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취한 20대 여교사 몸 속 3명의 정액 … 학부형이 집단강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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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럴드경제

 

포르노 사이트의 카피가 아니다. 지난 3일 보도된 성폭행 사건의 뉴스 제목이다. 문장의 선정성과 질 낮음엔 변명의 여지가 없다. 안다. 당신이 특별히 여성주의자가 아니더라도 이 문장을 보면 필히 눈살을 찌푸릴 것이다.

 

그러나 직관적으로 다가오는 ‘선정성’은 기사에서 오히려 작은 문제다. 훨씬 심각한 문제들이 제목엔 집약돼있다. 바로 성폭력 사건에 대한 ‘(남성) 가해자 중심적’ 사고방식, 또한 (강간 피해자를 포함해) 여성 일반에 쏟아지는 한국 언론의 고질적인 여성혐오 문제다.

 

사실 이건 해당 기자, 언론사만의 문제도 아니다. 저 헤드라인의 배후에 존재하는 건 그것이 그러한 방식으로 ‘소비되도록 만들어온’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다. 그러니 당신이 혹시 ‘선정성’에 눈살을 찌푸렸다면, 당신은 응당 이 배후의 폭력에도 눈을 떠야 한다.

 

누군가는 물을 수도 있겠다. 저 문장의 어디가, 누구에 대한 폭력이냐고. 혹은 거기에 왜 ‘사회 전체’를 운운하는 거냐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문장 속 거의 모든 글자와 단어와 그 조합이 피해자와 그 이외 여성에 대한 폭력이다. 더불어, 그 폭력이 이미 사회에 만연한 혐오 정서를 반영한 상업적 전략의 결과라는 데에서 ‘사회 전체’ 또한 공조의 혐의를 벗을 수 없다. 그래서 정리한다.

 

1. 피해자의 “만취”는 왜 서술돼야 하나?

 

(1) 저항 불가의 상대를 성폭행했다는 포르노적 자극과 범죄적 상상력의 부풀림이다. 술 취한 여성을 강간하고 그 영상을 유포한, 소위 “골뱅이”로 불리는 포르노들이 국내에서 빈번히 유통됨을 생각해보자. 강간사건을 포르노적 자극으로 소비하는 보도 행태는 뭇 남성들이 행해온 그 범죄적 소비와 맞닿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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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네이버에서 ‘골뱅이’를 검색하면 ‘여자’가 나온다

 

(2) 강간 피해자가 “술에 만취한 상태”였다는 서술은 많은 경우 피해자에 대한 귀책사유로 적용된다. 사실 강간사건에서 피해자가 ‘어떤 상태였는지’는 부각될 필요조차 없다. 피해자가 저항을 했건, 안했건, 술을 마셨든, 안 마셨든 간에 강간은 강간이며 가해자는 면책 없는 범죄자다. 그러나 꽤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피해자에게도 책임이 있음”을 부르짖는다. “만취”는 어쩌면 그 말들이 집약된 결과물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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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살인 사건의 한 댓글 ⓒ  Global Project Egalite

 

2. 피해 여성의 “20대”는 왜 강조됐나?

 

(1) 한국에서 ‘20대 여성’이 처해있는 섹슈얼리티적 특수성을 생각해보자. 그들은 ‘성적 대상화’의 첨단에 서 있다. ‘남근 중심적’ 성욕의 가장 보편화된 대상이며, 갖은 방식으로 성적인 의미를 부여받는다. 인터넷에 득실거리는 성인 광고에 “20대 女”라는 글자가 얼마나 많이 등장하는가? 기사는 이 폭력적 상업전략을 그대로 답습하여 강간 피해자에게 ‘20대 女’라는 성적 긴장감을 부여했다. 명백한 2차 가해다.

 

(2) 또한 피해자의 연령대만을 강조하는 방식은, 사건에서 가해자의 무게감을 줄이는 동시에 피해자 개인을 ‘특정’한다. 자연스럽게 피해자는 전면으로 부각되며, 가해자는 뒤로 숨는다. 여성은 앞면으로, 남성은 뒷면으로 자리한다. 여성의 피해를 극대화하고, 남성의 가해를 최소화시킨다.

 

3. “여교사” “몸속” “3명의 정액”, 말이 필요한가?

 

(1) 말할 필요 없이 ‘범죄의 포르노화’다. ‘학부형 3인이 일으킨 성폭행 사건’을 ‘여성’과, 여성의 ‘신체(몸)’와, ‘집단 성교(성폭행)’, ‘체내사정’ 등의 소재를 통해 한 편의 포르노로 재구성했다. 피해자를 포르노의 주인공으로 만든 꼴이다. 최악의 2차 가해고, 나아가 여성 일반에 대한 폭력이다. 매체파워는 폭력을 확장하고, 재생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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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여성민우회

 

(2) 포르노의 주체가 된 “여교사”는 교사, 간호사, 스튜어디스 등 특정 직업군 여성에게 쏟아지는 이 사회의 ‘성적인 의미부여’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대목이다. 더군다나 “몸속의 정액”이라니. 포르노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방식을 젖혀두더라도, 우선 해당 정황은 사건 보도에 전혀 필요 없는 사설이다. 오히려 범죄 과정의 지나친 묘사, 즉 2차 가해의 일종이다.

 

4. … “학부형이 집단 강간”

 

배열의 문제다. 기사의 핵심이 돼야 할 가해 사실(학부형의 강간)이 ‘포르노적 묘사’의 첨언처럼 뒷면에 붙여진다. 반복이다. 가해사실은 축소되고, 피해는 과잉 묘사된다. 제목의 마침표에서 이렇게 기사는 하나의 거대한 포르노 산업이 된다. 이게 성폭력 기사가 한국에서 ‘팔리는’ 방식이다.

 

그런 기사. 그런 사회

 

문제가 된 인터넷 언론 ‘헤럴드경제’는 ‘트렁크녀’ ‘대장내시경녀’ 등의 여성혐오적 워딩으로 이미 유명하다. 그러나 문제는 당 언론사의 특수성이 아니다. 가해자 중심 워딩과 피해자의 과잉 부각 문제는 이미 많은 언론 매체에 제기되어온 문제다. 정도의 차이일 뿐, 대부분의 성폭력 기사는 그렇게 포르노처럼 ‘팔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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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사 하나의 문제가 아니다 ⓒ 한국여성민우회

 

그러니 ‘헤럴드경제’가 해당 기사를 삭제하고 사과문을 내걸었다 해도 문제는 잔존한다. 강간이나 성추행은 항상 순화되어 “몹쓸 짓”이 되고, 여성 비혼주의 때문에 “농촌 총각 딱지 떼기가 어렵다”는 얘기가 기사화되며, 남성 가해자의 범죄 동기를 마치 정당화의 도구처럼 쓰는 기사들도 판을 친다. 2016년에 우리는 그런 기사들을 읽고 있다.

 

그리고 부정할 수 없이 우리는 그 소비자들이다. 덧붙일 것 없이 서론을 반복하겠다. 그 폭력이 이미 사회에 만연한 혐오 정서를 반영한 상업적 전략의 결과라는 데에서 ‘사회 전체’ 또한 공조의 혐의를 벗을 수 없다. 2016년에, 우리는 그런 사회에 살고 있다. 강간이 포르노가 되는 사회에 말이다.

 

글. 인디피그(ghin280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