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에는 매년 문제 되는 이야기들이 돌고 돈다. 사골처럼 우려져 지겨울 법도 한데 문제는 해결되는 게 아니라 해를 거듭할수록 막장으로 치닫는다. 그중 대표적인 이야기가 ‘선후배 문화’다. 선후배 ‘문화’랄 것도 없다. 사람들은 이미 이에 대해 ‘똥군기’라는 단어를 쓰며 조롱하고 있다. 지난 22일 ‘그것이 알고 싶다’ 방영을 보고 전국의 대학생들은 또 한 번 똥군기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표했다. 반응들을 보면 대학 내 군기 잡기가 나쁘다는 건 너도 알고 나도 아는 사실인 듯하다.

 

그러나 학생회에선 솔선수범하여 이러한 문제를 예방해야 함에도 오히려 나서서 일진 행세를 하고 있다. 교수님들은 알면서도 방관한다. 그러니 과 행사 불참 시 성적에 불이익을 주는 경우가 왕왕 있는 것이다. 이쯤 되니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이유가 궁금해졌다.

 

‘사회생활’이라는 포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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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생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니까 그냥 견뎌 ⓒ 서울예대 대신 전해 드립니다

 

‘서울예대 대신 전해 드립니다’ 페이스북 페이지에 위 사진과 같은 글이 게시됐다. 글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대학 내 선후배 문화로 상처받은 학생들은 순식간에 ‘우물 안 개구리’로 격하된다. 불행 배틀을 하자는 것도 아닌데 사회에서 겪는 피로감이 대학 내의 그것보다 크다며 한 수 가르치려고까지 한다. ‘사회구조’ 라는 말을 남발하며 근엄한 어른인 척도 빼놓지 않는다. 폭력에 동의하지 않으면 우린 세상 물정도 모르고, 근엄하지도 않은 철부지가 된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논리적 비약이 이뤄지는 건, 선후배 문화를 위계질서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현재 대다수 대학에서 전통처럼 이어져 오는 선후배 문화는 대부분 십 대들의 학교폭력과 별다를 게 없다. 학생회에선 신입생들에게 40만 원 내외의 학생회비를 명목도 없이 ‘삥’뜯는다. 개개인의 건강 상태가 어떤지는 안중에도 없이 술을 강요한다. 별것도 아닌 일로 얼차려를 준다. 여성이라면 사태는 더 심각하다. ‘넝담~ㅎ’이라 불리는 성희롱까지 견뎌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들을 과연 학교폭력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선배’님’들은 폭력을 사회생활이라며 은근슬쩍 무게를 싣는다. 어쩌면 십 대들의 왕따 문화보다 비겁하고 위선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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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겁한 변명입니다! ⓒ 영화 ‘실미도’

 

포장할 수 있는 폭력은 없다. 그딴 게 사회생활이면 우리는 더 큰 부당함도 용인하며 살아야 한다. 살인자 유영철은 “요즘 여성들이 몸을 함부로 하는 것 같아 살인했다”며 본인의 범죄가 사회문제에 경종이라도 울리는 양 착각을 했다. 수많은 독재자는 자신을 애국자라고 했다. 그들과 똑같이 되고 싶은 게 아니라면 더러운 것을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습관부터 버려야 한다.

 

‘좋은 학교는 안 그래’라는 변명

 

분명히 해둬야겠다. 여기서 말하는 ‘좋은 학교’란 서울 소재 명문대를 가리킨다. 내가 내린 정의가 아니다. ‘그들’이 붙인 정의다. 폭력이 나쁘다는 걸 알면서도 해결보단 방해만 하는 주범인 ‘그들’ 말이다. 그들은 흔히 “지잡대나 저러고 놀지 명문대에서 저러는 것 봤냐”, “지잡대가 또”라는 말을 하며 논점을 흐린다. 올해 서울 소재 대학에서 일어난 똥군기 사건 몇 가지를 보여줘도(링크1, 링크2, 링크3) 그들은 ‘기-승-전-지잡대’를 외칠 것이다. “엄한 명문대까지 싸잡지 말아달라”는 말은 덤이다. 그렇게 말하는 게 편하기 때문이다. 위를 보고 저항하기보다 지방대생에게 잔소리하는 게 훨씬 편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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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웹툰 ‘복학왕’이 그리는 지방대의 모습 ⓒ 네이버 웹툰 ‘복학왕’

 

기안84 작가의 ‘복학왕’은 한술 더 떠 서울 소재 대학에서 일어난 일을 지잡대의 일인 양 왜곡해서 그린다. 작품에 묘사된 ‘등록금 한 번 더 내기 캠페인’, ‘성행위 묘사 환영회’사건은 각각 숭실대학교와 세종대학교에서 일어났다. 그런데도 주인공은 “엄마 미안해요. 그래서 그렇게 공부 열심히 하라고!” 라며 자학을 한다. 배경인 기안대학교는 ‘등록금만 주면 받아주는 지잡대’로 설정돼있다

 

고등학생 때 어른들이 했던 말을 똑똑히 기억한다. 대학만 가면 인생이 달라질 거라는 부류의 말. 그 말들이 유효한가? 생각해보면 그 말들은 책임감 없는 희망 고문에 불과했다. 이제 어떤 사람들은 “더 좋은 대학에서는 그런 고통 받을 일이 없다”는 환상으로 선후배 문화 개선을 방해하고 있다. 선배에게 말대답하고, 대자보를 쓰느니 그 시간에 편입준비를 하라고 말한다.

 

수능을 못 봐서 선배에게 폭력을 당해도 되는 학생은 없다.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남을 괴롭히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내가 노력한다고 범죄가 예방되지 않는다. 또한, 포장될 수 있는 범죄도 없다. 학교폭력은 범죄고, 스무 살이 넘은 후에 행하는 모든 폭력은 십 대 시절보다 더 강한 처벌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그 폭력엔 피해자의 잘못은 없다.

 

글. 샤미즈(ndhhdm9019@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