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 있는 일만 찾아다녔다. 찾아다니고, 해부해서 먹어치웠다. 그러다 온갖 의미로 꽉 차서 숨이 막혔다. 좀 비우고 싶다. 그냥 막 걷고, 어디든 들어가고, 무엇이든 먹고 마시고 싶다. [다녀왔다고함]은 이런 발버둥의 기록이다.

 

밤새 고민했지만 어떻게 하면 좋을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결국, 머릿속에서 돌고 도는 생각들을 혼자 붙잡고 있는 것보다는 낫겠지 하는 심정으로 상담센터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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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문인데 왠지 열고 들어가기 어려웠던 문

 

사실 상담을 받고 싶다는 생각을 한 지는 꽤 오래되었지만, 이 문을 선뜻 열지 못하고 있었다. 상담을 받는다고 해서 문제 있는 사람 취급하는 시선은 많이 사라졌지만, “몸이 안 좋아서 병원에 다녀”라는 말과 “마음이 안 좋아서 상담받아”라는 말이 주는 무게감은 사뭇 다르다. 얼마나 힘들어야 상담을 받을만한 일일까.

 

상담으로 가는 과정

 

상담센터에는 긴 복도와 복도를 따라 늘어선 방들이 있었다. 상담을 받으려면 먼저 심리검사를 몇 가지 받아야 한다는 안내를 받았다. 그래서 첫날은 혼자 빈방에서 검사지만 풀다 나왔다. ‘자살을 생각해본 적이 있다’, ‘우울감 때문에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는다’ 등의 질문에 답을 표시하다 보니 너무 보잘것없는 고민을 들고 온 것은 아닌지 괜한 걱정이 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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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을 받기 위해 풀어야하는 각종 심리검사지  ⓒ 보건복지부

 

바로 다음 날은 접수 상담을 받았다. 말 그대로 접수를 위한 상담인 ‘접수 상담’에서는 어떻게 상담을 받으러 오게 되었는지, 어떤 주제에 대해 상담을 받고 싶은지, 혹시 선호하는 상담자의 유형이 있는지 등등에 관해 가볍게 이야기를 나눴다. 상담센터를 찾아가면 바로 상담 선생님을 만나 몇 번 대화하게 되는 줄만 알았는데. 생각보다 복잡한 절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림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상담 선생님이 배정되기까지 오래 기다릴 수도 있다는 안내를 받기는 했지만, 몇 주를 기다려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지금 당장 도움이 필요해서 상담센터의 문을 두드렸는데 기약 없이 기다려야 한다니. 아니, 학교에 상담센터가 없었다면 애초에 찾아오지도 않았을 테니 기다릴 수 있는 기회를 얻어 다행인가.

 

다들 마음 속 어디가 아픈 걸까

 

다행스럽게도 나는 1달 반 만에 상담을 시작할 수 있었지만, 최대 5~6달까지 기다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들었다. 상담 선생님 말씀으로는 요즘 찾아오는 학생들이 부쩍 늘어서 인력도 부족할 뿐만 아니라 상담자를 배정받더라도 상담실이 꽉 차 있어 약속을 잡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한다. 아프니까 청춘인 시대라서 마음이 아픈 학생들도 많은가보다.

 

예약이 꽉 차있는 상담실들 ⓒ 조선일보

 

나도 그중의 한 명이긴 하지만, 다들 왜 그렇게 상담을 받으려고 하는지 궁금해 찾아보니 대학 내 학생상담센터의 상담 건수가 증가한 원인은 취업 스트레스 증가와 가족 구성의 형태 변화라는 조사 결과가 있었다. 어려운 취업 현실과 더불어, 고민을 나눌 수 있는 가족 구성원의 수가 줄어들면서 밖에서 고민을 해소하려는 경향 때문이라고 설명되어있다.

 

하지만 취업에 실패했든, 가족 중에 말할 사람이 없든, 어떤 경우에도 사실 그 자체만으로는 마음이 고통 받는 이유가 되지 못한다. 상담 선생님은 내가 가져온 사실이 왜 내 마음을 힘들게 하는지, 왜 내가 그 사실을 그토록 중요하게 여기는지 끊임없이 물어보셨다. 어떠한 고민도 절대적으로 사소하거나 심각하지 않다.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그럼 결국 ‘내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한 걸까?

 

아픈 생각들로부터 나를 지키는 방법 찾기

 

아니, 사실 무엇이 중요하고 심각한 고민이 되는지는 전적으로 나에게 달린 문제가 아니다. 취업이 어려워도 행복할 순 있다. 그러나 우열을 가리기 좋아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취업으로 나의 가치가 평가절하당한다면, 큰 스트레스를 받는 건 당연하다. 혹은, 이때까지 나에게 투자를 해온 부모님을 만족시켜야 한다는 흔한 압박감 같은 것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내 마음가짐’의 뒷편엔 언제나 사회적 맥락이 존재한다.

 

상담이 하는 일은 어쩌면 그 둘의 관계를 끊어내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나에게는. 상담 선생님과의 대화를 통해서 나는 내가 굳이 질 필요 없었던 마음의 짐을 크게 덜어낼 수 있었다. 신기하게도, 그토록 나를 고민하게 했던 어떤 ‘사실들’은 이제 나에게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이곳을 찾아온 다른 사람들도 나와 마찬가지로 사회가 심어준 생각들이 내 마음을 다치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신을 지키는 방법을 찾는 과정에 있을 것이다.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다. 감기에 걸렸을 때 병원에 갈 만큼 아픈지 고민하지 않는 것처럼, 마음이 아프다고 느껴진다면, 그냥 가볍게 상담을 받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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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런 프로그램도 있다 ⓒ 서울대학교 대학생활문화원

 

글. 진(bibigcoma@hanmail.net)

사진. 진(bibigcoma@hanmail.net)