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과 ’20대’에 대한 인상비평이 여기저기에서 쏟아지고 있습니다. 이에 청년이슈팀의 [청년연구소]는 청년과 20대를 주제로 한 다양한 분야의 학술 텍스트를 소개하려 합니다. 공부합시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청년’을 두 가지 방식으로 설명한다. 첫 번째는 ‘신체적, 정신적으로 한창 성장하거나 무르익는 시기’로서의 청년. 이때 청년은 성인이나 시민이 되기 위해 거치는 이행기를 가리킨다. 이러한 정의 아래에서는 무르익고 성장하는 배경으로 ‘시간’이라는 개념이 내포되어 있음이 중요하다. 오늘의 청년이란 정책에서는 ‘N1세에서 N2세’를 가리키는 인구학적 개념이다. 동시에 수많은 세대론에서는 청년을 전보다 ‘불우’하고 ‘행복하지’ 않은, 때문에 ‘포기’하고, 88만 원의 급여를 받는 비정규직으로 살아야 하는 특수한 ‘시기’를 공유하는 이들로서 설명한다. 오늘의 ‘청년’을 둘러싼 수많은 정책과 담론들 뒤에는 분명 시간이라는 개념이 존재한다.

 

한데, 표준국어대사전이 청년을 정의하는 나머지 한 방식은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다. “성년 남자”. 미성년과 구분되는 시기적 개념이야 앞선 ‘시간’과 다르지 않은데 그 단어 뒤에는 갑작스레 ‘남성’이라는 성별이 붙는다. 그런데 정책에서는 청년을 남성 “15세부터 34세”라고 정의치 않으며, 청년 담론들도 “남성 3포 세대”와 같이 성별을 포함한 표현으로 제시되지 않는다. 다양한 수준에서 만들어지는 ‘청년’이라는 표현에서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성(gender)적인 모습은 철저히 숨겨진다.

 

‘청년세대’의 성(gender)에 대한 뉘앙스는 때론 일상에서 마주하는 작은 경험들에 의해 빼꼼히 드러난다. 표준국어대사전이 청년을 남성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것을 마주한 순간과, 청년 내부에서 젠더에 의한 불평등이 곳곳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할 때, 때론 ‘어이! 청년!’이라는 부름에 답하는 성별(sex)이 누구인가를 상상해봄으로써도 ‘청년세대’라는 표현에 숨겨진 젠더의 뉘앙스를 발견하게 된다. 그 뉘앙스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성에 있어 가치 중립적인 것처럼 여겨지는 ‘청년’이라는 개념의 젠더적 성격을 의심해보자. 의심은 고민으로, 고민은 물음으로 이어진다. 어떻게 청년 담론을 젠더와 교차(intersect)할 것인가? 이번 [청년연구소]는 배은경 교수의 ‘’청년 세대’ 담론의 젠더화를 위한 시론 – 남성성 개념을 중심으로’를 살펴보려 한다.

 

수많은 교차 지점으로의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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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은 오직 ‘연령’이 아닌, 성별, 계급, ‘제3세계’라는 공간 등 내부의 교차점을 포함한다.

 

오늘날 청년 담론의 지형은 혼돈의 카오스다. 하루가 멀다하고 청년을 새로이 규정하는 말이 태어나고, 청년 담론은 청년의 입을 막는다. ‘3포 세대’, ‘달관 세대’에 엄밀한 접근을 하기도 전에 전문가의 말 몇 마디는 새로운 세대론에 권위를 부여한다. 담론으로서의 청년은 자주 실재하는 청년으로 여겨지고, 그 맥락 아래에서 정책이 수립되고, 청년을 ‘위한’ 법이 생긴다. 청년을 규정하는 이러한 지식들은 하나의 ‘지식권력’으로서 청년을 통제하고 통치하는 기제가 된다.

 

이와 동시에, 퉁치는 식으로 양산되는 청년담론에서 청년 내부의 타자들은 다시 주변화된다. 2012년 문화와 사회에 게재된 정수남과 동료 연구자의 논문 ‘‘청춘’ 밖의 청춘, 그들의 성인기 이행과 자아정체성’은 ‘3포’라는 ‘청년’ 담론이 빈곤층에게는 얼마나 새삼스러운 것인지 보여준다. 여성청년 또한 그렇다. 이들 역시 청년 담론 내의 타자로 존재해왔다. 이런 배경 하에서 배은경의 연구는 청년의 젠더화를 시도한다. 

 

‘남성성’을 통해 젠더를 세대담론에 개입시키기

 

젠더를 세대담론에 교차시키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먼저, 비가시화 되는 이들을 조명하는 방법. 그것은 청년 여성을, 또는 규범적 성에 어긋난 성소수자 청년을 조명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담론의 대상으로 인정받지 못했던 이들은 담론 내부로 ‘편입’된다. 다른 방법은 기존의 청년담론을 젠더적인 관점에서 분석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살펴볼 연구에서 선택한 방법이기도 하다. 저자 배은경은 남성성(masculinity) 개념을 바탕으로 몰성적인 청년담론에 젠더적 관점을 입힌다.

 

여기서 주의할 지점은 남성성이 ‘본질적’ 이지 않다는 것이다. 남성성은 모든 남성(sex)이 시간을 초월해 공유하는 불변하고 단일한 개념이 아니다. 이것은 여성성이나 젠더, 섹슈얼리티와 같이 다양한 ‘남성성/들’로 이뤄져 있다. 남성성이란 버틀러의 ‘수행성(performativity)’ 개념처럼 남성성이란 반복과 모방의 과정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개념이다. 코넬 또한 남성성을 하나의 단일 범주가 아닌 헤게모니적, 공모적, 주변화된, 종속적 남성성의 4가지 모델로서 제시한다.

 

3포세대론 ‘남성성’ 개념으로 바라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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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TN

 

연애와 결혼, 출산 등 ‘3포세대’론이 말하는 가치들은 전형적으로 ‘남성’의 생애주기에 따른다. 연애, 결혼, 출산이 본질적으로 ‘남성’의 영역이었다는 말이 아니다. 하지만, 근대의 개인이 탄생하는 과정은 ‘핵가족’ 형태 내부에서 이루어졌고, 그 핵가족은 가부장에 의해 지배되어 왔다. 연애, 결혼, 출산이라는 근대 정상가족의 구성 요인들은 가부장이 가족을 구성하는 과정으로 읽히는 이유다. 때문에 개인이 된다는 ‘독립’의 의미는 가부장제(patriarchy)의 가부장이 된다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가부장이란 수많은 ‘남성성/들’ 중에서 ‘헤게모니적 남성성’에 해당한다. 3포세대는 이 헤게모니적 남성성이 실현 불가능한 현실을 말한다. 오늘의 청년은 더 이상 ‘연애, 결혼, 출산’의 의례를 거쳐 하나의 가정을 만들어내는 가부장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담론은 말한다. ‘너희에게 이젠 가족을 통치할 경제적 능력이 없고, 이 경제적 능력에 기반한 문화적인 권위도 없다.’

 

담론은 ‘오늘의 청년 남성이 헤게모니적 남성성을 성취할 수 없음’을 조장하는 효과를 낳는다. 그리고 담론의 배경에서 미디어를 통해 나타나는 ‘여권의 신장’이나 ‘역차별’이라는 단어가 청년 남성에게 ‘박탈감’이라는 감정의 구조를 돕는다. 가부장이라는 남성성을 담보 받지 못하는 ‘청년’. 하지만 가부장이라는 헤게모니적 남성성의 부재를 대체할 다른 남성성은 존재하지 않는 현실. 가부장이 되어야 한다는 ‘규범적 작용’, 그리고 경제적 현실로 그것의 ‘불가능함’을 모두 상기시키는 3포 담론 사이에서 청년 남성의 자아는 분열된다.

 

그 사이를 비집고 여성에 대한 혐오는 뿌리를 내린다. 저자인 배은경의 연구뿐만이 아니다. 서울대 김수아 교수는 힙합의 가사 변화에서 규범적인 ‘헤게모니적 남성성’이 오늘날 실현 불가능해졌다는 징후를 포착하는 연구를 꾸준히 하고 있다. 연구자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이제 그 헤게모니적 남성성이 아닌 대안적 남성성이 필요하다고. 

 

청년을 몰성적인 존재로 만드는 시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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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에도 세대론은 왈왈!

 

이 시점에서 ‘청년담론’에 젠더를 교차하려는 시도는 주목할 가치가 충분하다. 3포 담론은 오늘날 청년세대들이 연애, 결혼, 출산이라는 ‘생애 주기적 규범’ 달성에 실패하고 있음을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몰가치적 수사가 아니다. 우리는 오히려 3포 담론을 ‘청년을 왜 생애 주기적 규범의 실패자로 묘사하려 하는가’라는 질문의 촉매로 읽어내야 한다.

 

여성 청년의 삶이 점점 더 비가시화 되는 상황, 여성혐오적 범죄, ‘루저문화’를 곧 ‘청년문화’로 읽어내려는 담론적 시도들. 몰젠더적인 ‘3포’ 담론은 이러한 토대 위에 존재한다. ‘3포세대’라는 단어는 청년을 둘러싼 현실을 구성하는 과학이고, 그 과학은 애석하게도 청년이라는 세대와 그 바깥의 다른 문제들을 가린다. 바야흐로 헤게모니적, 가부장적 남성성의 획득 불가시대! 이러한 구호에서 ‘남성성’을 삭제하고 ‘청년’을 슬쩍 집어넣으면서, 오늘날의 ‘청년’ 담론 지형은 가부장제를 비가시화하는 방식으로 구성된다.

 

청년을 둘러싼 지식들은 원했건 원치 않았건 하나의 괴물을 키우고 있다. 이 ‘청년세대론’은 담론의 생산자의 뜻 대로 박제되지 않고, 생동하는 것으로 가부장제, 신자유주의 등과 조응한다. 곧 ‘청년세대론’은 ‘청년담론’의 이름으로 ‘청년 내부의 타자’를 억압하는 괴물이 될 것이다. 교차 지점으로서 ‘청년’을 재구성해야 한다. 청년 내부의 타자들을 조명해야 한다. 그것은 빈곤 청년일 수도, 성소수자 청년일 수도, 그리고 글에서 말하듯 여성 청년일 수도 있다. 이를 위해선 괴물이 된 ‘청년담론’과의 한판은 불가결한 것이며, ‘세대론과 싸우는 고함20’의 존재 또한 필연적이다.

 

대표이미지 ⓒ YTN 

글. 압생트 (9fift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