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20일) 저녁 18시 17분 조선일보 페이스북에는 아래와 같은 모습으로 기사 한 편이 공유되었다. 기사 제목은 ‘“돈 줄 테니 벗어” 여성들의 반응은’. 공유된 기사의 사진 속에는 한 여성이 윗옷을 올리고 있고, 이 반대편에서는 한 남성이 이를 바라보는 모습이 담겼다. 여성의 상반신은 모자이크로 ‘아슬아슬’하게 가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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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하며 고함20이 상반신을 블러 처리했다 ⓒ 조선일보 페이스북

 

공유된 기사의 내용은 이렇다. 러시아 신흥 재벌이 ‘엽기 실험’을 했다. 돈을 주겠다는 조건으로 ‘여성 행인에 뮤직비디오 촬영을 빌미로 속옷만 입고 세차하기’, ‘개를 총으로 쏘기’, ‘나체로 돌아다니기’ 등의 행위를 시켰다.

 

조선일보는 이것들이 매우 ‘엽기적’이었는지, 동영상의 캡처본을 기사 곳곳에 위치시킨다. 기사 중간중간에는 ‘강아지에게 총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기기 직전’과 ‘나체를 보여주는 여성의 모습’이 아슬아슬한 모자이크와 함께 놓였다.

 

아슬아슬한 사진을 보여주며 어쩌면 ‘조선일보’는 이 일의 ‘비상식성’을 말하고 싶었을지 모른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다. 맞다, 이 일들은 ‘비상식적인’ 일이다. 그래서 조선일보는 가장 충격적인 사진들을 기사 안에 담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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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에 게재된 또 다른 사진 ⓒ 조선일보

 

헌데, 그들의 믿음(최소, 언론으로서 기대하는)과는 별개로 사진이 낳은 것은 그저 ‘광경’으로 박제된 볼거리다. ‘아슬아슬하게 가려진 여성의 나체’는 그저 포르노그래피로서 소비되고, ‘강아지에게 총을 겨눈 사진’이 보여주는 충격의 이미지와 소위 ‘비상식’은 이를 ‘비현실’로 만들어 내 삶과 거리를 만들어 낸다.

 

 거리를 두고 앉아, ‘잔혹함’과 ‘고통’, ‘폭력’을 그저 볼거리로 소비시키는 언론. 리모컨을 쥐고 소파 위에 앉아서, 가장 자극적 장면을 찾아 채널을 돌리다가 이따금 ‘쳇, 이거 너무하지 않냐’고 말을 건네는 아저씨. 포르노 같은 여성의 아슬아슬한 나체를 홍보사진으로 직접 선택하고, 홍보 코멘트로는 ‘왠지 씁쓸해지는 영상입니다’를 붙이는 언론 조선일보를 보며 떠올리는 이미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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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한두 번이 아니다 ⓒ조선일보

 

어쩌면 조선일보는 언제고 그랬을지 모른다. 카드뉴스를 통해 도덕적 입장에서 성 상품화를 엄중히 비판하면서도 이를 ‘제작자’ 차원의 문제로 축소했고, 반대편에서는 ‘미스코리아 XXX 터질듯한’과 같은 기사를 써냈다. 재현되는 폭력과 잔혹함에 거리를 만들어내는 것, 독자에게 전달하는 폭력과 아픔에서 이것의 ‘현실성’을 지우고 ‘비현실성’을 채우는 것, 독자에게 폭력과 잔혹함의 ‘일상성’을 환기하는 것보다 이를 그저 볼거리로 만들어 놓는 것. ‘1등 신문 조선일보’가 가장 잘하는 일이다.

 

오늘 1등 신문은 SNS 홍보 사진으로 포르노그래피를 실었다. 그리고는 팔짱 끼고 앉아 저것들 좀 보라고 혀를 차는 중이다. 기사엔 남성과 여성 모두를 대상으로 한 ‘엽기적 실험’이 담겼지만, 제목은 “돈 줄 테니 벗어” 여성들의 반응이다. 한때, 성 상품화를 비판했던 이 언론의 이중적인 태도에 새삼 놀랍다가, 이내 당연스러운 것이라고 깨닫는다. 창녀와 성녀, 달관 청년과 노오력 청년 등 아재의 관심은 ‘대상’ 그 자체가 아닌, 잘 팔리는 모습으로서의 ‘스팩터클화’, ‘박제된 이미지’에 방점을 찍는다. 조선일보는 오늘도 기사란 이름의 포르노를, 폭력과 잔혹함의 스펙터클을 팔고 있다. 

 

 

글. 압생트(9fift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