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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에서 언어 성폭력 사건이 고발됐다 ⓒ 정대후문 게시판

 

“또 고려대가” 하고 넘어갈 수도 있다. 그러니까 이번 ‘8인의 고려대 남성들’이 벌인 단톡방 언어 성폭력 사건에 관해서 말이다. “또 고려대”는 어쩌면 꽤나 설득력 있는 문장이다. 몇 년 전 의대 성폭행 사건부터 해서, 고려대가 페미니즘 청정지역이나 개념남 집합소 따위는 아니었으니까.

 

“헐, 고려대가?”라고 넘어갈 수도 있겠다. 이것도 꽤나 적절한 반응이다. 학벌주의 사회에서 고학력은 종종 인성의 뒷받침이 되기도 하니까 말이다. 고학력자들이 벌인 끔찍한 사건은 흔히 “넘나 의외인 것”으로 여겨지기 마련이다.

 

이 경우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음, 역시 학벌이 인성을 말해주진 않아! 그건 다시 이렇게 이어진다. 그러나 모든 고대인이 그렇지는 않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경계하며, 그래, 그렇게 ‘모든 한국 남자가 그렇지는 않지!’까지. 소위 ‘찢어 죽일’ 몇 명을 제외하면 말이다.

  

사건에 늘어선 반응들 중 많은 부분이 이 두 갈래 전철을 밟고 있다. “또”이거나 “헐”인 ‘고려대 인성’에의 질타와 더불어, 그에 맞서 ‘해당 학교, 해당 학과, 해당 가해자 몇 명의 문제일 뿐’이라는 ‘일반화 경계’들. 사실 둘의 배후는 같다. 이건 ‘나’와 분리된 ‘찢어 죽일 XXX’들의 문제라는 것.

 

물론 그들 반응의 기본 값은 분노다. 페미니즘 전성기답다고 해야 하려나. 가해자들에 대한 격렬한 분노는 참 빠르게도 번지고 있다. 그러나 ‘학력이 인성의 증거가 될 수 없다’는 새삼스런 명제가 그렇듯 빠른 것은 절대 옳은 것의 증거가 될 수 없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그런 분노야말로 너무나 새삼스럽다.

 

“해당”의 문제가 아니다

 

사실 지친다. ‘사회의 여성혐오적 범죄들은 절대 특수한 일이 아니야!’ 라고 말하는 것 말이다. 그때마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와 모든 남자를 잠재적 가해자 취급한다는 기이한 ‘논리적’ 반박에 마주치는 건 참으로 피곤한 일이 아닌가. (“기자가 메갈” 소리 듣는 것도 지친다)

 

그러나 이번 사건의 경우, 이것이 특수한 ‘해당’ 학교, 혹은 ‘해당’ 학과, 혹은 ‘해당’ 악마 같은 가해자 몇 명의 문제가 아님을 밝히는 건 꽤나 쉬운 일 일지도 모르겠다. 아닌 게 아니라 언어 성폭력, 그것도 남성 집단 내에서 일어나는 언어 성폭력이란 정말로 발에 치이고 치일 만큼 흔하기 때문이다. 그래, ‘고려대’란 이름은 사실 문제가 아니다. 애초 이 나라 어디에도 ‘청정지역’은 없다는 게 진짜 문제다.

 

혹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나와 같은 남자라면, 그러니까 정말이지 흔하고 흔한 한국 남자라면, 당신도 알지 않나? 악마 같은, 해당 학교 해당 학과의 해당 몇 명이라고? 아니. 일반적인 남성주체로서 내가 속해온 거의 모든 남성 집단은, 어휘의 수위나 어감의 정도를 달리할 뿐 다 그랬다.

 

이건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나를 포함해 내 주변 거의 모든 남자들은 내 주변 거의 모든 여자들을 성적대상화 했으며, 별 양심의 가책 없이 그들을 언어 속의 성적 사물로 자리시켰다고. 그리고 다시 이렇게도 정리할 수 있다. 나를 포함해 내 주위 거의 모든 남자들은 여성혐오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고. 그래서 결국 뭐가 문제냐고?

 

이건 문화의 문제다

 

이번 고려대 사건과 비슷한 일이 내가 다니는 학교에서도 있었다. 단톡방의 언어 성폭력이 외부로 밝혀졌고, 사건은 인권센터로 접수됐다. 피해 여학생은 가해 남학생들이 누구인지 알게 됐고, 결과는? 인권특강으로 강의실을 찾아온 인권센터 담당자는 말했다. 달라진 건 없었다고. 피해 여학생이 휴학하고 학교를 떴다는 게 달라진 거라면 달라진 거겠지.

 

이게 지금의 고려대와 그때의 내 학교, 두 캠퍼스만의 문제일까? 그중에서도 이번 ‘그 학과’와 저번 ‘그 학과’의 문제? 당연히 아니다. 강의실에서 함께 분노하던 모든 사람들(당연히 나를 포함해)은, ‘단톡방’으로부터 자유로울까? 반복. 당연히 아니다. 이건 해당 몇 명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에 깔린 문화 자체의 문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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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가 된 카톡 내용이다 ⓒ 정대후문 게시판

 

고등학생 때, 군인일 때, 대학 1학년 때든 2학년 때든 몇 명이고 우르르 몰려다니던 남성 집단의 저속한 농담들을 기억한다. “따먹”이나 “존나 먹이고, 쿵떡쿵”같은 것들이 과연 새로운 것일까? “씹던 껌”이나 “벌려 줄” 거라는 표현이 정말 악마들의 전유물일까? 다시 말하자. 어휘의 수위나 어감의 정도만 다를 뿐, 사실 이건 일베나 변태성욕자들의 언어가 아닌 이 사회 자체의 언어였다.

 

여성을 “따먹”는 무언가, 맛있거나 맛없는 음식 같은 것으로 비유한다거나, 여성에게 정도 이상의 술을 권해 섹스의 가능성을 높이자 한다거나, ‘다리 벌림’이나 ‘보픈’같은 표현으로 성관계(그것도 다분히 여성을 객체화시킨 형태의)를 암시한다거나 하는 일은 가부장제 사회의 맨컬쳐 속에서 절대 특수한 경우의 수가 아니다. 마음만 먹는다면, 혹은 마음이 없더라도 당신은 언제 어디서든 이 비슷한 표현을 쓰거나,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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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대후문 게시판

 

당신은 ‘새내기 따먹고 싶다’고는 말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당신이나 당신 옆의 누군가가. 새내기 중에 누가 예쁘고, 누가 별로며, 누구는 가슴이 크고 누구는 다리가 예쁘다는 식의 말을 하고 듣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거다.

 

바로 그때 ‘가해자 여덟 명’과 ‘당신 주위’의 두 언어는 여성혐오라는 채널을 통해 명확하게 맞닿는다. 수위를 넘나드는 이 채널의 공유야말로 이 문화 전체의 여성혐오적 경향성이고, 그래서 이건 ‘해당’의 문제가 아니다. 명확하게도 이건 문화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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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은 자주 사물이 된다 ⓒ 정대후문 게시판

 

분노의 맥락을 바꿔야 한다

 

‘악마 같은 가해자’들과 그걸 보는 ‘나’의 섣부른 분리를 경계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총체적 문화의 문제 속에서 우리 또한 언제든 악마가 될 준비를 마친 지 오래니까. 지금 정말로 시급한 건 “해당 몇몇”들에 대한 분리와 비난이 아니다. 그것들을 아무런 양심의 가책 없이 생산해 놓는 우리 문화, 즉 우리 자신에 대한 성찰이다.

 

진부한 거 안다. 그러나 이 진부한 성찰이 없기에 어쩌면 당연할 ‘기본 값의 분노’조차 새삼스러울 수밖에. 차라리 “또 고려대”나 “헐 고려대”에서 고려대를 지우고 한국 남자를 써넣고 싶다. 그에 따를 갖은 ‘논리적 반박’보단 바뀌지 않고 빙빙 도는 이 남성문화가 훨씬 더 짜증 날 테니까. 분노의 맥락을 바꿔야 한다.

 

글. 인디피그(ghin280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