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 있는 일만 찾아다녔다. 찾아다니고, 해부해서 먹어치웠다. 그러다 온갖 의미로 꽉 차서 숨이 막혔다. 좀 비우고 싶다. 그냥 막 걷고, 어디든 들어가고, 무엇이든 먹고 마시고 싶다. [다녀왔다고함]은 이런 발버둥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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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히 홀로 죽어가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 올해 서울에서만 88명의 사람이 혼자 지내다 죽음을 맞이했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 위, 가로세로 2~3m밖에 되지 않는 쪽방이나 고시원에서, 그리고 요양병원에서도. 이들에겐 가족이 없다. 이웃도 없다. 몇 센티미터밖에 되지 않는 벽에서 같은 공기와 소음을 공유하면서도 몇 마디 말을 건네는 사람이 없다. 이들을 위해 장례식을 치러줄 사람 또한 없다. 장례식이 있다고 해도 연락이 닿는 사람이 있을까. 떠난 사람은 병원의 안치실 냉장고에서 친인척들을 잠시 기다린다.

 

각 지역의 지방자치기관들은 홀로 떠난 사람들의 가족을 찾는다. 행정의 힘이 가족을 찾을 때까지 떠난 사람은 차가운 냉장고 안에서 기다린다. 아니면 친인척이 떠난 사람의 시신을 거부하겠다는 답이 돌아올 때까지도 떠난 사람은 기다려야 한다. 짧게는 몇 주, 길게는 몇 년이 걸릴 수도 있다. 친인척들이 고인의 시신 인수를 포기하면 고인은 시신을 화장하는 승화원으로 이동한다. 서울의 경우는 보통 서울 시립 승화원으로 시신이 옮겨진다. 시립 승화원은 3호선 연신내역에서 내려 703번 버스를 타면 갈 수 있는 곳이다. ‘서울’이라는 단어가 붙긴 했지만 실제론 서울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경기도 고양시에 있다. 버스를 타고 20분을 달려 시립 승화원 앞에 내리면 가파른 오르막길이 기다리고 있다. 평지라면 1분만 걸어도 될 거리지만 경사가 있어 5분쯤 걸어야 승화원의 모습이 보인다.

 

승화원의 안쪽으로 들어가면 가장 먼저 보이는 모습이 수많은 리무진 차량과 버스다. 서울 인근 지역에서 시신을 태운 리무진과 이들의 마지막을 보기 위해 온 사람들의 버스가 수도 없이 주차되어 있다. 하지만 이 수많은 차 중에 홀로 떠난 사람을 위한 차는 없다. 혼자서 쓸쓸히 죽었기에 슬퍼해 주는 사람 또한 없다. 그 또는 그녀는 한 스타렉스 차에 실려 이곳으로 도착한다. 그들을 담은 관은 아무런 무늬도, 아무런 치장도 없는 네모난 나무상자다.

 

고인의 관을 차에서 내리고 화장을 하는 곳으로 가져가기 위해 승화원의 직원이 트레일러를 가지고 온다. 관을 트레일러 위에 올려놓은 뒤, 고인의 관은 곧장 화장터로 이동된다. 화장이 끝나기까지 짧게는 50분 그리고 길게는 1시간이 걸린다. 승화원으로 오기 전 병원 안치실에서 친인척들을 오랫동안 기다렸던 고인의 경우 더 길게 화장을 한다. 냉장고에서 보낸 시간이 길어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마지막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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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의 유골함이 추모의 집에 들어가는 모습 ⓒ 나눔과 나눔

 

화장이 종료된 고인의 유골은 곧바로 승화원 직원에 의해 플라스틱 통에 담긴다. 화장을 마친 고인의 유골은 뜨겁다. 통이 얇아 유골의 온기는 손까지 전해진다. 냉장고에 오랫동안 있던 고인의 유골은 화장 시간이 길기에 더 뜨겁다. 이들의 유골에서 전해지는 온기는 떠난 사람으로부터 전해져오는 마지막 온기다. 하지만 홀로 떠난 사람의 마지막은 이곳 승화원이 아니다. 서울 시립 승화원에서 또다시 북쪽으로 차를 타고 20분을 달리면 용미리에 있는 무연고 추모의 집이 있다. 무거운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무연고 추모의 집 안은 차가운 날씨 때문인지 찬 기운이 흐른다. 고인의 유골은 이곳 무연고 추모의 집 안에 안치된다. 하나의 기록물처럼 고인의 유골함은 올해 떠난 다른 사람들과 나란히 안치된다. 고인을 식별할 수 있는 사진이나 주민등록증, 여권 같은 것들이 플라스틱 통 위에 놓인다.

 

이곳 용미리에 있는 무연고 추모의 집에서는 10년간 무연고로 떠난 사람들의 유골을 보관한다. 만약 이들의 지인이 찾아와 유골을 요구하면 고인의 유골을 받을 수 있다. 올해 4월 14일 기준 88번째 사망자가 이곳 무연고 추모의 집에 들어갔다. 2015년에 무연고 사망자는 1,245명이다. 한 해가 지나고 지날수록 무연고 사망자의 수는 늘어나는 추세다. 그리고 이 추세 안에는 노인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적은 수지만 청년들도 포함된다.

 

기자는 작년부터 무연고 사망자를 추모하는 장례 자원봉사를 했다. 무연고인 사람들은 대부분이 70대 이상의 노인들이었고, 베이비붐 세대가 뒤를 이었다. 애먼 짓을 해서 가족과 연락이 끊긴 것일까, 아니면 어쩌다 보니 무연고가 된 것일까. 무연고 사망자들의 장례식을 치러주는 사람이 정작 고인이 죽기 전까지 아무런 연고가 없으니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가족이 없거나, 친구가 없거나 이웃이 없다는 것은 단순 외롭다는 차원을 넘긴 문제인 게 아닐 것이다. 만약 내가 죽는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내 죽음을 알 수 있을까.

 

누구와의 교류 없이 누구라도 간단히 살게 될 수 있는 시대. 하지만 기술이 발전한다고, 복지 정책이 더 좋아진다고, 경제가 발전한다고 무연고 사망자가 없어지는 건 아니다. 시대가 만들어낸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글. 상습범(biswang@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