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표는 있지만, 마침표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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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말. 경희대학교 한 교수가 논문을 표절했다는 큼지막한 대자보 옆 유독 눈에 띄는 대자보 하나가 보였다. 게시물의 제목은 ‘세월호를 기억하는 마음을 찾습니다.’ 게시물 안에는 “거창한 무언가가 아닌, 세월호를 기억하는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아주 작은 어떤 것이라도 준비해보려고 합니다”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이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사람들도 아직 기획을 완성하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연락을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4월 초까지 몇 번 연락을 해보았지만 “아직 사람을 더 모집 중입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4월 5일 저녁 6시. 대자보가 붙고 2주가 지난 뒤에야 모임에 참가하게 됐다. 첫 모임 장소는 경희대 앞 카페. 10명 정도의 청년들이 모였고 카페 문을 함께 통과한 몇 명을 제외하곤 서로 아는 사람은 없는 듯했다. 대략 10명이 모여 있었지만 침묵만 계속되었다. 오기로 한 사람들이 다 온 것 같자, ‘세월호를 기억하는 마음을 찾습니다’ 기획자인 조진한 씨를 시작으로 서로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대학원생, 학부생, 취준생, 대학을 들어가기 위해 공부하는 학생, 그리고 교수. 공통점이라곤 4월 16일 날을 기리기 위해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마음 말곤 없는 것 같았다. 모인 사람 중에는 안산에 살면서 참사 당시의 슬픔을 목격한 사람들도 있었다.

 

본격적인 기획에 관한 토론이 시작되고 조용히 자신들의 의견을 피력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리본을 여기저기 캠퍼스 내에 부착해보자”, “리본을 크게 만들어서 사람들이 글씨를 쓸 수 있게 만들자”, “가로등에 노란 종이배를 달아놓자”, “학교의 상징물 앞에 커다란 노란 리본을 걸어 놓자”와 같은 의견들이 오갔다. 대부분의 제안은 학교 안에 세월호와 관련된 물건들을 설치하자는 제안이었다. “교내 일베 애들이 떼어버리면 어떻게 하지”, “학교에서 허락 안 해주면 어떻게 하지”와 같은 걱정을 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가장 걱정이 되었던 것은 학교의 청소 노동자였다. 캠퍼스 여기저기에 붙여져 있는 세월호 관련 설치물들을 그냥 버리는 게 아닌지가 가장 큰 걱정이었다. 청소 노동자 이야기 앞에서 모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딱히 뾰족한 생각이 나지 않는 것 같았다.

 

경희대에서 꽤 오래 학생 생활을 한 조진한 씨는 “학교 상징이 되는 곳은 다 피해 주세요!”라고 이야기했다. 학교의 상징물인 교시탑에도 학교 본관 앞에 있는 사자상에도. 조 씨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설치물이 떨어지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이야기했다. 오랫동안 모임을 할 수 없었기에, 일단 금요일에 만나자는 이야기로 모임은 마무리가 되었다.

 

지하에서 노란 리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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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대 교시탑 바로 앞. 학생들이 따뜻한 햇볕 아래에서 벚꽃 비를 맞으며 MT를 가는 모습들이 보였다. 모두 웃는 모습으로 소주 한 박스와 물을 가득 관광버스에 싣고, 웃는 모습으로 하나둘 탑승을 했다. 한편, 관광버스가 주차된 인도의 반대쪽 건물 지하 2층, 무용을 배우는 학생들이 사용했을 스트레칭 봉과, 커다란 거울벽이 있는 곳에 4명의 사람이 모여 있었다. 지난 화요일 기획에 참여했던 사람 중 12시에 모일 수 있는 사람은 4명밖에 없었던 듯했다. 조진한 씨는 사람들이 올 때까지 조금 기다리자고 이야기했지만 20분이 지나도 추가로 들어오는 사람들은 없었다. 수업 때문에 못 오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약속 때문에 못 온다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기자를 포함해 5명밖에 없는 강의실에 들어오는 사람이라곤 댄스 연습을 하러 온 학생들이 전부였다.

 

다섯 명은 재료를 사 온 뒤 바로 노란 리본을 만드는 작업을 시작했다. 처음엔 우드락으로 리본을 만들어 나름 리본의 입체감을 살리려고 했지만, 캠퍼스에서 청소 노동자가 아무래도 쓰레기로 알고 치울 것 같다는 의견이 계속해서 제기 되었다. 결국, 우드락이 아니라 플라스틱 재질의 노란색 책받침으로 노란 리본을 만들었다. 일일이 검은색 매직으로 리본의 바깥 부분을 칠해 약간의 입체감이 들게 했다. 처음에는 큰 리본 100개, 작은 리본 100개가 목표였다. 리본의 모양을 따라 그린 뒤 가위나 칼로 오리고, 검은색 매직으로 테두리만 색칠하면 되는 단순한 작업이긴 했지만 하나 만드는데 시간이 적지 않게 걸렸다.

 

세월호와 관련된 이야기는 리본을 만들 던 중에 자연스럽게 나왔다. 이 모임을 주최한 사람 중 대부분은 ‘회기동 사람들‘이라는 그룹에서 활동하는 학생들이었다. 크진 않지만 사람들이 소소하게나마 세월호를 기억해 주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에서 이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활동에 참여한 사람들 모두 그러했다. 운동으로 치면 꿈틀거리는 정도 크기의 활동이긴 하지만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4.16을 잠시라도 생각하게 하고 싶었던 듯 했다. 12시 반부터 시작했던 작업은 몇 시간 동안 계속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은 조금씩 늘기도 그리고 빠지기도 했다. 수업을 듣다가 졸려서, 그냥 나와 리본을 만드는 학생, 근로하러 간 학생, 수업이 끝나고 리본을 만들러 온 학생, 수업을 듣기 위해 간 학생, 수업을 끝내고 온 교수. 다들 학교에 있는 동안 공강 시간을 활용해 리본을 만들러 왔다.

 

덩그러니 노란 리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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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봄 햇볕이 내리쬐고 있는 4월 11일 오후 12시 정문 앞. 노란 리본을 달기 위해 9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공강인 사람들만 모인 듯했다. 3명씩 한 팀으로 짝을 지어 리본과 리본을 묶을 끈 그리고 테이프를 분배하고, 서로 리본을 어디에 붙일지 구역을 나눴다. 물론 이때에도 “다시 한 번 학교의 상징이 되는 곳에는 붙이지 말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기자가 소속된 팀이 가장 먼저 노란 리본을 단 곳은 학생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껄덕고개’라 불리는 곳의 난간이었다. 제법 긴 난간을 따라서 노란 리본을 한 칸에 하나씩 달았다. 리본을 다는 도중 지나가는 학생들과 청소 노동자로부터 노란 리본을 제작할 때부터 기대했던 반응들을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의 입속에선 자연스럽게 세월호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나왔다. “와, 벌써 2년이나 됐어”, “학생들이 세월호를 추모하기 위해서 이런 걸 만드는구먼!”, “조금만 있으면 4월 16일이네.” 자조 섞인 이야기도 있었고, 자기들도 뭔가를 해야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모두 세월호 참사에 대하여 안타깝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였다. 리본을 달지 않았으면 모두가 그냥 지나갔을 길이었다. 제작했던 리본들은 2시간이 되지 않아 캠퍼스 이곳저곳에 붙여졌다. 학교의 상징물이 아닌 곳에 노란 리본을 붙이려다 보니, 학생들의 눈이 가는 장소보다는 다소 생뚱맞은 장소나 학생들의 시선에서 약간 이탈한 장소에 노란 리본을 붙였다. 길의 가장자리, 길가의 바위 위. 학생 게시판의 사이드. 학생들의 시선이 한 번에 닿을 수 있는 곳에 붙여진 리본은 많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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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긴 듯, 숨기지 않은 리본들을 지나다가 발견하게 되면, 2년 전 아픈 기억을 잠시 회상하고 또 마주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이 불편함을 계속해서 피하게 된다. 리본을 같이 달았던 태양 씨는 “세월호 사건을 단순하게 본다. 정치적인 사건이 아니라 그냥 아픈 사건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추모하는 것 같다”라고 이야기했다. 이번 캠페인을 기획했던 진한 씨도 “개인의 입장이 아니라 아이를 가지고 있는 부모의 마음이니까, 좀 다른 것 같다. ‘내가 부모였다면’ 이런 마음이 드니까 세월호 유가족을의 고통이 잘 오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한 사람의 외면은 그 사람의 망각에서 일이 마무리되지만, 수많은 사람들의 외면은 또 다른 사건의 시발점이 된다. 다소 불편하더라도 이 사건을 잊지 말아야 할 이유다. 길을 걷는 학생들이 2년 전을 회상하며 노란 리본을 보는 것처럼.

 

글. 상습범(biswang@naver.com)

기획. 가오나시, 김연희, 샤미즈, 상습범, 압생트, 엑스, 이주형, 인디피그, 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