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표는 있지만, 마침표는 없다

 

* 정연구 씨는 그날 이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시간을 거리에서 보냈다. 진도 팽목항, 안산, 광화문, 지하철역 입구, 대학교 정문으로 나섰다. 보도행진을 하고, 캠프에 참여하고, 세미나를 진행하고, 촛불을 들고, 유인물을 나눠주고, 서명을 받고, 노란 리본을 나누고, 1인 피켓시위를 했다. 눈물을 흘렸고 소리를 질렀으며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과 손을 잡았고 서로 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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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700일 광화문 광장에서 정연구 씨가 세월호 침몰 진상규명을 위한 발언을 하고 있다 ⓒ 정연구 제공

 

세월호의 많은 탑승자가 구조될 줄 알았다.

 

2014년 4월 16일, 전원구출이란 보도에 별일 아닌 줄 알았다. 허나 오보였다. 사망자는 계속 늘었다. 간절함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단 한 명만이라도, 더 빨리 구조되길 간절히 바랐다.

 

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어떤 사회문제든 기사 정도만 찾아봤다. 그마저도 학과 내 토론 학회 때문에 찾아본 거다. 직접 현장을 찾고 행동한 것이 아니라 머리로만 이해하고 말로만 떠드는 대학생이었다. 그렇게 대학을 다니고 졸업하고 사회에 나왔더니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다. 대학을 허투루 다녔구나 싶었다. 

 

세월호 침몰 한 달 후, 내 인생의 전환점이 찾아왔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기억하는 광주기행이었다. 광주를 갔다 오고 나서 사회문제에 관심이 없던 나를 많이 반성했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지금까지 그 정신을 계승해야 하는 과거의 역사라면 4·16은 살아있는 역사라고 생각했다. 세월호 사건을 잘 해결하는 것이 우리 민주주의가 한 단계 더 나아갈 수 있는 기폭제가 될 거라 믿었다.

 

작년 3월에는 대학생들을 모아 ‘사월애’라는 동아리를 만들었다. 세월호를 기억하고 진실을 위해 행동하는 동아리다. 2명으로 시작한 동아리였지만 매달 한 명씩은 새 회원이 들어왔다. 그래서 지금은 13명 정도가 활동하고 있다.

 

우리는 거리로 나가고 만났다.

 

거리로 나가서 시민들에게 유인물을 나눠줄 때 피하거나 눈을 흘기며 가시는 시민이 있다. 속상하다. 한 번만이라도 그분들과 함께 집회든 추모문화제든 간담회든 같이 가서 유가족을 직접 만나고 얘기를 듣자고 말하고 싶다. 직접 경험하는 것을 통해 느끼는 감정은 다를 것이다. 그 후 다시 생각했으면 좋겠다. 필요한 게 비난인지, 아니면 관심인지.

 

힘이 날 때도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세월호 참사 1주기 집회 때다. 경복궁 앞에서 유가족을 둘러싼 차벽을 뚫고 가족들을 만났다. 함께 차벽을 뚫었던 대학생들과 시민들이 박수치고 서로 악수하고 유가족과 껴안았다. 유가족들이 대학생들과 시민들에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인사하시면서 그곳을 빠져나가시는데 너무나도 뭉클했다.

 

함께 해냈다는 승리의 감정을 느꼈다. 1주기를 앞두고 뭘 하든 방해받고 가로막히던 때라 무기력하고 패배의식을 많이 느끼던 때였는데 당시 느낀 감정 덕에 많은 힘을 얻었다.

유가족 어머님, 아버님들께서 학생들을 아끼신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격한 집회를 가면 학생들을 굉장히 보호해주시면서 무조건 대열의 뒤로 보내시고 앞장서 막으신다. 그래서 ‘우리는 유가족 아버님, 어머님들만 믿고 함께하면 된다’고 다짐한다. 신뢰와 믿음, 그리고 사랑이 느껴져서 유가족에게 감사하다.

 

이번 2차 청문회는 방청석에서 희생자 부모님들과 함께 지켜봤다. 눈물이 났다. 구조를 안 했다. 해수부, 해경 그리고 선장을 비롯한 선원들은 아이들을 구할 방법을 논의한 것이 아니라 상부의 지시만 기다리면서 ‘가만히 있었’고 ‘가만히 있으라’했다. 청문회에서 그들은 특조위의 질의에 대답을 피했다. 잔인하다. 탑승자들이 구조되기를 간절히 바라던 2년 전 마음이 이제는 권력을 향한 분노가 됐다.

 

현 정부, 현 정치인들은 국민이 세월호 참사를 보고 왜 슬퍼하고 분노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공감도 하지 못하는 것 같다. 또 언론 통제를 통해 세월호 참사 문제를 축소하고 왜곡하면서 공감하지 못하는 사회를 만들어 내는 것 같다. 정권이 나서서 유가족의 아픔과 세월호가 진단해내는 이 사회의 문제들에 공감할 수 없게 만든다면 이 또한 국가 권력의 폭력이라고 생각한다.

 

세월호 문제를 반드시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

 

진상규명·책임자 처벌·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416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강하다. 416운동을 함께 하는 사람들을 만났을 때, 같이 연대하고 있음을 느낄 때 힘이 난다.

 

2주기를 앞두고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대학생들의 네트워크가 단단해지고 있다. 대학생 소모임, 단체 등으로 이루어진 ‘416 세월호 참사 2주기 대학생 준비위원회’가 만들어졌고 사월애도 참여하고 있다. 서로 열심히 활동하는 모습에 자극도 받고 정보도 공유한다. 앞으로 확장될 네트워크를 통해 앞장서서 세월호를 기억하는 흐름을 대학가에 펼칠 거다. 함께 하기만 하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

 

* 이 기사는 정연구 씨의 인터뷰를 재구성했습니다.

 

글. 김연희(injournalyh@naver.com)

기획. 가오나시, 김연희, 샤미즈, 상습범, 압생트, 엑스, 이주형, 인디피그, 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