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LLJOY. 흥을 깨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여성혐오와 반성평등적 컨텐츠는 세상에 널리고 널렸다. 그 흥을 깨지 않으면 계속해서 번식할 것이다. 페미니즘은 KILLJOY여야 한다. 우리 모두가 단 한 번도 성평등한 세상을 살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아이템은 무궁무진하다. 앞으로 [킬-조이] 연재를 통해 마음껏 고함20이 느낀 불편함을 말하고 설치며 흥을 깰 예정이다.

 

‘또 오해영’은 근래에 내가 챙겨보는 몇 안 되는 드라마 중 하나였다. 드라마의 인기 요인은 2030 여성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현실적으로 그린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못난 모습을 인정하면서도 “여전히 내가 애틋하다”고 말하는 여주인공 오해영(서현진 분)은 공감과 더불어 위로를 주었다. “발로 차일 때까지 사랑하자”고 다짐하곤 정말로 맘이 가는 대로 주저 없이 사랑을 표하는 그녀의 모습이 멋졌다. ‘신녀성’ 같은 느낌이랄까.

 

지만 종영을 2주 남겨둔 지금, ‘또 오해영’이 보여준 여성관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인가에 대해 의문이 든다. 그렇다. 또 ‘여혐’이다. ‘또 오해영’ 제작진은 젊은 여성 시청자를 타깃으로 한다고 했지만, 결국 그들이 보여준 것은 여성혐오가 만연한 사회의 여성혐오가 만연한 드라마였다. 방영 내내 교묘하게 불편한 여성관을 드러냈고, 14화(6월 14일 방영)에서는 그 정점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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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N ‘또 오해영’

 

# 남성들의 시각 속에 존재하는 ‘개념녀’와 ‘썅년’

 

가부장제가 여성을 통제하는 한 수단은 여성에게 딱지를 붙이는 것이다. ‘좋은 여자’ 혹은 ‘나쁜 년’으로 여성을 구분하는 주체는 남성이다. 남성의 입맛에 맞는 여성은 찬양되지만, 그렇지 않은 여성은 썅년이 된다. ‘또 오해영’의 경우, 연애관계에서 남성을 받아준 ‘좋은 여자’와 남성을 거부한 ‘나쁜 년’이 나온다. 박훈(허정민 분)은 1화에서 이별을 고한 애인에게 “너는 그냥 개x같은 년이다”고 소리 지르고, 박도경(에릭 분)은 구여친을 재회하고 분노하여 차 유리창을 내려친다.

 

남성들의 분노는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그들을 화나게 한 여성들이 ‘썅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같은 상황을 겪은 오해영(서현진 분)은 한태진에게 그와 같은 분노를 표하지 않는다. 오해영(전혜빈 분)에게도 한태진에게도 사정이 있었지만, ‘썅년’의 사정은 더 고려되지 않는다. ‘나쁜 년’은 흔히 ‘나쁜 놈’보다 더 격한 분노의 대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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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N ‘또 오해영’

 

‘또 오해영’은 사랑에 적극적인 오해영의 모습을 통해 연애관계에서 여성이 주체성을 보여주는가 하면서도, 여성의 주체성을 무시하는 이중성을 보인다. 이는 박훈 캐릭터를 통해 단적으로 드러난다. 박훈은 새로 사귄 여자친구 안나(허영지 분)에 대해 “파리에서 온 여자 같아. 한국 여자 같지가 않아. 재는 게 없어.(7화)”라고 평한다. ‘재는 한국 여자’를 비난하는 대사가 제재 없이 발화되고 자연스럽게 넘어간다.

 

연애 관계에서 여성들의 주체성이란 무엇일까. 상대에 대한 고려, 나의 감정과 관계에 대한 고려를 바탕으로 한 주체적 표현은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 여성이 시간을 두고 신중하게 관계를 이어가는 것도, 단시간에 짙은 사랑 표현을 하는 것도 모두 주체적 행위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전자는 ‘잰다’는 말로 폄하되는 반면, 후자(어리고 예쁘고 개방적인 안나)는 한국 여자 같지 않다며 추종 된다. 이는 여성들의 주체성을 철저하게 남성적 시각으로 바라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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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N ‘또 오해영’

 

박훈이 희란과 함께하는 장면에서 ‘또 오해영’은 더 노골적으로 남성 중심적 시각을 드러낸다. 13화와 14화에서 영화감독 희란이 박훈의 시나리오에 관해 이야기하는 동안, 카메라는 박훈의 시선에 따라 희란을 비춘다. 그녀의 옷차림과 몸매가 부각된다. 희란이 옷을 갈아입으러 가자 박훈은 “여기서 옷을 왜 갈아입어. 꼬시려는 거야 뭐야”라고 말한다. 공적인 이야기를 하는 자리에서도, 여성은 옷차림을 이유로, 남성을 집에 초대했다는 이유로, 함께 술을 마셨다는 이유로 ‘꼬시는 거’냐는 오해를 받는다. 박훈의 시선에서 희란을 비추었기 때문에, 그녀의 모습은 ‘유혹하는 듯이’ 그려진다. 하지만 현실에서 희란이 뱉은 말은 “내가 너 잡아먹는 줄 알았구나? 미쳤나 봐.(13화)”였다. 그럼에도 박훈은 안나 앞에서 “널 사랑해서 성공을 못 한다, 내가.(14화)”라고 거들먹거린다. 여전히 희란이 자신을 유혹한 것이라 굳게 믿는 그는, 애초의 여성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생각이 없었다.

 

# 여성의 입으로 재생산되는 여성 혐오

 

남성 캐릭터가 보여주는 여성혐오는 남성 판타지적인 여성 캐릭터를 통해 자연스럽게 은폐된다. 박훈의 말을 들은 안나가 출세시켜 준다는 “썅년”의 꼬임에 넘어가지 않았다며 “기특하다”고 반응하는 식이다.

 

‘또 오해영’의 여성혐오가 더 교묘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또 오해영’은 여성의 입을 빌려 남성들의 기를 살리며, 여성혐오를 생산한다. 드라마는 ‘여성의 적은 여성’ 프레임을 공고히 하는 장면을 지속해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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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N ‘또 오해영’

 

3화에서 여주인공 오해영의 상사는 새로 온 팀장이 자신보다 어리고 ‘여자’라는 이유로 자존심이 상해한다. 여성 밑에서 일할 수 없다는, 전형적인 쌍팔년도식 마인드다. 그런데 이 말을 들은, 역시 여성인 오해영은 “그거 내 밥이다. 내가 제대로 잡는다”며 위로한다. 14화에는 대놓고 “역시 여자는 여자가 잡아야 돼”라는 대사가 나온다. 진상(김지석 분)의 입을 통해서다. 진상은 요일마다 다른 여성들과 데이트를 하며 무려 6다리를 걸친다. 여섯 여자가 모여 진상을 찾아오자, 수경(예지원 분)은 여성들에게도 잘못이 있다고 말한다. “변호사라고 껌뻑 죽은 니들 탓도 있잖아. 인생 선배로서 조언하는데 간판 보지 말고 명함 보지 말고 돈 보지 말고 성품 보고 남자 만나.”

 

가부장제 사회는 가부장적 권위를 누리는 남성과 남성적 권위에 동조하는 여성을 길러낸다. ‘또 오해영’에 등장하는 가부장적 가치를 내재화한 여성들은, 남성 판타지적 인물이며 남성의 대변자 역할을 한다. 남성의 방탕을 적극적으로 변호하는 여성에 의해 피해 여성들은 순식간에 “계속 이딴 놈이나 만날 성품 나쁜” 속물로 전락한다. 수경은 “(알고 보면) 너 되게 괜찮은 애”라며 진상을 다독이지만, 처음 본 여자들은 한순간에 단정 짓고 비난한다. 어떻게 해서든 여성에게 책임을 돌려 남성을 자유롭게 해주려는 모습이다.

 

# 임신 후에 달라진 것?

 

‘또 오해영’의 후반부에 새롭게 등장하는 서사는 서브 커플 수경과 진상의 이야기다. 술에 취해 진상과 원나잇한 후, 수경은 임신한다. 더불어 진상을 사랑하게 된다. 진상을 사랑하는 이유에 대해 수경은 “객관적으로 쓰레기지만, 잤으니까”라고 설명한다. 매일같이 다른 여자와 섹스하는 진상과 대비된다. 이들의 대비는, 남성에게 섹스는 단지 육체적 쾌락일 수 있지만, 여성에게 섹스는 감정적인 차원과 떼 놓고 볼 수 없다고 이야기하는 듯하다. 섹스가 여성에게 더 중요하다고 보는 시선의 이면에는 여성의 성을 억압하는 가부장적 고정관념이 있다.

 

진상과 잔 후에 수경의 달라진 모습은 상당히 성차별적이다. 수경은 섹스한 다음 날, 진상에게 조신한 말투로 존댓말을 사용한다. 이후에도 전과 달리 상냥하고 조심스럽게 진상을 대한다. 여성이 남성에게 ‘친누나 같은 친구 누나’에서 ‘여자’가 될 때, 기존의 ‘사람 대 사람’의 관계와는 다른 ‘남자 대 여자’의 권력관계가 작동함을 보여준다. ‘또 오해영’의 작가가 생각하는 남녀의 관계란, 남성이 우위에 있는 구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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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N ‘또 오해영’

 

게다가 작가는 임신을 일차적으로 여성이 책임져야 할 문제로 그린다. 갑작스럽게 엄마가 된 수경의 고민과 선택은 깊이 다루지 않는다. 그녀가 커리어를 포기하고 엄마의 삶을 선택하는 모습은 너무나 당연하게 그려진다. 대신 드라마는 갑작스럽게 아빠가 된 진상의 괴로움에 집중한다. 그 과정에서 수경의 의사는 안중에도 없이, 그녀의 임신이 소비된다. 모든 걸 알게 된 진상은 수경이 아니라 수경의 남자 형제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안 되겠니?”라던가 “박수경을 데리고 사는 거로 종신형에 처한다” 따위의 대사가 나온다.

 

‘데리고 사는’ 게 아니라 ‘함께 사는’ 것이다. ‘또 오해영’에서 예상치 못한 임신은 ‘나의 아이를 임신한 여성’의 문제로 소비된다. 그 기저에는 여성이 남성의 아이를 갖고 남성의 아이를 낳는 수동적 존재라고 여기는 가부장적 사고가 있다. ‘우리의 아이’에 대해 함께 고민하는 장면은 부재하고, 고민의 주체가 되어야 할 수경은 그저 침묵한다. 공적 영역에서 커리어 우먼으로 당당하게 제 할 말을 하던 수경이, 사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수동적으로 그려진다.

 

2030 여성을 타깃으로 했다기에, 트렌드 드라마라기에, 적어도 남성적 시각을 답습하는 여성 캐릭터나 스토리는 아니길 바랐다. 하지만 ‘또 오해영’은 아주 현실적이게도 여성혐오가 범람하는 현실을 보여줬다. 드라마 속 수많은 성차별적인 발언과 장면은 문제없이 자연스럽게 다뤄졌다.

 

그래서 단지 ‘또’ 하나의 성차별적 콘텐츠가 추가되었을 뿐이다. 대놓고 젊은 여성들을 염두에 둔 드라마에서조차, 여성들은 성차별을 경험한다. 어떻게 불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글. 달래.(sunmin532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