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여성 A 씨가 살해당했다. 새벽 1시 강남의 ‘번화가’에서. 살해 동기는 다음과 같았다. ‘여성이 나를 무시한다.’ 여성혐오에 의한 살인 사건이었다. 많은 여성이, 그 자리에 피해자가 아닌 자신이 있었다면 자신이 피해자가 될 수 있었음을 이야기한다. 남성 몇몇도 자신 역시 잠재적 가해자임을 밝히며 반성과 성찰의 이야기를 조심스레 던진다.  고함20의 [젠더 에세이]는 그 이야기의 연장선이다. 

 

#살女달라는 자 A

 

내가 왕따를 당한 이유는, 정확히 말해 일주일에 두세 번 2층 화장실에 불려가 얻어맞아야 했던 이유는 아주 간단명료했다.

 

“니가 자꾸 말대꾸하잖아.”

 

추측이 아니다. 가해자가 직접 한 말이었다. 실소가 나오겠지만, 그 말을 한 가해자도 나도 모두 초등학생이었다. 정확히 말해야겠다. 가해의 주체는 남자애들이었고 폭력을 사용한 것도 남자애들이었다. 초등학교 동급생 사이에 위계질서가 생기는 것도 우습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저 위계질서는 남자애들 사이에선 효력이 없었다. 자기들끼리는 말대꾸고 뭐고 욕설을 하며 싸워도 다음날 같이 급식을 먹고 피씨방에 갔으니까.

 

폭행이 계속되자 어른들도 눈치를 챘고 담임선생님은 가해 학생과 피해 학생이 함께 있는 교실에서 가해학생들에게 근엄하게 훈계를 했다. 훈계 끝에는 나를 바라보며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을 했다. “너도 그만 좀 징징거려라. 오죽했으면 애들이 때릴까

 

중학생이 된 후, 내가 왕따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애는 “너 진짜 남자애들한테 맞았어? 어떻게 하면 남자한테 맞고 다니냐”라며 웃어댔다. 남자에게 맞는 여자는 징징거리는 나약한 존재고, 여성으로서 매력이 없는 존재라는 인식 때문에 난 내가 겪은 일은 어디가서 말하면 안 될 창피한 일로 치부했다.

 

이제는 그게 창피한 일이 아니라는 것 쯤은 안다. 하지만 실제 맞았던 것보다, “여자가 남자한테 맞는 건 뭔가 이유가 있겠지”라는 식의 2차 폭력이 더 아팠던 건 사실이다. 똑같은 폭력인데 남자가 남자를, 여자가 여자를 때린 게 아니면 이상한 반응을 보였다. 그럴리가 없다는 둥 도대체 어떤 말대꾸를 했길래 남자애들이 여자애한테 손을 대냐는 둥 어떻게든 폭력을 정당화하기 위한 말들뿐이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어쩐지 폭력과 말대꾸를 동일 선상에 두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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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런 그림에만 익숙하다. 저기서 가해자만 남성으로 바꿨을 뿐인데 책임은 너무나 쉽게 피해 여학생에게로 옮겨간다 ⓒ KBS2 ‘후아유 – 학교 2015’

 

만약 유년시절이 아니라 성인이 된 후에 그 정도 수의 남자들에게 두세 시간가량을 맞았다면 어땠을까 생각한 적이 있다. 상상의 끝은 처참했다. 그 후로 나만의 렌즈를 끼고 바라본 세상엔 두 부류의 사람만 존재했다. 그때 그 장소에 있었다면 폭력에 가담했을지 아니면 최소한 모르는 척이라도 했을지. 그게 전부다. 신입생 때 억지로 술을 먹이려고 했던 선배, 가고 싶지 않은 과 행사에 참여하라고 강요했던 과대, 여자애들 외모 품평을 했던 학원 남자애들, 모두가 잠재적 가해자였다. 그때 그 자리에서 나를 적극적으로 도와줬을 것 같은 사람은 애석하게도 본 적이 없다. 남동생에게도 가끔 묻는다. 넌 어땠을 거 같냐고. 동생은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폭력의 발생도, 2차 폭력도, 심지어 지금 갖고있는 사고방식도 내가 여성이기 때문에 생겨난 것들이었다. 여자애가 감히 남자애들한테 대드니까 그런 꼴을 당하는 거고 여자니까 조심 또 조심해야 하는 거였다. 그게 이 사회에선 너무나 당연한 룰이였다. 하지만 그 당연하다는 생각이 바뀌지 않으면 난 언제든 2층 화장실에 쓰러져있던 열한 살의 내가 될 수 있다. 달라진 게 있다면 살아서 집에 돌아오리라는 보장이 없어졌다는 것뿐이다. 그건 생존과 관련된 문제이기도 하다.

 

#살女달라는 자 B

 

나의 이름은 내가 태어나기 전에 이미 정해져 있었다. 하지만 그 이름은 안타깝게도 호적에 오르지 못했다. 남자 아이의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친할아버지께서 첫 손주를 기다리며 당신이 좋아하는 한자를 포함한 남자 이름을 지어놓으셨던 것이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여성’이란 내 성별은 타인이 정해 놓은 틀에 벗어나 있었다.

 

초등학교 입학 후, 운동회에서 매년 학급 대표로 나갈 만큼 운동을 곧잘 했고, 좋아하기도 했다. 점심시간만 되면 교실에 앉아있는 대신 공을 들고 운동장으로 나갔다. 하지만 운동은 주로 ‘남자아이’가 하는 것으로 정해져 있었고, 나는 그 틀에 들어가기 위해 노력했다. 방법은 그들이 원하는 ‘여자아이’가 되는 것이었다. 운동신경이 좋았지만, 남자아이들보다 더 잘하려고 하지 않았다. 여자는 남자보다 달리기가 느리다는 이유로 골키퍼만 도맡아도 조용히 인정하고 만족했다. 내가 원하는 운동을 하기 위해서는 그 방법밖에는 없다고 생각했다.

 

아슬아슬한 공존은 중학생이 된 후 깨지기 시작했다. 사춘기를 거치면서 ‘남성’과 ‘여성’에 대해 민감해졌고 그 틀은 공고해졌다. 같이 운동을 하던 남자아이들은 어느 순간 ‘운동하는 여자아이’인 나를 놀리기 시작했다. 실력은 좋지만 못생긴 남자 축구선수의 이름이 내 별명이 되었다. 운동하고 있을 때마다 항상 별명과 조롱 섞인 웃음소리가 함께 했다. 운동을 잘하는 남자아이는 부러움의 대상이었지만 운동을 잘하는 여자아이는 놀림의 대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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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_입으면_기분이_조크든요 ⓒ mbc 뉴스데스크 

 

틀 안에 들어가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도, 그럼에도 틀로 들어가지 못하는 것도 모두 여성이라는 이유 하나였다. 여성이기에 가능성을 박탈당하는 경험은 하나둘씩 모여 ‘내’가 아닌 ‘여성’으로 살아가게 했다. 여자니까 운동을 하면 안 되고, 여자니까 이런 옷을 입으면 안 되고, 여자니까, 여자니까.

 

‘살女주세요’라고 하며 생존을 외치고 있다. 이 외침에 여성만 생존을 위협받는 것이 아니라고 반박한다. 하지만 물리적인 폭력이나 목숨만이 생존의 기준은 아니다. 모두가 마땅히 누려야 하는 것을 여성이라는 이유로 누리지 못하는 것도 생존의 위협이다. ‘여성’이 아닌 ‘나’라는 존재로 살아갈 수 있는 ‘생존’이 필요하다.

 

글. 샤미즈, 이켠켠

편집. 콘파냐(gomgman32@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