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람들을 이분화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러한 이분법은 ‘배려’라는 가면을 쓰지만 때론 폭력이 되기도 한다. 장애인을 타자화하고 그들을 숫자로 분류하며,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에 있는 사람들을 소외시키는 것이 그렇다. 우리는 장애인의 날을 맞아 경계를 허무는 글을 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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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30일 광화문역 지하에 있는 위치한 영정 사진과 꽃

 

광화문 광장에서 광화문역으로 들어가는 길에는 농성장 천막이 하나 있다. 천막 옆에는 시민들의 서명을 받는 책상과 분홍색 종이배들이 가득 들어간 전시물이 있다. 이곳은 2012년 8월 21일부터 1,333일(4월 13일 기준) 동안 이어지고 있는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폐지를 위한 광화문 농성장이다. 농성이 진행되는 동안 떠난 사람들을 기리기 위한 사진들과 꽃 그리고 영정 사진들이 농성장 맞은편에 있고, 그 주위로는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폐지와 관련된 게시물들이 여러 개 붙어있었다.

 

“기초생활수급을 신청했으나, 부양의무자 기준에 걸려 수급자가 되지 못하였습니다. 아들이 소득이 많아서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들의 수입은 200만 원 남짓, 중3, 초1 두 자녀를 광명에 5,500만 원 전셋집에 사는 형편이라 실상 네 식구 생활하기도 빠듯한 상태죠.” – (72, 이○○)

 

“장애인시설에서 생활할 때 자립하고 싶었지만 돈이 없었습니다. 시설 안에서 365일 똑같이 반복되는 생활이 싫었습니다. 그래서 시설에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저는 수급자가 아니라고 합니다. 저처럼 중증장애인한테 국가가 주는 생계비를 저한테는 줄 수 없다고 합니다. 15년 동안 시설에 한 번도 오지 않았던 아버지 이름으로 집이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 (33, 정승배, 뇌병변장애 1급)

 

농성장 주위에 걸려있는 게시물의 글 중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이제 이곳에서의 시위는 4년을 향해가고 있다. 지난 3월에도 광화문에서 장애인권리보장법을 만들라는 시위가 있었다. 이들을 1,333일 넘게 광화문 지하에서 농성하게 만드는 장애등급제에는 어떤 문제가 있는가.

 

세계는 장애를 어떻게 보고 있나

 

장애에 대한 개념은 1980년 이후 장애인의 권리 회복을 강조하는 국제적 흐름과 함께 변화했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 국제장애분류인 ICIDH(International Classification of Impairment, Disability and Handicap)를 공식적인 정의로 채택하는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 ICIDH는 장애를 신체 손상이나, 기능장애, 사회적 분리로 분류하는 정의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새롭게 도입된 ICIDH 또한 장애를 이해하고 장애인정책의 참여와 활성화를 주된 과제로 할 때 한계가 있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1997년에 수정된 버전인 ICIDH-2 또한 한계가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1990년대에 들어 장애인정책의 기조는 소득보조를 위주로 한 정책에서 소득능력의 회복 및 고용을 통한 복지를 추구하려는 지향성이 강해졌다. 장애를 가진 사람을 보호해야 한다는 복지정책이 아니라 장애인들에게 고용기회를 제공해 생산적 복지 혹은 장애인의 정상화 정책으로 방향이 전환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장애인을 바라보는 인식 또한 변하기 시작한다. 장애는 장애 그 자체가 문제인 것이 아니라 장애로 인한 인간 인식의 기능적 제약을 근본적인 문제로 봐야 한다는 주장, 장애는 무능력을 의미하며 보호가 필요하다는 부정적인 시각에 대한 개선, 그리고 장애의 문제를 특정한 소수자 그룹에 국한하는 문제가 아니라 보편적인 문제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의식의 변화로 인해, 장애의 개념은 신체적 장애에서 기능적 장애로 변화되었고, 장애인은 장애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 다양한 형태로 도와야 하는 사람으로 구체화 되었다. 이런 배경 아래에 2001년 5월 ICF(International Classification of Functioning, Disability and Health)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ICF는 ICIDH와 달리 장애의 독립적인 정의와 기준이 제시되지 않는다. 대신 ICF는 장애의 기준을 질병의 결과에서 비롯된 상태가 아닌, 장애에 대한 개인적인 특성과 사회 환경적인 특성을 통합하였다.

 

우리나라는 장애를 어떻게 보나

 

우리나라에서 장애인에 대한 기준은 장애인복지법에 의해 “신체적 정신적 장애로 인하여 장기간에 걸쳐 일상생활 또는 사회생활에 상당한 제약을 받는 자”로 명시되어 있다. 장애인과 관련된 법들의 규정들 또한 기본적으로 이와 동일하다. 장애인에 대한 정의는 포괄적인 의미에서 보면 WHO의 ICIDH나 IDF의 기능적 정의와 상당히 유사하다. 하지만 법을 세부적으로 보면 장애인에 대한 개념을 단순히 선언적 의미로만 인식한다. 제2조 제2항에서는 “이 법의 적용을 받는 장애인은 다음 각 호의 1에 해당하는 장애를 가진 자”로 규정하여 장애 유형에 따라 장애인 인정 여부를 결정한다. 이 장애 인정 여부와 관련된 것이 바로 장애등급제이다.

 

장애등급제는 장애인을 의학적인 기준으로 장애 정도를 판단해 등급을 부여하는 제도며 장애 종류와 장애 정도에 따라 등급을 매긴다. 이러한 등급 부여에 따라 장애인들에게는 선별적인 복지서비스 수급여부가 결정된다. 하지만 등급제는 장애인의 고용, 교육, 소득, 의료, 주거 등 다양한 복지 영역의 욕구를 장애인등급 한 가지로 평가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는 지적과, 사람에게 등급을 매기는 것 자체에서 인권 침해요소 있다는 것이 지적된 바 있다.

 

실제 OECD 국가에서 장애인에 대하여 등급을 나누는 국가는 우리나라와 일본밖에 없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문헌상으로만 남아있을 뿐 실제적인 조정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대부분의 나라에선 장애인에게 등급을 매기지 않고 의사나 사회복지사 직업재활사 등 장애와 관련된 전문적인 인력들로 구성된 팀이 작성한 평가 결과를 토대로 복지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렇게 보면, 현재 우리나라에서 시행되고 있는 장애등급제는 국제적 추세에 어긋나는 제도인 것이다.

 

장애등급제 폐지는 어렵나?

 

지난 대선에서 ‘장애등급제 완전 폐지’는 박근혜 후보의 공약이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이후 장애인등급제를 개편하는 일이 한번 있었으며, 그 과정에선 장애인의 활동지원과 발달재활 등의 서비스가 제공됐다. 하지만 전폭적인 지원을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예측이 우세하다. 보건복지부에서 개편안을 발표할 당시 한겨레 보도에 의하면 정부가 장애등급제를 폐지하지 않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현재 장애인한테 제공되는 각종 감면·할인 제도가 축소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예컨대 전기·가스 요금 할인은 중증 장애인한테만 혜택이 주어지는데 등급제를 폐지하면 기업들이 장애인 모두 에게 똑같은 혜택을 제공해야 하는데, 이에 부담을 느껴 아예 감면·할인 서비스를 폐지하거나 축소할 수 있다.”

 

장애인들은 장애등급제가 폐지되지 않을 때까지 등급 재심사를 받을 때마다 진료실에서 노심초사하며 검사를 받아야 한다. 등급이 떨어진다는 것은 활동보조를 받을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장애에는 변동이 없지만 의료기관마다 측정의 기준이 다르거나 기계적 오류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 장애등급제에 대한 장애인단체들의 원성이 줄어들지 않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정부에서는 장애등급제 완전 폐지에 대한 입장을 보이지 않는다. 박철균(전국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은 “장애인 인권과 관련된 이전까지의 운동들이 순탄치 않았다. 하지만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하나하나 이루어졌다. 당장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지만, 우리가 목소리를 내는 이상 없어지지 않을까 생각된다”고 말했다.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는 더욱 소외되기 쉽다. 그러기에 장애인들은 누구보다 세상과 치열하게 싸웠다. 그런 식으로 조금씩 성취해 나갔다. 작은 기사로나마 장애인들의 투쟁을 응원한다.

 

<이 글은 경희대학교 대학원보에 나온 조한진 교수의 장애등급제: 물 건너간 폐지 약속 양운택씨의 논문을 바탕으로 쓰여졌음을 밝힘니다>

 

글. 상습범(biswang@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