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표는 있지만, 마침표는 없다

 

“애꿎은 사람들 좀 괴롭히지 마요!”

 

권순찬 씨에게 화자는 이렇게 화를 냈다.

 

2015년, 이기호가 쓴 소설 ‘권순찬과 착한 사람들’이 있다. 어머니가 쓴 칠백만 원 사채를 대신해서 겨우 갚은 권순찬은 어느 날 어머니도 칠백만 원을 갚은 뒤 자살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채꾼은 어머니와 권순찬의 돈 천 사백만 원을 챙긴 것이다. 그 사채꾼과 만나기 위해, 권순찬은 그가 사는 아파트에 피켓을 들고 일인시위를 시작했다. 아파트의 주민들은 권순찬의 딱한 사정을 듣고 식사를 제공하거나 취업을 알선하다가 끝끝내 주민들끼리 칠백만 원을 모아서 권순찬에게 전달한다. 그러나 권순찬은 그저 ‘사채꾼을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다’ 그뿐이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의 돈도 받지 않고 그 사채꾼을 만나기 위해 자리를 지켰다. 마을 사람들은 점점 태도를 바꿨다. 괜한 고집이라고 생각한다. 권순찬 씨에 대한 나쁜 소문을 만들어내고 자리에서 끌어내고야 만다. 권순찬과 마을 사람들을 지켜보던 화자는 권순찬의 멱살을 잡고 “애꿎은 사람들 좀 괴롭히지 마요!”라고 화를 낸다.

 

그저 권순찬은 사채꾼이 알고 싶었다. 그리고 정당하게 돈을 돌려받고 싶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것은 애꿎은 사람들을 괴롭히는 일이 되었다. 사실을 알려고 하는 것이 죄가 될 때가 있다. 혹은 ‘희생’을 주장하거나 들먹이면 그렇다. 놀랍게도 지금처럼 말이다. 

 

모든 것이 바뀌어버린 2014년 4월 16일, 그 이후의 5월 18일. 그때 난 광주에 갔다. 낮에는 열사들이 잠들어있는 망월동 구묘지를 들렀고, 5ㆍ18 민주화 운동이 국가 기념일이 된 이후 17년째 매년 진행한 시민군의 행렬을 함께 재현했다. 그러나 그 해는 평소와 조금 달랐다. 금남로에 들어서자 커다란 노란 리본이 달린 검은 천막이 보였다. 그 뒤로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영정과 꽃을 든 고등학생들이 뒤따랐다. 그 뒤에는 ‘계엄령을 해지하라’라는 시민군 행렬 재현 현수막이 있었다. 과거랑 현재가 만났다. 앞으로도 잊을 수 없는 사건 두 개가 광주에서 겹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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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줌

 

4,000명 정도가 옛 광주도청 앞을 빼곡히 채웠다. 5.18 민주화 운동과 세월호 사건의 경계를 짓는 사람들은 없었다. 세월호 희생자 304명의 꽃으로 치장된 영정을 학생들과 시민이 옮겼다. 노란색 종이배를 접어 걸고 아스팔트 바닥에 앉아 가수가 꿈이었던 단원고 학생을 기리며 노래 거위의 꿈도 불렀다. 이런 모습은 세월호 1주기 때도, 아마 올해 2주기 때에도 비슷할 것이다. 2014년 4월 16일, 기점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5.18 민주화 운동과 세월호 사건을 비교하거나 같은 선상에 둘 수는 없지만, 또다시 우리는 ‘전체’의 문제를 인식했고 ‘희생’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또한 시간이 지난 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전복도 존재한다.

 

지극히 당연스러운,

 

광주 5.18 민주화 운동 이야기를 꺼내면 ‘빨갱이’가 되어버리고 세월호의 진상 규명을 외치면 ‘애꿎은 사람들’에게 슬픔을 조장한다고 말한다. 슬픔을 소비한다는 말이 무엇인지 오래 생각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는 말은 설득력이 없다’고 누군가가 말했다. ‘너무 이상적이고 현실적이지 못하다’, ‘경제성이 떨어진다.’ 비극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앞서 나열한 이유로 어렵다는 것이다.

 

세월호의 보상은 ‘외관상’ 끝났고, 몇몇 학생은 특례 입학을 했고, ‘벌써’ 2년이나 지났다. 유병언은 죽었고 죽은 사람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러니까 나머지 세월호와 무관한, 앞으로도 살아갈 사람들은 ‘애꿎은 사람’들이 됐다고 누군가가 말한다. 이제 내버려두자는 뜻이다. 그러나 세월호의 진실을 밝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당연한 이유는 그들이 사람이기 때문이고 사회라는 한 틀 안에서 같이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일을 당할 이유도 없었고 그런 일이 일어나서도 안 됐는데 발생한 재앙이다. 이유가 없었던 만큼 이유 없이 당연한 일이다. 당연한 일에 다른 변명은 필요 없다.

 

유가족들은 “이런 일이 또다시 누군가에게 일어나지 않도록”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의 일이 될까 봐 두려워서 세월호 사건을 지지하는 걸까? 반대로 우리의 일이 아니기 때문에 세월호의 이야기를 꺼내면 싫어하게 되는 걸까? 세월호가 단 한 가지 우리의 곁에 머물러 있는 이유는 마땅히 그래야 하기 때문이다. 2년이 지났는데 겨우 여기까지 왔기 때문이다. 응당 앞으로도 계속 끌고 가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19년째 시민군 행렬을 재현하는 광주 5.18 민주화 운동처럼 세월호도 우리의 곁에 있게 될 것이다. 계속 떠들고 고함쳐야 할 것이다. 사실을 알 때까지 모두가 인식할 때까지 그러기 위해 자칭 ‘애꿎은 사람들’을 괴롭히게 되는 걸 망설일 수는 없다.

 

글. 타라(kim_ny13@naver.com)
기획. 가오나시, 김연희, 샤미즈, 상습범, 압생트, 엑스, 이주형, 인디피그, 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