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 있는 일만 찾아다녔다. 찾아다니고, 해부해서 먹어치웠다. 그러다 온갖 의미로 꽉 차서 숨이 막혔다. 좀 비우고 싶다. 그냥 막 걷고, 어디든 들어가고, 무엇이든 먹고 마시고 싶다. [다녀왔다고함]은 이런 발버둥의 기록이다.

 

대학교를 다닌 지 3년 차에 접어들었다. 동기 남학우들은 나라의 부름을 받아 끌려갔고, 여학우들은 스펙 준비를 위해 휴학하거나 교환학생을 떠났다. 학교에 아는 사람이 몇 남아있지 않은데, 아예 아는 사람이 없는 새 학교에 다녀보기로 했다. 한 학년에 한 명 볼까 말까 한 국내 학점교류를 내가 하게 되었다. 

 

A 대학의 캠퍼스에 봄이 찾아오자 이름 모를 꽃이 피어났다. 이름 모르는 사람들을 스쳐 갔다. 내가 아는 사람 몇몇이 이 학교에 다니고 있지만 마주칠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예상과는 달리, 고등학교 후배 홍을 만났다. 나랑 같은 대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반수를 해서 A 대학 학생이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인사를 마무리하고, 낯선 교정을 혼자서 익숙한 양 걸어갔다.

 

어서 와, 처음이지?  

 

어느 학교로 학점 교류를 가든 길을 쉽게 외우지 못한다. A 대학의 캠퍼스는 하필이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넓은 것으로 유명해서 길 외우기는 일찌감치 포기했다. 광활하다고 할 만큼 넓은 교정 안에는 버스가 돌아다녔다. 셔틀버스 몇 대뿐만이 아니었다. 분명히 캠퍼스 바깥에 있어야 할 초록색 시내버스가 눈앞을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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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연못이 있다니

 

학점교류 대학의 수강신청을 할 때, 나의 원래 대학과의 시간표가 겹치는지는 물론이고 내가 이동할 수 있는 거리인지를 확인해야 한다. 나는 A 대학에서 6학점, 그러니까 두 과목을 수강하기로 했다. 라틴어 수업을 듣고 A 대학의 명강의로 소문난 종교학 강의를 들으러 간다. 강의동 사이를 이동하려면 쉬는 시간 15분 동안 부지런히 걸어야 한다. 버스는커녕, 정문에서 후문까지 15분이 채 걸리지 않는 학교에 다니고 있던 나는 마치 거인국에 온 소인국 사람이 되었다. 

 

소인국 사람에게는 건물의 크기뿐만 아니라 사람의 크기도 위압적으로 다가온다. 강의실에 수백 개의 의자가 계단식으로 아래에서부터 위쪽까지 즐비해 있었다. A 대학이 워낙 규모가 커서 그런지 본 적 없이 넓은 강의실에 주춤하곤, 어색하게 앉아서 신입생처럼 수업을 기다렸다. 

 

“◯◯◯가 누구니?” 수업 시간에 출석을 부르던 교수님이 100명의 학생들을 향해 물었다. 갑자기 나온 내 이름에 당황하며 대답했다. “네, 네? 접니다!” “어, 그래. 이따 수업 마치고 나 좀 보고 가렴.” 계단식 강의실의 가장 꼭대기로 쏠린 100여 명의 시선이 낯설었다. 

 

대학교보다는, 대학 

 

16학번으로 새 학번과 함께 A 대학의 학생증도 발급받았지만, 출석부에는 ‘국내학점교류’ 학생으로 기재되었다. 교수님은 낯선 것투성이인 외부 학생에게 따로 식사를 사 주시며 물었다. “어떻게 강북 쪽 학교에서 여기(한강 이남)까지 내려오게 됐니?” 전공과목에 대한 순수한 탐구심으로 찾았노라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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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지 학문을 위해 ‘대학’만 다녀보고 싶다면, 학점 교류가 제격이다. 교류 대학은 내가 알던 ‘학교’의 의미를 갖지 못 한다. 대학교는 단순히 강의의 집합체가 아니다. 대학교에 다닌다는 것은, 누군가와 함께 공부한다는 데서 ‘학교’의 의미가 있다. 하지만 학점 교류 학생은 강제 독강을 각오해야 한다. 

 

아무리 강의만 듣는다고 해도, ‘우리 학교’가 아니라는 사실만으로 모든 것이 서툴다. A 학교에 다니고 있는 지인이 강의평가 사이트, 학교 공식 포털 이용 방법 등을 알려주었기에 다닐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1월, 서울 시내 23개 대학 학점교류협정 체결 소식이 보도되었다. 학점 교류 학생은 족보나 교수 및 강의에 대한 학생들의 평가, 교재 물려받기 등 모든 부분에서 정보가 부족하다. 이러한 불리함이 어느 정도 메워질 수 있다면, 오는 2학기부터 다양한 학교의 학생들을 우리 학교 캠퍼스에서 보다 많이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글. 이설(yaliyalaj@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