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에 위치한 상가 화장실에서 한 여성이 살해당했다. 살인범은 30대 중반의 남성, 그는 체포되고 나서 “평소 여성들에게 무시당해와서 더는 참을 수 없었다”고 진술했다. 애인과 함께 데이트 중이던 20대 여성이, 강남역 번화가에서, 처음 본 남성에게 칼에 찔린 이유는 그것이었다. “여자들이 나를 무시하는데, 너도 여자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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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서인 페이스북 캡쳐

 

단지 여성이기 때문에 범죄의 표적이 되는 건, 사실 익숙한 일이다. 성폭행, 몰카 범죄, 데이트 폭력, 가정 폭력의 피해자 성비가 이를 증명한다. ‘#살아남았다’는 문구로 추모를 하는 건 이 때문이다. 그때 그곳에 있던 게 나였다면, 피해자는 내가 되었을 거란 사실을, 여성들은 잘 알고 있다. 나는 당장 내일 밤 나의 귀갓길이 안전하다고 100% 자신할 수 없다. 경험적으로도 통계적으로도 그렇다. 당신 역시 ‘여자’가 밤늦게 돌아다니면 안 된다는 말은 수천 번도 넘게 들었지만, ‘남자’가 밤늦게 돌아다니면 안 된다는 말은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여성 살인(femicide)이다. 페미사이드는 여성이 여성이란 이유로 살해당하는 것을 의미한다. 살인범은 한 시간 동안 화장실 근처에서 칼을 숨기고 기다렸다. ‘여성’을. 강남역 살인사건은 여성혐오가 극단적으로 표출된 형태의 범죄다.

 

그게 바로 여성혐오 범죄다

 

그럼에도 강남역 살인사건에 ‘여성혐오’ 딱지를 붙이는 것을 막으려는 이들이 있다. 경찰은 “여혐이 아닌 정신질환 문제”라 말했고, 미디어에선 ‘여혐 아닌 피해망상’이란 제목을 달고 기사가 나왔고, 이에 동조하여 이번 사건을 여혐 범죄로 몰아가지 말라는 남성들이 있다.

 

“(가해자가) 여성에게서 피해를 당한 구체적 사례가 없어 피해망상으로 보인다. 과거 정신분열 진단을 받았는데 최근 약을 복용하지 않으면서 증세가 악화돼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추정된다.”

 

살인범이 정신질환자라고 해서, 이번 사건이 ‘여혐 범죄’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가. 살인범의 피해망상은 왜 여성을 향했을까? 갈 곳 없는 분노가 약자로 향하는 건, 약자를 자신과 같은 ‘사람’으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여성을 주체로, 같은 인간으로 보지 않는 걸 여성혐오라고 한다. 가해자의 정신병력은 그의 여성혐오가 극단적인 형태로 표출되는 데 영향을 미쳤을 뿐, 이 사건은 ‘여성혐오’와 떼어 놓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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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여혐 범죄’라고 말하는 것을 꺼리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 기저에는 이번 사건이 젠더 문제로 환원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가해자가 굳이 여성을 타깃으로 한 건 약육강식의 논리에 따른 것일 뿐, 여성혐오는 아니다”는 궤변까지 나온다. 약육강식에서 ‘약’이 여성, ‘강’이 남성이 되는 젠더 권력은 모른척 하고, “이번 일로 여자 남자 나눠서 싸우지 맙시다”고 말한다.

 

젠더 문제는 생물학적 여성과 남성의 대립이 아니다. 가부장제 사회의 남성성에 대한 저항이다. ‘남성성’에 대한 비판을 ‘성별 갈등’으로 치부하는 이들은, “남혐 하지 말라”며 저항하는 약자의 입을 막는다. 그렇게 그들은 여성 억압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고 있다.

 

‘일반화’를 말하기 전에

 

터놓고 말하자. 그들의 본심은 이럴 테다. ‘남성’ 가해자에 의한 ‘여성’ 피해자가 부각되면, 남성들은 여성이 불특정 다수의 남성을 향해 느끼는 공포심을 인정해야 한다. 그 공포를 인정한다는 건, 남성인 내가 밤거리를 걷을 때 내 앞에서 눈치를 보며 걸음을 빨리하는 여성을 이해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게 도저히 안 되는 거다. 그러니까 그냥, “그냥 저놈이 사이코패스야”라며 살인범을 찍어내기 한 뒤 자신과 적극적으로 분리하거나, “일반화하지 마. 나를 잠재적 가해자 취급하지 말라고”라고 하며 여성을 비난한다.

 

여성은 당연하게 잠재적 피해자가 되지만,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취급하는 건 엄청난 무례로 여겨진다. 수없이 많은 여성이 “강간당하지 않게 조심해”란 말을 듣지만, 어떤 남성도 “강간하지 말아야 해”란 말을 듣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사회의 모순은 여성이 감당해야 할 몫으로 남겨진다. 언제 누구에 의해 피해자가 될지 모르지만, 자칫 조심하는 걸 티 냈다간 남자들에게 불쾌하다며 욕을 먹는다. 조심해야 하지만, 조심하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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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디어오늘

 

물론 살인, 강간 및 성희롱, 강도, 폭력의 의도가 없는 ‘멀쩡한’ 남성인 내가 범죄자 취급을 받는 건 분명 기분 나쁜 일이다. 하지만 그 분노가 여성을 향해선 안 된다. 무엇이 여성을 ‘조심’하게 했는지 고려하고, 거기에 분노해야 한다. 적어도 강남역 살인사건에 대해 “나는 운이 좋아 살아남았다”고 말하는 여성들을 두고, “모든 남자가 그렇진 않아”라고 말하면 안 된다는 뜻이다.

 

강남역 살인사건 피해자에 대한 추모가 줄을 잇는다. ‘페미사이드’ 문제에 대한 공감도, ‘잠재적 피해자’로 살아온 여성들의 연대도 가시화되고 있다. 지금은 필요한 건 페미사이드 희생자에 대한 추모다. 추모가 끝나면 그 이후를 생각해야 한다. 단지 여자였을 뿐인, 잠재적 피해자와 실제 피해자를 없애기 위해 사회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말이다. 잠재적 피해자가 없으면 잠재적 가해자도 없다. 바로 분노하고 함께 연대하자. 무엇이 그렇게 두려운가.

 

특성이미지. ⓒ 미디어오늘

 글. 달래.(sunmin532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