졌다. “세븐틴이 여혐한다!” 혹은 “그거 여혐 아니다!” 따위의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여기서는 아이돌을 둘러싼 판타지와 리얼리티의 경계를 말하고자 한다.

 

아이돌산업이 판매하는 것은 판타지다. 멤버들은 기획사에 의해 체계적으로 트레이닝되고, 각종 분야의 전문가들이 달라붙어 그들에게 최적화된 판타지를 만들어낸다. 그 판타지는 해당 아이돌이 지향하는 콘셉트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어쨌거나 그것이 판타지임은 틀림없다. 그리고 그 판타지가 전시되는 첫 공간은 단연 무대다. 판타지를 투영한 노랫말을 부르며 콘셉트에 적합한 – 멋있거나, 귀엽거나, 섹시한 – 표정을 짓는 아이돌의 이미지를, 대중(팬들)은 소비한다.

 

어느덧,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게 되었다. 시장에는 공급이 넘쳐나고, 아이돌은 이제 무대에서 내려온 순간에도 판타지를 유지해야만 한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무대에서 내려온 순간의 판타지를 ‘리얼리티’라는 이름의 포장지가 감싸게 되었다. 무대에선 완벽한 판타지를 구현하지만, 무대에서 내려오는 순간에는 멤버 개개인이 인간미가 넘치고 때로는 조금 덜렁거리기도 하는 ‘인간적이고 현실적인’ 모습이 절실해진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범람하게 된 것은 그 때문이다.

 

문제는 아이돌은 판타지를 보여주는 직업일 뿐, 그들 역시 현실의 인간이라는 데 있다. 그러니까, 나이가 어리고, 잘생기고, 춤도 잘 추고, 노래도 곧잘 하며, 때로는 작사‧작곡과 프로듀싱이 가능한, 완벽한 판타지처럼 보였던 아이돌도 사실 자신의 영역을 벗어나는 순간, 현실의 흔한 인간이게 되는 것이다.

 

세븐틴을 ‘함정’에 빠트린, 그리고 언젠가 다른 아이돌 역시 함정에 밀어 넣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그래서 결코 리얼하지 않다. 리얼리티를 표방하지만 아이돌들에게 주어진 상황은 제작진이 – 아마도 소속사와 협의하여 – 잘 꾸며낸 비현실의 하나이고, 아이돌들은 그 비현실의 무대에서 자신이 보여주어야 하는 판타지와, 인간으로서 가진 현실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외줄 타기 할 뿐이다.

 

아이돌의 SNS가 때때로 논란이 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표면적으로 그들이 SNS를 하는 이유는 ‘팬들과의 소통’이다. 무대 밖의 일상을 보여주며 팬들과 좀 더 ‘리얼’하게 소통하겠다는 것이 그 의도다. 하지만 소속사가 아이돌의 SNS에 간섭한다는 ‘썰’이 있는 것처럼, 그것 역시 아이돌이 추구하는 판타지의 세계를 확대하기 위한 하나의 만들어진 리얼리티에 불과하다. 그리고 실제로 아이돌이 보여주는 ‘리얼리티’가 대중(팬들)이 꿈꾸고 바라고 믿어왔던 리얼리티와 일치하지 않을 때, 그것은 대중(팬들)이 그토록 원하던 현실임에도 비난의 대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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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리얼리티쇼.. 정말 좋을까 ⓒMBC 뮤직 ’13소년표류기’

 

그리하여 세븐틴의 순댓국이 보여준 것은 2016년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아이돌들이 처한 현실이다. 전망은 누구도 알 수 없다. 공급은 앞으로도 넘쳐날 것이고, 그들이 팔고자 하는 판타지는 섬세해질 것이며, 그러므로 판타지와 리얼리티의 경계는 더욱 희미해질 것이다.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 그 애매하고 모순적인 외줄 타기를 아이돌 개개인이 현명하게 헤쳐 나가기를 바라는 것뿐이다.

 

글. 아레오 (areoj@daum.net)

대표이미지 출처. MBC 뮤직 ’13소년표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