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시 40분까지 개표 장소로 오시면 됩니다. 저녁은 먹고 오세요.”

 

개표사무원의 저녁 시간은 따로 없다. 13일 오후 6시에 투표가 끝나는 순간부터 본격적인 일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번 4.13 총선 날, 투표를 마치고 개표사무원 아르바이트를 위해 개표 장소인 한 초등학교를 찾았다.

 

‘분류-개표-심사’로 이뤄지는 개표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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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파구 개표소 개표 장면 ⓒ 연합뉴스

 

개표장은 넓었다. 총 세 단계로 구성돼 있다. 첫 번째 단계인 개함부는 말 그대로 손으로 분류하는 작업이다. 투표함을 뒤집어 안의 표들을 기다란 책상 위에 부으면, 12~13명씩 앉은 한 테이블에서 그 표들을 분류해 하나로 모은다. 한 라인은 지역구 표, 한 라인은 비례대표 표다. 무효표를 따질 것도 없이, 오로지 따로 분류해 모으기만 하면 된다.

 

그다음 단계의 주역은 개표기다. 분류기 운영부에서 개함부에서 반듯이 모은 표들을 개표기에 넣어주면 개표기는 ‘차라락’ 소리를 내며 빠르게 표들을 분류한다. 먼저 유효표/무효표를 구분하고, 유효표들은 어디에 찍혔는지 위치를 판단해 분류한다.

 

분류된 표들은 다시 세 번째 단계인 심사집계부로 넘어간다. 심사집계부에서는 기계가 100매 단위로 숫자를 센다. 그 앞에 앉은 사무원들이 무효표는 아닌지, 똑같이 한 위치에 찍혀있는 표들인지를 육안으로 검사한다. 분류기에서 구분한 무효표들도 이곳에서 직접 하나하나 분류가 이뤄진다. 그렇게 모든 과정에서 통과되면 표들은 개표위원들에게 넘어가고, 개표위원들의 확인이 끝나면 그 수치가 기록 및 보고가 된다.

 

들어가며 각자의 자리를 확인하는데, 난 첫 번째 단계 개함부에 있었다. 자리에 사무원과 위원, 개표참관인, 경찰관과 소방관 등이 모두 자리를 잡으면 오후 5시부터 교육이 시작되고, 오후 6시가 되면 표를 담은 함들이 속속들이 개표장에 도착하기 시작한다. 가장 먼저 도착한 것은 선관위 사무실에 위치했던 사전투표함. 이때부터 개표참관인들은 이후에도 도착하는 모든 투표함의 봉인 여부를 꼼꼼히 확인한다.

 

개표의 시작, ‘단순반복노동’의 시작

 

본격적인 개함은 오후 6시 30분께 시작됐다. 봉인 여부를 살펴보는 과정에서 진행위원과 개표참관인들 사이의 신경전이 있었기 때문. 대부분 40~50대로 구성된 개표사무원들은 무슨 일인가 하며 고개를 들고 상황을 지켜보며 말을 나눈다. 개표장의 신경은 곳곳에서 곤두서 있다. 마침내 첫 투표함이 우리 책상에 등장하고, 수많은 표들이 책상에 쏟아진다. 내가 할 일은 지역구의원들의 표만 모으고 옆에 놓인 통에 가지런히 놓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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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처럼 표가 적지 않다. 이건 거짓말이다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처음에는 사람들이 투표를 어디에 했나를 살펴보면서 시작했다.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은 부분도 있었고, 예상과는 딴판인 것들도 있었다. 허나 이런 관찰도 오래가지 못했다. 1시간 정도 지나자, 기나긴 단순반복노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투표지를 들여다볼 여유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일하던 사무원들도 슬슬 힘들어하는 눈치다.

 

“이 종이들이 다 돈이라면 세는 게 얼마나 좋겠어~.”
“아이고. 그러면 지금보다 훨씬 열심히 세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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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혀진 표들을 보면… 정신이 멍해진다 ⓒ 김성모

 

이런 힘겨움을 푸는 건 사무원들의 농 그리고 가끔 등장하는 ‘이상한’ 표들이다. 어디에도 찍지 않은 것들은 흔한 일이다. 모두에게 도장을 찍은 표, 걸쳐서 찍은 표, 직접 가져온 펜으로 크게 X자를 그은 표, 빈 곳에 찍은 표…. 옆자리 사무원은 이상한 표가 등장할 때마다 “이것 좀 봐라” 하면서 미소를 짓는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나마 단순반복노동을 잊게 하는 순간이다.

 

“아이고, 내가 앞으로는 표를 접나 봐라!”

 

개함부에서 가장 짜증 나는 존재는 여러 차례 접힌 표들이다. 한 번 접힌 표는 그나마 바로 손에 잡기 수월하지만, 세 번 이상 잡힌 표들은 표를 쥐지 않은 한 손으로 풀기엔 시간이 꽤 걸린다. 딱지 접듯이 특이하게 접거나 손에 잘 잡히지도 않을 정도로 작게 만들어놓은 표들도 있다. 나 역시 수차례 접힌 표들을 하나하나 풀어가며, 다음 선거 땐 꼭 한 번만 접을 걸 다짐하곤 했다. 나 같은 개표사무원들을 위해.

 

“근데 이게 다 뭐하는 당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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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표사무기는 빠르고, 비례대표 표는 길다 ⓒ 연합뉴스

 

이번 선거의 숨은 변수는 바로 비례대표 투표였다. 21개나 되는 정당이 있었기에 투표지는 한 손에 잘 잡히지 않을 만큼 길었다. 33.5cm로 그간 선거 중 최장 길이란다. 그 표들은 손에 쥐기가 쉽지 않았고, 바르게 정리하는 데도 한참 시간이 걸렸다. 사람들은 비례대표 표를 잡는 것이 지겨워질 때마다 “무슨 이런 당이 있느냐”며 수많은 당들을 성토하곤 했다. 몇 가지 당들은 이름만 보고는 무슨 당인지 추측이 불가능해 사무원들끼리 무엇을 목표로 하는 당인지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개표 과정은 꽤나 공정한 방식으로 이뤄졌다. 20여 명이 넘는 개표참관인들은 개함부와 개표기분류부, 심사집계부를 오가며 면밀히 개표과정을 관찰했다. 우리 지역은 도중에 별다른 이의제기가 없었고, 수치도 잘 맞는 듯했다. 딱 한 번 옆 개함부에서 한 표가 바닥에 떨어진 것을 모르고(쏟는 과정에서 표들이 바닥에 떨어지곤 한다) 넘겼다가 수를 맞춰서 다시 분류한 일이 있었긴 했지만. 이후 위원들은 개함부를 지나다니며 “바닥을 꼭 보세요”라고 말하곤 했다.

 

개표 끝, 간식과 함께 퇴근

 

개표과정은 길었다. 개함부에 있는 사무원들은 허리와 어깨통증을 호소했고, 심사집계부에 있던 사무원들은 일일이 표들을 확인하느라 “눈이 빠질 것 같다”라며 고개를 저었다. 자체적으로 한 번의 쉬는 시간과 표를 정리하고 다음 함이 뒤집히길 기다리는 잠깐이 유일한 휴식시간이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인구가 적은 동’의 함이 오기를 바라곤 했다. 하나 마치고 나면 새 함이 오기까지 잠깐 1분이라도 쉬니까. 마지막으로 전해진 투표함의 동네가 인구가 많은 동임이 밝혀지자, 모두들 “일복 터졌네”라며 웃음 짓는 것으로 서로를 위로했다.

 

일렬로 20~30개가 놓인 함들이 조금씩 줄어들었고, 내 손에 종이에 베인 상처가 생기기 시작했을 즈음인 오후 11시가 되자 개표는 마무리됐다. 인구가 많은 동은 새벽까지 작업이 이어진다고 하지만, 내 지역구는 인구가 그렇게 많지 않았기에 가능한 듯했다. 사무원에게는 프랜차이즈 빵집의 작은 케이크가 간식으로 지급됐다.

 

케이크를 들고 집에 돌아왔다. 그제야 제대로 된 개표 현황을 볼 수 있었다. 장담컨대 개표사무원 아르바이트의 가장 큰 단점은 개표 현황을 실시간으로 보지 못한다는 점이다. 결과가 어떻게 나왔는지 궁금한데 사무원 알바를 하면서는 확인할 짬이 나지 않아 볼 수가 없다. 개표사무원 알바는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었지만, 또다시 할지는 모르겠다. 시급이 세긴 하지만, 궁금증을 참기도 쉽지 않고, 어깨도 아프다. 개표 참관이나 사무원 신청은 지역선거관리위원회에서 할 수 있다. 일당은 3일 뒤에 들어왔다. 66,000원이었다.

 

 

글. 감언이설(gchhg200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