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람들을 이분화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러한 이분법은 ‘배려’라는 가면을 쓰지만, 때론 폭력이 되기도 한다. 장애인을 타자화하고 그들을 숫자로 분류하며,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에 있는 사람들을 소외시키는 것이 그렇다. 우리는 장애인의 날을 맞아 경계를 허무는 글을 쓰기로 했다.

 

*  장애인의 날을 맞아 기사를 읽기 힘든 분을 위해 청각뉴스를 제공합니다. 주변에 이 기사를 전해주고 싶으신 분이 있으시다면 함께 읽고, 들어주세요. 

 

휠체어를 탄 사람이 패러글라이딩을 하고 싶다. 그런데 장비가 없고 너무 위험하다고 한다. 오키나와 여행을 가려고 했더니, 비행기에 휠체어를 실을 수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녀)에게 여행은 불가능한 일이 된다.

 

그러나 장애인을 위한 장비가 있고 휠체어가 탑승 가능한 비행기와 렌터카가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수년 전만 해도 장애인이나 노인이 여행을 가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여행을 할 수 있는’ 집단에서 제외되었던 셈이다. 지금은 일부 항공사에 휠체어 탑승 서비스가 생겼고 관광지에서 이용할 수 있는 장애인 콜택시도 늘어나고 있다. 여전히 여행 장벽은 높지만 가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닿을 수 있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 접근 가능한 여행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접근 가능한, 모두를 위한 여행

 

접근 가능한 여행(accessible tourism)은 ‘모두를 위한 여행’(Tourism for all)이다. 장애인의 여행권 보장을 위해 출발한 논의이지만 장애인뿐만 아니라 노인, 어린이, 알레르기 보유자 등 관광 약자 모두가 여행을 즐길 수 있게 하는 것이 목표다.

 

접근 가능한 여행에서 장애는 사회에서 구분 짓는 장애와 함의를 달리한다. 여행에 있어 불편을 겪는 모든 사람을 장애인으로 규정할 수 있다. 결국 관광시설과 사회적 인식을 포함한 여행의 장벽을 최소화하는 여행 환경을 만드는 것이 접근 가능한 여행의 과제다. 

 

여전히 높은 여행 장벽

 

“장애인은 이동이 어려우므로 여행을 가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이 없을 것이다”, “볼거리 위주의 단체 관광을 선호할 것이다”라는 말은 섣부른 단정이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 따르면 조사에 참여한 장애인의 절반 정도가 여행(관광)을 선호한다고 답했다. 보행환경, 교통수단 이용 환경이 나아져 장애인의 90%가 혼자서 이동할 수 있다. 개별 관광에 대한 수요도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수요가 늘었다는 말이 편의시설이 충분하다거나 여행 장벽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의미는 아니다. 여행작가 정윤선 씨는 제주만 해도 수많은 여행 안내서가 있지만 장애인을 위한 것은 찾아볼 수 없다고 말한다. 대형 여행사 중 관광 약자를 고려한 여행 상품은 극소수이다. 유니버셜 디자인 투어 등 일부 여행사에만 있다.

 

저비용 여행도 비장애인보다 훨씬 가기 어려운 구조이다. 국내 숙박업소에도 장애인용 객실이 있지만, 관리가 부실하거나, 오히려 따로 두고 있어 혼자 여행을 가더라도 트윈룸, 더블룸에 묵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장애인용 객실은 1박에 기본 6 만원, 20 만원까지 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기내 휠체어를 보유한 항공만 이용할 수 있어 항공사 선택에 제약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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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기 휠체어 보유 현황 ⓒ 세계일보

 

 접근 가능한 여행을 위해서는

 

“플러그 소켓, 욕실의 수도꼭지, 잼을 담은 병, 공항의 안내판은 디자이너가 의도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해 줄 수 있다.”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에 나오는 구절이다. 여행지에서 시설물의 디자인은 문화의 많은 것을 이야기해 줄 뿐만 아니라 ‘경험할 수 있는지 없는지’의 문제를 결정짓기도 한다. 여행지의 버스, 숙소, 해변, 박물관을 경험할 수 있으려면 우선 물리적 접근이 가능해야 한다.  

 

유니버셜 디자인은 물리적으로 접근 가능한 여행지를 위한 필수 요건이다. 유니버셜 디자인은 평등, 사용상의 편의, 공간의 확보를 기본 원칙으로 하며 나이와 장애 유무에 상관없이 모두가 이용하기 편리한 설계와 디자인을 추구한다. 완만한 경사로, 다양한 높이의 망원경, 휠체어가 지나다닐 만큼 넓은 객실 복도는 모두 유니버셜 디자인의 사례이다

 

예로 오사카 ‘만남의 정원’은 유니버셜 디자인을 토대로 만들어진 공원이다. 공원에는 음성 안내가 가능한 촉각지도가 설치되어 있다. 연못은 어린이들도 물을 만질 수 있는 높이로 만들어졌다. 물소리를 즐길 수 있고, 식물을 먹어 볼 수 있는 정원도 있다.

 

이처럼 유니버셜 디자인은 장애인을 위한 특별한 시설이 아니라 장애인도 불편 없이 이용할 수 있는 편의시설을 만드는 일이다. 장애인이 다니기 편한 여행지는 노인과 어린이 등 관광 약자들에게도 접근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내 여행 환경이 유니버셜 디자인의 원칙을 제대로 따르고 있는지는 미지수이다. 특히 숙박업에서, 숙소 135곳 중 장애인 이용 가능 객실이 전체의 0.5% 이상인 곳은 97개로 적지 않다. 그런데도 숙소 이용에 불편함을 겪는 장애인들이 많다. 편의 시설이 설치되었다고 밝힌 숙소여도 막상 가보면 규정에 맞지 않은 설치, 제대로 된 이해 없는 장애인 편의 객실이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편의 시설 확충 여부는 신뢰도가 낮아 실제 장애인이 방문했던 곳이나 사진으로 확인이 가능한 곳을 찾아야만 한다.

 

현재 우리나라에도 BF(장애물 없는 생활환경) 인증제가 도입되었고 신축 공공건물 중심으로 시행되고 있다. 이를 보완하는 한편, 인센티브를 통해 숙소 등 민간 영역에까지 확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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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Tourisme and Handicap’ 라벨. 인증된 관광시설의 편의시설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음

 ⓒ Tourisme and Handicap 홈페이지

 

 

물리적 접근성 향상과 더불어, 접근 가능한 여행 정보의 취합성과 통일성이 개선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홈페이지 등을 통해 교통, 숙소 등 접근 가능한 여행 정보를 제공한다. 그러나 지자체별로 수집되는 여행지 정보는 서로 다른 기준을 적용하고 있어 통일성이 없다는 지적이다. 고정된 기준이 없으며 비장애인 조사원의 주관적인 판단이 가미되어 장애인를 포함한 관광 약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정보도 부족하다. 결국, 블로그나 다른 장애인의 경험 등 소수의 비전문적 소스에만 의존해서 여행 준비를 할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관광 약자에 대한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 접근 가능한 여행을 위한 편의시설은 장애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관광 약자 모두를 위한 시설이다. 이는 관광지와 관광 관련 시설 개선에서도 고려해야 할 전제이다. 특히 고령화 시대로 접어들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접근 가능한 여행은 노년 계층을 관광시장으로 빠르게 흡수할 기회임에도 여전히 관광 약자에 대한 사회적, 제도적 인식은 저조하다.

 

사회적 인식 개선이 저절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관광 시설 및 관광 서비스 제공 종사자들에게 접근 가능한 여행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이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관광 산업의 성장 차원에서 이해 당사자들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

 

접근 가능한 여행을 위한 움직임, ‘휠체어로 떠나는 여행’

 

접근 가능한 여행에 대한 인식은 시작 단계이지만, 제도 이전에 수많은 필요와 움직임이 있다. 이 중 장애인여행문화연구소 ‘휠체어로 떠나는 여행’은 여행사가 아닌 ‘실험실’로써 접근 가능한 여행문화 조성을 위한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

 

지난 3월에는 시민청 바스락홀에서 장애인 여행 토크 콘서트 ‘여행 떠나자’를 주최했다. 토크 콘서트는 실제 장애인 여행가들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여행에 대한 욕구가 있는 장애인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데, 어떻게 여행을 시작할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기초적인 정보와 용기를 주기 위해 시작했다고 한다. 4월에는 ABC 캠핑에 참여하여 청년 장애인 4명과 도시 캠핑을 진행하였다. 캠핑 전문가들에게 텐트 설치법, 텐트의 종류, 휠체어 사용 장애인들에게 적절한 캠핑 장비들에 대한 강좌를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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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떠나자’ 토크콘서트 ⓒ 김한겸 기자

 

“여행은 단순히 유람하거나 관광을 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무언가를 눈으로만 보는 관람/유람은 여행의 일종일 뿐, 눈으로도 보고, 만져보고, 들어보고, 느껴보는 것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이 여행이라 생각합니다. 여행이라는 주제로, 여행이라는 문화 콘텐츠로 가능한 많은 도전과 실험을 해서 장애인들이 여행을 즐기고, 여행을 통해서 삶을 변화시킬 수 있기를 바라는 목표에서 이러한 시도들을 이행했습니다” 

 

장애인문화연구소의 홍서윤 씨는 장애인 여행가로서, 적어도 내가 다녀왔던 장소는 수월하게 다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휠체어로 떠나는 여행’까지 운영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많은 시도들이 없었던 길을 만들고 있다. 여행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에서 차별받지 않고 불편을 겪지 않을 수 있는 사회로 이행할 수 있기를 바란다.

 

* 전남 순천 ‘순천만 생태공원’은 멋진 절경이 있을 뿐만 아니라 관광 약자가 가기 좋은 열린 관광지이다. 해외 여행지로는 스위스가 관광객을 위한 편의시설이 관광 1등 국가에 손색없다고 한다. 

 

*기사는 장애인여행문화연구소와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작성되었다.

 

글. 가오나시(ay713@naver.com)

기획. 이설, 가오나시, 상습범, 샤미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