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 있는 일만 찾아다녔다. 찾아다니고, 해부해서 먹어치웠다. 그러다 온갖 의미로 꽉 차서 숨이 막혔다. 좀 비우고 싶다. 그냥 막 걷고, 어디든 들어가고, 무엇이든 먹고 마시고 싶다. [다녀왔다고함]은 이런 발버둥의 기록이다.

 

홈리스 그리고 서울역

 

서울역 2번 출구를 나왔을 때 출구 바로 옆에 두 명의 홈리스들이 쪼그리고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남루한 차림의 두 남자는 모두 겨울옷을 입고 있었다. 겨울에 집을 나온 것인지(혹은 쫓겨났거나), 아니면 다시 돌아올 겨울 때문인지 그들이 한여름에도 겨울옷을 입고 있는 이유를 알 수는 없었다. 서울역을 돌아다니다 보면, 이들처럼 겨울옷을 입고 있는 사람들을 적지 않게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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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서울역 앞 홈리스들의 모습

 

2번 출구를 지나 구서울역 쪽을 향해 시선을 돌렸을 때, 적지 않은 홈리스들이 보였다. 다섯 명의 홈리스들은 땅바닥에 완전히 드러누워 있거나 반쯤 누운 채로 구서울역이 만들어 준 그늘에 나란히 앉아있었다. 구서울역 바로 앞에는 울타리가 세워져 있고, 지붕에서는 비둘기의 똥이 떨어지기에 어느 정도 거리를 계산해 잡은 위치 같았다. 홈리스A 옆에는 소주 1병이 놓여 있다. 홈리스B 주위에는 토사물 자국과 종이컵 그리고 나무젓가락이 몇 개 버려져 있다. 홈리스C는 자신의 짐들을 만지고 있었고, 홈리스D는 자신의 전동휠체어 아래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홈리스E도 바닥에 드러누워 잠을 자고 있었다. 다만, 홈리스E 근처로 가서 숨소리를 들어보지 않는 이상 홈리스E가 살아있는 사람인지는 알 수 없을 것 같다. 홈리스E는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동자동 쪽방촌으로 가기 위해 걸음을 구서울역에서 신(新)서울역 쪽으로 옮겼다. 서울역을 지나는 수많은 화려한 사람들 사이에, 거의 움직임이 없는 남루한 사람들의 모습이 제법 보였다. 자신이 주워온 폐지 더미에 몸을 기댄 체 뙤약볕을 맞으며 자는 홈리스F. 친구와 이야기하며 빵을 나눠 먹는 홈리스G. 자신의 커다란 짐들을 들고 어딘가를 하염없이 바라보기만 하는 홈리스H. 홈리스 H도 지하철역 2번 출구에서 보았던 홈리스들처럼 겨울옷을 입고 있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장마가 다가오는 한여름에 두꺼운 솜바지에 워커화에 파카를 입고 있는 홈리스 H를 이상한 시선으로 훑고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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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리스H의 모습

 

서울역 바로 앞에서는 기독교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선교를 위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노래방기계 같은 것으로 찬송가 번호를 입력하면 커다란 스피커를 통해 찬송가가 나왔다. 찬송가는 서울역 광장 전체에 울려 퍼졌다. 서울역에 들어설 들을 수밖에 없는 소음이었다. 마이크를 잡고 찬송가를 부르는 기독교인 옆에서는 다른 기독교인이 색소폰을 불고 있었다. 기독교인들은 눈앞에 있는 홈리스들은 안중에도 없이 자신들을 지나쳐가는 사람들을 향해서만 마이크를 들고 전도를 하고 있었다. 이들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무료로 배포하기 위해 쌓아놓은 찬송가CD를 가져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로지 홈리스I와 그녀의 친구로 보이는 사람들이 이들의 공연을 흥미롭게 지켜볼 뿐이었다.

 

자신이 키우던 개와 함께 집을 나온 것 같은 홈리스I가 기독교인들이 노래하는 곳으로 가까이 가자, 다른 홈리스들이 I에게 비키라고 소리쳤다. 이들은 서로를 잘 아는 듯 보였다. 서울역 주위에 그늘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홈리스I와 그녀의 친구들처럼 삼삼오오 모여 있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혼자서 가만히 누워있는 사람부터 시작해, 술판을 벌이는 사람들까지 다양했다. 광장 한쪽에서는 홈리스J가 “막걸리 타임!”을 외치며 지나가던 홈리스K에게 막걸리를 권했다.

 

동자동이란 회전문

 

서울역 앞에 서면 제법 서울을 대표할만한 높은 빌딩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 빌딩들 사이 한구석에 동자동 쪽방촌이 있다. 동자동 쪽방촌은 높은 건물들의 그림자에 가려져 상대적으로 어둡기다. 서울역 주위의 빌딩들이 대체로 평탄한 지대에 듬성듬성 세워져 있는 것에 비해, 동자동 쪽방촌은 작은 언덕에 작은 건물 여러 개가 빼곡히 모여 있다. 그렇게 동자동 쪽방촌은 서울역을 둘러싼 배경 중 가장 이질적인 곳이다. 이질적인 배경만큼이나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기도 하다.

 

한 인권 운동가로부터 “서울역에서 노숙하던 사람들이 일자리를 구하면 동자동 쪽방에서 살다가, 다시 일자리를 잃으면 쪽방에서 나와 길거리에서 다시 노숙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그는 이것을 두고 ‘회전문’ 같다고 표현했다. 취업이 되면 회전문의 안쪽인 쪽방에 살 수 있고, 취업을 못 하면 회전문의 바깥쪽인 길거리에서 생활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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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건물 사이로 나 있는 자그마한 길.

3시 정도 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 햇빛의 양이 줄어들고 있었다

 

쪽방촌 골목의 쪽방들은 대부분 2층부터 있었다. 건물 1층에는 음식점들이 즐비해 있었고, 2층부터 건물주들이 세를 놓고 사람들에게 싼값에 방을 대여해 주는 식이다. 슈퍼에서 가게를 보고 있던 아저씨에게 방을 구하러 왔다고 이야기하자 “커서 들어갈 방이 없을 것 같은데”라고 이야기를 했다. “저는 176cm밖에 안 되는데 안돼요?”라고 묻자 “그 정도면 가장 큰 방을 써야 한다”고 한다. 아저씨는 한마디 말을 덧붙이셨다. “이런 곳에 살지 말고 다른 곳으로 가서 방을 알아봐!”였다. “여기선 젊은이들이 배울 게 없어, 밤만 되면 아저씨나 할아버지들끼리, 술 먹고, 싸우고, 욕하는 거랑 사람 죽는 것밖에 못 본다”며 다른 곳에서 방을 알아보길 추천하셨다. “죽는 거요?”라고 다시 묻자, “그런 경우도 있지. 같이 술 먹던 노인이 이삼일 안 나오면 한번 가봐야 해! 죽었는지 안 죽었는지, 하하”라고 웃으며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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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바닥에는 식물이 자랄 흙도 빛도 없다

 

쪽방촌 골목 안쪽으로 더 들어가 보았다. 조금 전보다 더 부식이 심한 건물들이 보였다. 오래된 건물의 틈새에서는 이름 모를 식물이 자라고 있었다. 어떤 건물은 간신히 서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어떤 건물은 바깥으로 나와 있어야 하는 창문이 통째로 뜯어진 채로 방 안이 다 들여다보였다. 오래된 것을 넘어 철거 후 재개발이 필요해 보였다. 지나가는 아저씨를 잡아 이 건물들이 철거가 왜 안 되는지 물어보았다. “원래는 철거 계획이었으나 박원순 시장이 들어선 이후 취소됐다”고 한다. 좀 더 확실한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 쪽방촌과 인연을 맺어온 홈리스행동에 전화를 해보니 철거 계획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쪽방촌을 곳곳에는 여러 단체에서 쪽방촌에 사는 사람들을 돕겠다는 스티커와 공고들이 보였다. 용산구 정신건강증진센터에서 하는 건강음주희망프로젝트, 로펌에서 하는 금요법률상담, 동자동마을부엌+마을도서관 사랑방 식도락, 경제회복센터 등. 기자가 쪽방촌을 방문했던 날에는 동자동 사랑방과, 경제회복센터가 문을 열고 있었다. 문틈 사이에서는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면서 이야기하는 모습이, 문밖에서는 마을 주민 몇몇이 티격태격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몇몇 사람들은 시설 앞에서 평화로이 골목 곳곳을 쓸고 있었다.

 

빈곤의 삼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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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자동 쪽방촌 뒤편에서 서울역 쪽을 바라본 모습

 

동자동 쪽방촌에서 하루를 보내려면 만 원 정도를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한 달을 보내려면 보증금은 없어도 되지만 25만 원에서 30만 원은 있어야 한다. 이것도 누군가에겐 비싸기에 쪽방촌 바로 앞에 있는 서울역에서 노숙할 터였다. 하지만 노쇠하고 아픈 사람들에겐 이 돈을 버는 게 쉽지 않다. 막노동판에 ‘취업’을 하는 것도 이들에겐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돈이 없으면 이곳에서도 가차 없이 쫓겨난다고 한다.

 

동자동 쪽방촌은 삼각주와 닮았다. 서울 여기저기에서 떠돌아다니던 빈곤한 사람들이 이곳에 정착한다. 쪽방촌에 살다가도 경제적인 상황이 열악해지면 쪽방촌을 떠나 길바닥으로 쓸려나간다. 어떤 사람들에겐 당연하게 생각되는 ‘집’이라는 공간이 어떤 이들에겐 길바닥보다 조금 더 나은 정도의 공간으로 여겨지는지 모르겠다. 곧, 시작되는 장마 동안 서울역에 있는 홈리스들은 비를 피해 어디로 향할까.

 

사진. 상습범(biswang@naver.com)

글. 상습범(biswang@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