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 있는 일만 찾아다녔다. 찾아다니고, 해부해서 먹어치웠다. 그러다 온갖 의미로 꽉 차서 숨이 막혔다. 좀 비우고 싶다. 그냥 막 걷고, 어디든 들어가고, 무엇이든 먹고 마시고 싶다. [다녀왔다고함]은 이런 발버둥의 기록이다.

 

낮의 강남역 10번 출구

 

5월 22일 일요일 오후 2시. 원래 사람이 많은 강남역이라지만, 10번 출구는 강남역 살인 사건이 있었던 뒤 후 많은 사람으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신기한 듯이 쪽지를 읽는 사람들, 꽃을 놓고 가는 사람들, 추모하는 사람들, 어렵게 쪽지를 적고 붙이는 사람들. 많은 사람이 그곳에 존재했고 이번 사건에 대해 같이 분노했으며 함께 슬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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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10번 출구의 모습

 

그곳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역시 수많은 쪽지였다. 사회에 만연한 ‘여성혐오’가 정신질환자의 범죄 행위로까지 이어진 이 안타까운 사건을 추모하고 알리기 위해 많은 내용의 쪽지가 붙어 있었다. 쪽지는 대체로 여성혐오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얘기하는 사회에 소리치는 듯한 여성들의 목소리가 담겨있었다. 여성 본인도 범죄에 희생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 그리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라는 목소리였으리라.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하늘에서는 행복하세요”

“온 나라가 범인을 조금이라도 옹호하려고 안달 난 한국의 현실”

“단순한 사건이 아닌 여성혐오 사건이라는 것을 알아주세요”

“살女주세요, 너는 살아男남았잖아”,

“Misogyny out”

“살고 싶습니다. 여성혐오를 멈춰주세요”

 

하지만 추모를 하고 슬픔을 공유하는 무리의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10번 출구 뒤 추모의 빈 공간에는 조금은 다른 피켓을 든 사람들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었다. 주로 남성이었던 이들은 마치 그들 뒤의 수많은 쪽지의 내용을 비웃듯 여성 혐오를 없는 것으로 간주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두려움에 떨고 울분을 토하는 수많은 쪽지를 무시하고 ‘나는 행복하니 ‘지금처럼’ 살면 돼. 넌 도대체 뭐가 문제니?’ 하고 묻는 듯했다.

 

“억울하게 죽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러나 추모가 남성과 여성의 편 가르기로 변질하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사이 좋게 지내요!”

 

피켓을 들고 있던 사람들이 대체로 하는 말들은 ‘혐오는 싫다.’ , ‘나는 잠재적 가해자가 아니다’의 얘기였다. 사회적 맥락을 읽지 못하고 자기 변호하기에만 바쁜 듯한 피켓들이었다.

 

또 한편에선 언쟁이 벌어지곤 했다. 많은 여성의 틈 사이에서 몇몇 남성들이 화가 난 듯이 ‘이것은 여성혐오 범죄가 아니다. 나도 잠재적 가해자로 보는 것이냐? 기분 나쁘다. 너네의 논리는 틀렸다’라는 이야길 했다. 여성들은 이것이 왜 여성혐오 범죄인지 계속 설명했다. 통계를 얘기하기도, 자신들이 어떤 차별적인 대우와 성희롱을 일상에서 겪고 있는지 설명했다. 하지만 논쟁의 열기는 쉽게 수그러들지 않았다. 흥분한 남성이 여성에게 위협을 가할 뻔하기도 했다.

 

결국 경찰이 출동했다. 피켓을 든 사람들에게 ‘여기서 꼭 이러셔야 하냐’고 물었다. 하지만 비슷한 논쟁은 여전히 이곳저곳에서 계속됐다.

 

밤의 강남역 10번 출구

 

같은 날 오후 7시 30분, 밤이 됐다. 다시 찾은 10번 출구엔 폴리스 라인이 처져 있었다. 사람이 많이 몰린 탓인지 경찰이 안전구역을 정해 선을 그어놓았다. 사람은 여전히 많았지만, 성비는 바뀌어 있었다. 여성들보다 남성들이 많아졌다. 많은 남성이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마스크의 의미가 궁금했지만, 그 궁금증은 미뤄두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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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켓을 든 사람들의 증가와 폴리스 라인

 

저녁이 된 10번 출구는 성비만 달라진 것이 아니었다. 피켓을 든 사람들이 더 많이 등장했다. 또한, 피켓을 든 남성들과 소위 ‘일베충’으로 불리는 사람들을 저격하려는 듯한 화환도 등장했다. 현장 취재를 나온 기자의 모습도 한편에 보였다. 기자는 방송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언쟁은 끊임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낮에는 많은 여성에게 소수의 남성이 둘러싸여 있던 반면, 밤이 되니 많은 남성 사이에 소수의 여성이 둘러싸여 있었다. 둘 사이 논쟁은 여전히 행해지고 있었다. 주제 역시 낮의 그것과 같았다. 작은 체구의 여성이 이것이 왜 여성혐오 범죄인지 큰 남성들에게 둘러싸여 설명하고 있었다. 떨리는 목소리로 설명하는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다. 남성들은 여전히 화가 난 듯 여성들을 바라보았고 계속해서 ‘나는 잠재적 가해자가 아니다’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저녁이 되자 10번 출구 근처에 자유발언대가 형성됐다. 페이스북 페이지 ‘강남역 10번 출구 자유발언대‘에서 개최한 자유발언대였다. “강남역 살인 사건은 여성혐오 범죄이다”라는 피켓을 든 사람들이 줄지어 섰다. 이를 지지하고 구경하러 온 사람들이 모이기도 했다. 자유발언답게 즉석에서 발언할 사람들을 모았다. 학생으로 보이는 듯한 한 여성이 마이크를 잡고 첫 발언을 열었다.

 

간략한 내용은 이랬다.

 

“흔히 남녀 가리지 않고 여성들에게 ‘밤길 조심해’, ‘집에 도착하면 톡 해’, ‘밤에 늦게 돌아다니지 마. 위험해’ 등의 말을 한다. 남성들에게는 하지 않지만 주로 여성들에게 하는 말들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여성들에게 어떤 위협이 가해질지 이미 느끼고 있다. 즉, 이런 얘기를 하는 남성들도 이미 다른 남성들을 ‘잠재적 가해자’로 보는 것이다. 그런데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저런 얘길 한 걸 인정하면서도,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 모든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몰아가지 말라고, 여성혐오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굉장히 모순적인 발언들을 하는 거다”

 

한편에서는 슬픈 연대의 발언들이 한편에서는 끝없는 논쟁이, 다른 한편에선 ‘여성혐오는 없다’며 피켓을 든 사람들이, 그리고 경찰들이, 구경꾼들이, 행인들이 즐비했다. 강남역 10번 출구는 혼란스러웠다. 마치 한국 사회의 여러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듯이.

 

글. 엑스(kkingkkanga@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