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여성 A 씨가 살해당했다. 새벽 1시 강남의 ‘번화가’에서. 살해 동기는 다음과 같았다. ‘여성이 나를 무시한다.’ 여성혐오에 의한 살인 사건이었다. 많은 여성이, 그 자리에 피해자가 아닌 자신이 있었다면 자신이 피해자가 될 수 있었음을 이야기한다. 남성 몇몇도 자신 역시 잠재적 가해자임을 밝히며 반성과 성찰의 이야기를 조심스레 던진다. 고함20의 [젠더 에세이]는 그 이야기의 연장선이다. 

 

#살아男은 자 A

 

초등학교, 아마 4학년 때였을 거다. 학교에서 성추행이 ‘놀이’로 유행을 했다. 남학생들이 여학생들의 치마를 들치거나, 엉덩이를 만지고 도망가는 식이었다. 좀 더 ‘과감한’ 녀석들은 가슴을 만지기도 했다더라. 이상한 건 어떤 선생님도 그것을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는 거다. 고추를 만지고 도망가는 식의 ‘복수’도 물론 없었다(사실 그런 건 생각할 수도 없었다).

 

중학교 땐 누가 교실에서 포르노를 틀었다. 레이프 포르노라는 걸 그때 처음 봤다. 열일곱도 안 된 남자아이들이 ‘강간씬’을 보며 미친 듯이 환호했다. 한 아이가 ‘난 국산이 좋다’느니 하며 중얼거렸다. 국산선호는 많았다. 많은 아이들이 자살한 여성의 ‘몰카 유출’을 보며 성기를 잡았다.

 

고등학교, 포르노 판타지는 종종 실제 여성을 향했다. “존나 맛있게 생겼네”나 “따먹고 싶다”가 길거리 여성들을 덮쳤다. 대학교, 술자리 음담패설에서 여자 연예인을 셀 수도 없이 침대에 눕혔고, 다음 타자는 선배, 동기, 자기들 여자 친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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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에게 섹스는 지상과제처럼 보였다. 정확히 말하면 ‘예쁜 여자와의 섹스’겠지. “존나 못생겼네”도 “존나 맛있게”만큼이나 흔했으니까. 역겨운 시간 속에서 우리는 그렇게 믿었다. 여자 후배와의 잠자리 상상을 떠벌리는 남자 선배는 ‘재밌는 형’이 됐고, 남자 선배들과 친하게 지내는 여자 후배는 자주 “쌍년”취급을 받았다. 그중 누군가는 ‘못생긴 주제에’라며, 그보다 더 한 취급을 당하기도 했다.

 

내가 거친 남성 집단들이 절대 특별하다 생각지 않는다. 그러니까, 이건 흔한 일이었다. 흔하고 계속되는 일. 군대, 훈련소에 모인 남자들은 자신이 얼마나 많은 여성과 잤는지 자랑했고. 복학, 남자 선배를 거부한 여 후배 하나가 또다시 “쌍년”이 됐다. 나도 그 아이가 “남자 후리고 다닌”다고 말했다.

 

누군가로부터, “무섭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두려움. 그렇다면 두려운 대상은 누구인가? 한 학년 40명 남짓의 작은 학과에, 두려워하는 여성도 두렵게 하는 ‘나’도 너무나 많았을 테다. 그리고 2016년 5월 17일 새벽 1시, 한 여성이 여자라서 살해당했다. 누가 그녀를 살해했는가? 하나의 개별 사건을 넘어서, 그 이전과 이후는?

 

누가 그녀들을 살해했는가? 누가 그녀들을 살해하고, 강간하고, 수많은 방법으로 찍어 눌렀는가? 그들은 왜 성욕 해소의 도구로 존재하고, 외모와 몸매로 평가당하며, 성녀와 창녀로 구분되고 순종적인 천사 혹은 괘씸한 마녀로 전락하는가? 한 성(性)을 전락시킨 사회의 맥락은 어떤 살해의 흔적과 그 문법이 같다. 뒤집어서, 우리의 ‘흔했던’ 폭력의 맥락 또한 어떤 살해의 문법에 맞닿아있다. 다시 묻자. 누가 그녀를 살해했는가? 이 지독한 가해의 문법은 누가 만들었는가?

 

기억해라. 당신과 내가 흘려온 숱한 ‘장난’들이 살해의 맥락을 만들어 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살해의 끔찍한 가담자다. 그렇게 너무나 많은 여성들의 시체 위에서 나는 오늘도 살아남았고, 숨 쉬듯 누려온 권력과 폭력이 그 생존의 기반이기에 이 살해의 고백마저 권력적이다.

 

#살아男은 자 B

 

유럽은 치안이 좋은 편이다. 허나 아시아 여행객들, 밤에 돌아다니기 좋아하는 한국인들도 밤거리를 혼자 걷지 않고 흑인을 보면 괜스레 ‘쫀다.’ 이는 실제로 인종차별을 겪기도 해서지만, 무엇보다 ‘이 나라에서 아시안은 약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처럼 ‘자신이 약자’라는 사회임을 인지하는 것이 바로 두려움이다. 또한 우리는 모든 유럽인들에게 ‘유럽인들은 전부 잠재적 인종차별주의자야’라고 하지 않는다. ‘유럽에서는 아시안이라는 이유로 인종차별을 겪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또한 이런 얘기를 들은 유럽인들은 ‘미안하다. 그 문제에 동감하고, 해결되어야 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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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차별로 문제 됐던 아베크롬비 모델의 인스타그램

 

이번 강남역 살인사건을 두고 많은 남성들이 ‘왜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모냐’라고 이야기한다. 허나 그것은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강남역을 메우고 포스트잇을 붙이고 SNS에서 무섭다고 댓글을 달고 공유하는 수많은 여성들은 두려움을 이야기해왔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은 약자, 죽여도 되는 사람, 울분을 풀어도 되는 존재로 여겨진다는 것이 두려운 것이고 그동안 자신이 겪었던 성폭행과 성추행, 차별적 발언 등의 경험을 풀어놓은 것이다. 여성들은 여전히 길거리에서 당신을 보고 ‘날 칼로 찌를지도 모르는 잠재적 가해자’라고 말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는 언제든지 칼에 찔리거나 차별을 당하거나 성폭행을 당할 가능성이 있고 그것이 너무 두렵다고 말하는 것이다.

 

결국 문제의 본질은 남성들이 보기에 ‘과격 페미니스트’로 보이는 사람이 얼마나 남성을 혐오하는지가 아니다. 메갈리아, 일베, 워마드 등의 집단도 본질이 아니다. 결국 당신들의 여동생, 누나, 어머니, 여자친구, 후배, 선배들이 두려움을 안고 세상을 살아왔고 두려워할 만한 일들을 겪어 왔다는 것이다. 그들은 그동안 쌓여있던 그 두려움과 말하지 못했던 비밀들을 이번 사건을 계기로 풀어놓았다.

 

나 역시 남성으로 태어나서 ‘왜 내가 남성으로 이런 일을 겪어야 해’라는 울분을 품은 바가 있다. 군대가 그러했고, 누군가를 책임져야 한다는 중압감이 그러했다. 훈련소에 있을 때 일이다. 우리 분대는 가장 마지막에 밥을 먹어야 했고, 밥은 남아 있지 않았다. 가장 먼저 먹은 분대가 엄청나게 많이 먹고 남은 건 버렸다는 소문이 퍼졌다.

 

물론 실제로 그런 일은 없었지만, 사실관계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 날 싸움이 일어났고, 분대장은 우리에게 ‘왜 피해자끼리 싸우냐’고 이야기했다. ‘차라리 나를 욕하고, 소대장을 욕하고, 중대장을 욕하고, 군대를 욕하라’고 이야기했다. ‘문제의 근원에게 뭐라 못하고 피해자끼리, 약자끼리에게만 분노하는 것을 부끄러워해라’고 이야기했다. 남성들이 ‘왜 우리 피해를 몰라주냐’고 생각한다면 여성들 역시 ‘왜 우리가 받는 피해를 몰라주냐’라고 이야기하고 있음을 이해하면 된다.

 

누군가는 남혐과 여혐의 문제로 보지 마라고 한다. 그게 옳든 그르든, 정말 그렇게 생각하길 바란다면 그렇게 보지 마라. 단, 단순히 개인이 갖고 있던 어떠한 특질 때문에 죽어야 했던 한 인간을 생각해라. 그리고 그 인간과 같은 특질을 갖고 있는 사람이 느낄 두려움을 생각해라. 설령 분노에 차서 ‘남자들은 모두 쓰레기야’라고 한들 어떤가. 그동안 남성들 역시 그런 식으로 ‘여자들은 모두 00야’라고 하지 않았던가. 또한 ‘남자들은 모두 다 늑대야’라고 직접 잠재적 가해자가 되지는 않았던가. 그래도 그것이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문제에 공감하고 함께 해결을 위해 노력하면 되는 것 아닌가. 그러면 자연스레 그런 시각이 없어질 것이다.

 

사람들이 그동안 겪은 문제가 있었고, 이번 일로 터졌고 분노했고 슬퍼했다. 이 이야기는 그뿐이다.

 

대표이미지. ⓒ 뉴시스

글. 인디피그, 감언이설

편집. 콘파냐(gomgman32@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